트럼프 방만재정에 시장은 환호한다?

2019-04-25 10:42:18 게재

전망 불확실한 시대

안전자산 수요 높아

미국채로 자본 쏠려

경제학자들은 미국의 거대한 재정적자를 큰 문제점으로 지적하곤 한다. 하지만 현재 시장에서는 이를 문제점이라기보다 해결책으로 보는 심리가 강하다고 블룸버그통신이 24일 전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방만한 재정정책을 우려하는 투자자들조차 '더 큰 걱정거리는 다른 데 있다'고 입을 모은다. 중국의 신용거품이나 유로존의 경제둔화 등 경고음은 전 세계 곳곳에서 울리고 있다.

불안한 징조가 퍼지는 때는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가 커지는 때이기도 하다. 역설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시장이 원하는 안전자산을 꾸준히 공급하고 있다. 연간 1조달러 안팎의 재정적자를 내면서다.


UBS 글로벌 웰스 매니지먼트의 최고투자책임자인 토머스 웨커는 "투자자들은 무언가 나쁜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두려움이 들면 일반적으로 미국채를 사들인다"며 "전 세계 도처에서 징조가 좋지 않다. 그 결과 달러표시 부채(국채)로 자본이 끊임없이 흘러들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인기비결은 다른 선진국 국채와 달리 플러스 수익률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채 역시 과거 기준으로 보면 여전히 낮은 금리를 제시하지만, 마이너스 수익률로 진입한 유럽이나 일본 국채에 비해서는 훨씬 조건이 좋다.

과거의 교훈이 미국채를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투자자들은 이제 '무엇이 진짜 안전한 자산인가', '어떤 자산이 부풀려졌나' 등을 꼼꼼히 확인하고 있다. 10여년 전 주요 신용평가기관들로부터 안전성 최고 등급을 받았던 미국 모기지담보채권이 전 세계 금융시스템을 망가뜨린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애버딘 스탠더드 인베스트먼트의 글로벌 전략팀장인 앤드류 밀리건은 "글로벌 금융위기 전 사람들은 안전자산을 보유하고 있다고 철석같이 믿었지만, 결국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며 "현재 그같은 의구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표적 사례가 이탈리아다. 밀리건은 "G7 국가 중 한 곳인 이탈리아의 국채는 현재 미국채와 비슷한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며 "그렇다면 안전성 면에서도 미국채와 이탈리아 국채는 동일한가" 되물었다.

미국채가 안전하다고 믿는 이유 중 하나는 달러를 발행하는 미국 정부가 보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이탈리아에겐 없는 능력이다. 이탈리아는 유로화를 발행하는 나라라기보다 유로화를 사용하는 나라라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2010년대 초 유로화 위기 때 그같은 차이점이 두드러졌다. 이탈리아 국채 수익률은 7%대로 치솟았다. 그리스처럼 디폴트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급속 확산됐기 때문이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이탈리아 국채에 보증을 서겠다고 긴급히 나서면서 위기가 잦아들었다.

반면 경제학자들은 일본의 사례에서 극도의 혼란을 느끼고 있다.

일본 역시 이탈리아처럼 저성장과 막대한 부채, 줄어드는 인구 등 구조적이고 만성적인 문제를 겪고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빚을 끌어다 쓰는 데 별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고 있다.

이는 지난 10여년 동안 미국이나 영국이 겪은 상황이기도 하다. 이들 나라의 공통점이라면 자국 의지에 따라 통화를 발행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다른 관점에서 본다. 10여년 전 안전자산에 대한 투자자들의 '타는 목마름'이 모기지담보채권의 거품을 이끌었다고 주장한다. 달리 말하면 글로벌 금융위기 전부터 미국채가 넉넉하게 공급됐다면, 미국채처럼 안전하게 보이도록 조작된 모기지담보채권에 대한 수요가 억제됐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뉴욕 소재 루스벨트연구소 연구원인 J. W. 메이슨은 "금융위기가 왜 그리 심각한 결과를 낳았는지, 그 이후 회복이 왜 그리 더디게 진행됐는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요인은 안전자산이 부족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채의 역사와 정치적 측면을 전공한 연구자다.

메이슨은 "미국 정부가 돈을 빌려 돈을 쓰면 안전자산을 창출해 시장에 공급한다"며 "이는 많은 이들이 간과하고 있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왜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을 원하는가에 대한 장단기적 이유가 있다. 대표적으로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안정적인 은퇴자금이 필요한 인구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여기에 경제성장 둔화, 시장침체 등에 대한 단기적 불안감이 커졌다는 이유도 보태진다.

이런 장단기 요인 때문에 '정부의 적자가 커져 국채가 시장에 쏟아지면 수익률은 치솟는다'는 통념은 현재 통하지 않고 있다.

애버딘 스탠더드의 밀리건은 "미국채 시장이 공급초과로 언제 폭발하느냐 의견이 분분하지만, 안전자산에 몰리는 수많은 투자자들을 봐야 한다"며 "국채시장에선 공급이 종종 수요를 만들어낸다. 이 시대의 독특한 현상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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