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민족 대동단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

3.1운동·사회주의 접합점 속 탄생

2019-11-27 11:32:59 게재

이념 불철저했지만 한국사회주의 운동사 여명기로서 의미

김가진, 상업·무역 종사해 일찍 부르조아사상 접했을 수도

3·1운동 직후 결성된 비밀 독립운동조직 조선민족대동단(대동단)과 총재였던 동농 김가진을 되새기는 학술대회가 열렸다. 26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조선민족대동단 100주년, 한국독립운동사를 재조명하다'가 그것. 사단법인 조선민족대동단기념사업회(이사장 임재경)이 주최한 이날 학술대회에는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가 '1919년의 사조: 왜 한국의 지식인은 좌경화했나'라는 주제로 기조강연을 맡았고, 신주백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소장과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가 각각 대동단의 역사적 의의와 총재였던 동농 김가진의 삶을 재조명했다.
26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대동단 100주년 학술대회.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가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조선민족대동단은 3.1만세운동이 한창이던 1919년 4월 결성된 비밀독립운동단체였다.

하지만 점조직으로 연결된 비밀단체였던 만큼 조직의 전모가 나오지 않아 그동안 세인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더구나 최익환 권태석 김사국 등 초기 지도부 일부가 나중에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했고, 또 일부는 친일단체인 일진회 활동을 함으로써 대동단 활동은 역사학계에서조차 외면받고 있었다.

이날 학술대회는 결성 100년만에 대동단 활동을 복권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1983년 대동단을 처음으로 학계에 보고했던 신복룡 전 교수는 이날 기조강연에서 대동단이 결성된 정치사상사적인 배경을 정리했다. 신 전 교수는 1910년 한일합방 후 1919년 3.1운동까지 일제의 착취는 한국인에게 식민지주의의 정체와 자본주의, 경제적 민족주의에 눈뜨게 하는 배경이 됐지만 사상사적으로 지식인들에게 △자본주의 이념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했고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게 했으며 △러시아혁명 소식은 대안으로서의 사회주의에 눈뜨게 했고 △3.1운동이 지향했던 비폭력 무저항주의 대신 마르크스-레닌주의의 폭력혁명에 눈을 돌리게 만들었다고 전제한 후 '3.1운동과 사회주의의 접합점' 속에 대동단이 출현하게 됐다고 발표했다.

신주백 소장은 '대동(大同)'이라는 유교적 개념을 이름에 넣음으로써 '평등'과 '공화'에 대한 지향점은 있었지만 조직 내부에는 복벽을 추진하는 세력과 민주공화를 지향하는 세력이 혼재했다고 주장했다.

한홍구 교수는 안동 김씨 가문의 귀족이자 서자 출신인 동농 김가진의 개화운동가, 독립운동가로 거듭나는 삶을 조망하며 "한국근현대사에서 개화운동이라는 중요한 흐름이 독립운동으로 이어지는 정말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고 정리했다. 한 교수는 "대동단 활동으로 정부 서훈을 받은 유공자가 83명이나 되는데, 정작 총재였던 동농은 서훈이 안돼 아직 유해가 송환되지 못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토론자로 나선 전우용 한국학중앙연구소 교수는 "전협 최익환 등이 대동단을 만들면서 동농을 총재로 모신 이유는 그가 대단한 귀족이면서도, 당시 유림들이 외면했던 상업 무역에 종사해 일찍 시민혁명사상에 눈뜬 사람일 수 있다"며 "동농의 개인적인 고민과 결단뿐 아니라 중서(중인과 서인)라는 사회세력으로서의 그의 위치를 다시 조망해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학술대회는 김자동 임시정부기념사업회 회장과 나중화 전 광복회 부회장 등 대동단 유족을 비롯해 임재경 조선독립대동단 기념사업회 이사장, 김정륙 광복회 사무처장, 조용준 민족일보 기념사업회 회장, 김기성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등 50여명이 참여했다.

남봉우 기자 baw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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