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관리체계, 현장에선 작동 안했다”

2019-10-22 11:47:11 게재

인천 5세 아동 사망사건 … 살릴 수 있던 5번의 기회

① 계부의 접근금지 위반, 법대로만 조치됐다면

② 피해아동보호명령, 기간연장신청만 했다면

③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좀 더 신중하게 판단했다면

④ 아동복지위 건너뛰어 … 퇴소절차 제대로 밟았다면

⑤ 아동 데려오자마자 부모교육 중단 … 사후관리?

“수차례 끔찍한 아동학대 사건을 겪으면서 법을 바꾸고 시스템을 갖춘다고 했건만, 현장에서는 법도 시스템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

계부에게 2주간 수시로 폭행당해 숨진 인천 5세 아동 학대사망사건. 아이의 사망시점에서 1년여 전으로 돌아가 사건을 되짚어 본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결론이다. 김 의원실이 차근차근 되짚어본 바에 따르면 이 사건 피해자 5세 아동은 사망하기 훨씬 전부터 대한민국 아동보호체계 안에 들어와 있었고, 아이를 살릴 수 있는 5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허망하게 놓쳤다. 올해 첫날 발생했던 의정부 아동학대 사망사건처럼, 2013년 10월 ‘소풍 가고 싶다’고 했다가 계모에게 맞아 숨진 8살 서현이처럼.
9월 29일 오후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 미추홀경찰서에서 5살 의붓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이모(26)씨가 인천지법에서 열릴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현기 기자


김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첫번째 기회는 2018년 8월 6일 학대 가해자인 계부 이씨가 피해아동에 대한 접근금지 위반을 어겼을 때다. 앞서 같은 해 7월 16일 인천가정법원은 피해 아동에 대해 1년간 보호명령을 내리면서 이씨에게 접근제한 및 전기통신제한을 결정했다. 이씨는 이미 아동학대로 징역 1년과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상태였다. 그러나 접근 제한이 결정된 지 20일도 되지 않아 이씨는 친모와 함께 아이가 머물고 있는 보육원을 찾아가 면회를 하겠다며 폭언과 위협을 했다. 당시 보육원은 인천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과 인천 미추홀구 담당공무원에게 사실을 알렸고, 아보전은 법원에 법 위반 여부를 문의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피해아동보호명령을 위반했을 때 경찰 신고를 통해 접수하면 새로운 사건으로 진행된다’고 안내했다. 한 달 후인 9월 15일에 이씨가 보육원에 무단으로 접근해 경찰에 신고했지만 출동한 경찰은 구두 경고만 하고 돌아갔다.

김 의원은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르면 피해아동보호명령 결정 후 이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 또는 구류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이 법을 어긴 이씨를 법원은 방치했고 경찰은 미온적으로 대처했다. 만약 이 때 법원과 경찰이 법에 따라 조치했다면 참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1년의 보호명령 기간이 끝난 후 피해아동이 원가정으로 복귀하는 과정에서도 허점이 있었다. 보호기간 연장 여부를 가장 잘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아동을 1년 동안 돌봐 온 보육원이나 아보전 담당자일 가능성이 높지만 이들에겐 그런 권한이 없다. 판사 직권이나 피해아동, 피해아동 법정대리인 청구가 있어야 보호명령을 연장할 수 있는데 누구도 연장신청을 하지 않았다.

김 의원실이 인천가정법원에 보호명령 기간 연장을 직권으로 진행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묻자 법원은 “계부가 피해아동보호명령을 위반한 사실이 발견되지 않았고, 아보전으로부터도 특이사항이나 아동학대 재발생 위험성에 관한 의견이 제출된 바 없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계부 이씨가 이미 접근금지 위반 행위를 두 차례나 했고 법원에도 문의를 한 사실이 있지만 정보 공유가 제대로 안 된 셈이다.

그 다음 단계로 아이를 살릴 수 있었던 곳은 아보전과 담당 지자체다. 아동학대 피해아동이 보호시설에서 퇴소하려면 친권자나 후견인이 지자체에 가정복귀 신청을 하고, 지자체가 해당 시설 등으로부터 의견서를 받아 최종결정하도록 돼 있다. 지자체는 그 과정에서 아동복지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친다.

지난 8월 13일 친모가 아동의 가정복귀를 신청하자, 21일 아보전은 '피해아동 가정복귀 의견서'를 미추홀구에 제출했다. 아보전은 의견서에 '계부가 화를 참지 못하는 성향이 있어 재학대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잘못을 인정했다는 점, 향후 상담 등을 약속했다'는 점을 들면서 시설 퇴소를 요청했다. 이씨가 접근금지 명령을 위반했고 보육원 관계자에게 폭언과 위협을 가했다는 내용은 들어있지 않았다.

28일 미추홀구는 아보전이 제출한 의견서를 근거로 퇴소를 최종결정했다. 아동복지심의위원회는 개최하지 않았다. 결국 피해아동은 지난8월 30일 보육원을 퇴소해 집으로 돌아갔고, 집으로 돌아간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김 의원은 "만약 아동복지심의위원회가 열렸다면, 전문가 중 누구 한 사람이라도 퇴소에 반대하는 의견을 제시했다면 이렇게 일사천리로 퇴소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계부는 아동을 데리고 오자마자 아보전과 하기로 했던 심리치료와 부모교육에 일절 응하지 않았다. 아보전 담당자가 올해 9월 4일과 6일 전화를 걸었으나 이씨는 대면 상담 요청을 거부했고, 이후 20일 만에 이뤄진 통화에서도 마찬가지 반응을 보였다.

김 의원은 "만5세 아이가 계부에게 맞아서 사망하기까지 법원도, 경찰도, 지자체도, 아동보호전문기관도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우리 사회 전체가 이 사건의 공범인지도 모른다"면서 "뉴욕의 경우 아동이 사망하면 수사과정과 별개로 아동 죽음의 이유를 밝혀 미래 아동사망사건을 막아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우리도 더 이상 끔찍한 참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이번 사건부터 보고서를 작성하고, 제도 허점을 찾아내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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