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투자자 첫 승소

투자자 손해 '대우조선 70% 책임' 인정

2020-02-21 10:42:19 게재

소송 30여건 중 첫 선고, 102억원 배상 … '정상주가 형성일' 판단, 투자자에 불리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건과 관련해 투자자들이 첫 소송에서 승소 판결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1부(김상훈 부장판사)는 20일 대우조선 분식회계로 투자자들이 입은 주가하락에 따른 전체 손해액 중 70%가 대우조선과 고재호 전 대표이사의 책임이라고 밝혔다. 안진회계법인은 손해액의 30% 한해 이들과 공동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배상액 102억원 중 43억원, 회계법인과 공동배상 = 투자자들이 청구한 소송가액은 166억원이지만 재판부는 전체 손해액을 146억원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146억원의 70%인 102억2000여만원을 대우조선과 고 전 대표, 안진회계법인이 배상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소송가액으로 따지면 약 60% 정도다.

안진회계법인은 전체 손해액 146억원 중 30%인 43억원에 대해 책임이 있지만 대우조선 등과 공동배상 결정을 받았다.

따라서 전체 배상액 102억2000만원 중 43억원은 대우조선과 고 전 대표, 안진회계법인이 배상액을 어떻게 분담할지 결정해야 한다. 안진회계법인이 절반을 내겠다고 하면 21억5000만원이 되는 셈이다.

재판부는 투자자들이 허위로 기재된 대우조선의 사업보고서와 감사보고서를 진실한 것으로 믿고 주식을 취득했다가 이후 주가하락으로 인해 손해를 입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대우조선 등은 "주가 하락의 원인이 조선업 경기의 전반적인 불황 등 다른 요인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감정보고서 또는 이 사건 경제분석보고서의 분석결과만으로 그러한 다른 요인이 대우조선 주가에 미친 영향의 정도를 정확히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2015년 8월 21일 이후 투자자, 소송자격 없어 = 이번 소송의 핵심은 대우조선 주식의 '정상주가 형성일'이다. 대우조선의 분식회계 사실이 외부에 공표된 이후 하락한 주가가 언제 정상으로 회복했는지, 시점을 놓고 다툼이 치열했다.

정상주가 형성일이 늦어질수록 주가하락에 따른 손해배상액이 커지고 피해를 입은 투자자들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대우조선의 분식회계 사실은 2015년 7월 15일 언론보도를 통해 처음으로 외부에 알려졌다. 대우조선이 2조원대의 누적손실을 재무제표에 반영하지 않고 숨겨왔다는 것이다. 전날 1만2500원이던 주가는 30% 폭락해 보도 당일 종가는 8750원이 됐다.

대우조선과 안진회계법인은 이후 6일(영업일 기준 4일)만인 2015년 7월 21일을 정상주가 형성일이라고 주장했다. 주가 하락분은 주당 2810원으로 손해액이 38억여원이라는 것이다. 반면 투자자들은 대우조선 주식의 거래가 중단됐다가 재개된 2017년 11월 3일을 정상주가 형성일이라고 맞섰다.

재판부에서 판단한 정상주가 형성일은 2015년 8월 21일이다. 재판부는 "대우조선이 2015년 회계연도 반기 실적 공시 이후 이 사건 분식회계와 관련해 대우조선 주가에 유의미한 영향을 줄 정도의 새로운 정보는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투자자들을 대리하고 있는 법무법인 한누리는 "분식회계 의혹이 제기됐지만 금감원이 감리에 착수한 게 2015년 12월이고 증권선물위원회의 제재 결정이 나온 것은 2017년 3월"이라며 "분식회계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시점을 정상주가 형성일이라고 판단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한누리는 소송대상자들을 엄격히 제한해서 2015년 7월 15일 이전 대우조선 주식취득자들을 원고로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이 판단한 시점을 고려해도 원고적격이 유지된다.

하지만 대우조선을 상대로 한 다른 손해배상소송의 경우 2015년 8월 21일 이후 투자자들도 포함돼 있다. 이번 판결을 그대로 적용할 경우 이들은 배상을 받을 수 없다.

재판부가 투자자들의 주장을 대부분 받아들였지만 '정상주가 형성일'과 관련해서는 대우조선과 안진회계법인의 주장을 상당부분 고려한 것이다. 30여건의 다른 소송에서 2015년 8월 21일 이후 주식을 매입한 투자자들이 많이 포함돼 있다면 손해배상액은 예상보다 크게 줄어들 수 있다.

양측이 항고와 상고를 진행하면 결국 대법원에서 '정상주가 형성일'에 대한 최종 판단이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관련기사]
대우조선 투자자, 첫 승소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이경기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