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침해 재판이 '실질적 유사성' 판단안해"

2019-08-02 11:39:11 게재

김지영 작가 "법으로 돈버는 시대, 사법민주화 절실"

드라마 선덕여왕 표절사건 10년째 '재판중'

'뮤지컬 선덕여왕'을 창작한 작가가 "드라마 선덕여왕이 내 작품을 표절했다"며 10년째 소송을 벌이고 있다. 뮤지컬 제작자이자 작가인 김지영씨가 주인공이다. 김 작가의 표절사건은 두 번의 대법원 판결을 포함해 7번째 재판을 하고 있다.
김지영 작가가 2005년 뮤지컬 선덕여왕의 대본인 '더 로즈 오브 샤론(The Rose of Sharon)'의 포스터를 제작했다. 사진 김지영 작가 제공


◆서울고법 "접근가능성, 현저한 유사성" = 2012년 2월 서울남부지방법원 제15민사부(재판장 함상훈)는 김 작가의 표절 주장에 대해 '접근가능성(대본을 볼 가능성)이 없다. 역사적 사실이어서 표절이 아니다'라며 원고패소 판결했다.

2012년 10월 서울고등법원 제5민사부(재판장 권택수)는 '접근가능성과 현저한 유사성이 있다. 덕만과 미실의 대립, 덕만의 사막에서의 고난, 김유신과 덕만, 비담 등의 애정관계 등은 모두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독창적인 내용이고, 실질적 유사성이 있다'는 이유로 원고승소 판결했다.

하지만 2014년 7월 대법원 제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접근가능성과 현저한 유사성이 없다'며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2014년 12월 서울고등법원 제4민사부(재판장 이균용)는 파기환송심에서 '접근가능성과 현저한 유사성이 없다'며 원고패소 판결했다. 2015년 5월 대법원 제2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심리불속행으로 기각해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드라마 선덕여왕 작가와 문화방송 등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패해 이렇게 끝나는가 싶던 소송은, 김 작가가 '뮤지컬 선덕여왕' 제작을 위해 대본검토를 맡기고 투자받은 국내 최대 연예기획사 A회사의 드라마 제작 임직원이 퇴사후에 선덕여왕 드라마 작가들과 만든 B회사를 150억원에 모 대기업이 인수한 사실이 알려지며 다시 시작됐다.

◆접근가능성 뒤집는 새 사실 검토안해 = B회사 장 모 대표가 인수대금으로 받은 150억원을 표절 의혹을 받은 작가 두명과 함께 각 50억원씩 나눠가진 사실이 알려졌다. 김 작가는 자기 작품의 표절 대가를 3명이 나눠가진 것으로 판단하고 장 대표에 의한 대본 유출이 추정된다는 사실을 근거로 2017년 12월 그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김 작가는 "드라마 작가들은 장 모씨와 관계가 없는 것처럼 허위 증언도 했는데 그것이 위증이라는 사실도 입증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2019년 6월 서울중앙지법 조순표 판사는 이 건의 쟁점인 실질적 유사성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은 채 '대본을 유출했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며 또다시 원고 패소 판결했다.

김 작가는 "판결문은 '장 모씨가 드라마 작가 김 모씨와 만났다는 사실, 2013년부터 드라마 제작회사를 같이 경영했다는 사정 등 만으로 대본 유출사실을 추단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며 "이는 핵심적으로 주장하지 않은 간접사실에 불과하고, 핵심적으로 주장해 온 것은 접근 가능성과 실질적 유사성에 대한 것인데 이를 전혀 판단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김 작가는 "그동안 재판부는 드라마 선덕여왕 작가인 김 모씨 등 2명이 내가 대본검토를 맡겼던 A사에 접근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로 표절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접근가능성에 대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이번 재판부는 이를 검토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드라마 작가와 매각대금 나눠가져 = 그가 밝힌 새로운 증거란 △함께 회사 매각대금을 나눠가진 사실 △B사 대표 장씨와 두 작가가 2007년 8월부터 드라마계약을 맺는 등 관계가 있다는 사실 등이다. 그동안 표절의혹을 받는 두 작가는 재판에서 장씨를 '드라마 선덕여왕'이 끝난 2010년에야 관계를 맺었다고 진술했다.

또 김 작가는 "내 뮤지컬 대본과 드라마 대본의 실질적 유사성도 재판부가 단 하나도 검토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2012년 10월 서울고등법원이 "미실을 악마화한 작품은 원고의 대본이 유일하고, 드라마 대본 작가가 '정적을 악마로 묘사해 역사를 지나치게 판타지로 풀어가는 게 더 문제'라고 했던 발언은 원고의 대본을 보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진술"이라고 인정했던 부분에 대한 검토가 전혀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내 대본과 드라마 대본 사이에 '미실에게 지거든 사막으로 오라는 대사' 등 170여개의 유사성을 발견했고, 이는 표절이 아니면 우연히 발생할 수 없음을 증명했음에도 이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서울대 법대 정상조 교수는 170개 유사성을 기초로 분석한 감정서에서 드라마 작가가 내 대본을 본 사실이 인정된다고 결론내렸는데 이 역시 검토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1년반에 걸친 소송에서 제출된 핵심 쟁점에 대한 주장을 단 하나도 아무 설명도 없이 내린 위법한 판결"이라며 "대기업이 대형로펌들을 독점하고, 법이 사업이 된 시대에 사법민주화가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장병호 기자 bh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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