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특허이야기 (17)

찜질방과 전통지식재산

2019-12-27 11:51:28 게재
박원주 특허청장

추운 겨울이 되면 자주 찾는 한국인의 독특한 문화 공간이 있다. 바로 찜질방이다. 뜨겁게 데워진 온돌에 누워 등을 지지면 굵은 땀방울과 함께 묵은 피로가 싸악 가신다. 식혜 같은 먹거리를 즐기며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울 수 있어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하는 힐링 공간으로 특히 좋다.

한국의 전통 찜질방은 황토바닥을 데워 열을 발산하는 온돌방식이라는 점에서 핀란드식 사우나나 일본식 온천과 확연히 구별되는 차이가 있다. 이러한 찜질방 전통기술에 관한 기록은 조선시대 문헌들에 잘 나타나 있다. 세종실록(世宗實錄, 1418~1450)과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 1433년)에는 세종이 궁궐 내의 전용 찜질방을 자주 애용했고, 백성들을 위한 찜질방인 한증소를 도성에 설치하고 한의사를 배치했다는 기록이 있다. 편마암 구들을 깔고 돌과 황토로 지은 한증소는 아궁이에 소나무를 때고 열방에 솔잎을 깔아 놓아 질병 치유를 꾀했다.

세계 최초 온돌 모형. 출처 전남농업박물관 홈페이지


겨울철 채소 재배에 찜질방의 원리를 사용한 기록도 있다. 산가요록(山家要錄, 1450년)이라는 책에는 구들, 한지를 바른 살창, 수증기 공급용 솥 등을 이용해서 온실을 만든 기록이 있다. 세계 최초라고 알려졌던 독일 하이델베르크 온실보다 170여 년 전에 우리 조상들은 이미 온실을 만들어 한 겨울에 채소를 길러 먹었던 것이다.

민족의 정신적 자산으로 전승되어 온 이런 지식들이 역사서나 박물관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이미 많은 기업들은 새로운 발명의 원천으로 각 지역의 전통지식을 광범위하게 활용하고 있다. 그래서 때론 가치 있는 전통지식에 대한 활용과 거기에서 파생되는 권리를 놓고 국가나 기업 간에 큰 다툼이 벌어지곤 한다. 전통지식이 역사적인 면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그 보존과 보호 가치가 높은 이유다.

특허청은 찜질방에 관한 기록들은 물론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약재, 처방, 공예, 농법 등 50여만 건의 전통지식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오고 있다. 그리고 이 데이터베이스는 외국의 특허청들이 특허심사를 할 때 반드시 검색해야 할 문헌으로 지정되어 있다. 우리의 전통지식이 부당하게 외국 기업의 특허권으로 둔갑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최근 우리 고유의 찜질방 문화도 한류열풍에 가세했다고 하니, 새삼 조상들의 혜안에 탄복하게 된다. 우리의 전통지식들을 잘 보존하고 관리하는 터전 위에서 새로운 전통은 물론 가치 있는 지식재산도 함께 만들어지길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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