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수사심의위원회 규정 문제 없나

'구속영장 청구' 심의는 검찰만 신청 가능, 있으나 마나

2020-06-05 11:31:23 게재

이재용 부회장 수사심의위 신청 이틀만에 검찰 구속영장 청구

이 부회장 측 "구속영장 청구 강한 유감 … 수사심의위 신청 무력화"

전문가 "스스로 만든 위원회 무력화" vs "절차 남용하는 것" 양론

2018년 1월 당시 문무일 검찰총장이 검찰 내부 개혁방안의 하나로 만들어 시행한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운영지침(대검찰청 예규)이 도마에 올랐다. 현행 지침상 구속영장 청구(재청구)에 대한 심의 신청은 사건관계인이 할 수 없고 검찰만 할 수 있도록 해 제도 취지를 무색케하고 있어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검찰수사심의위원회를 신청한 지 이틀만에 검찰이 이 부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도 이런 지침상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에 대해 이 부회장 측이 반발하고 있는 가운데 법조계에서는 찬반 양론이 엇갈리고 있다. 한편에서는 구속영장 청구가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존립근거를 무력화하고 무시하는 행태라는 지적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사건의 특수성으로 외부 인사들이 모여 심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만큼 절차를 남용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검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영장 청구│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삼성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이 4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사진은 4일 서울 서초구 삼성 서초사옥 모습. 연합뉴스 서명곤 기자


◆구속영장 청구는 신청 대상서 제외 = 지난 2일 이 부회장 측은 서울중앙지검 검찰시민위원회에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 신청서를 제출했다. 검찰이 올해 초부터 옛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관계자들을 불러 조사하고 지난달 26일과 29일 두 번에 걸쳐 이 부회장을 소환해 조사하는 등 수사가 마무리 단계로 들어서자 수사 계속 여부와 기소 여부를 국민의 시각에서 판단받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검찰은 이 부회장 측 요청에 따라 검찰수사심의위원회 개최에 필요한 관련 절차들을 진행해 나가면서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이복현 부장검사)는 이틀 뒤인 4일 오전 이 부회장 등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 부회장 등에게는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및 시세조종,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가 적용됐다.

이 부회장 측에서 수사심의위 소집 신청을 했지만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운영지침상 문제점이 있기 때문이다.

당초 사건관계인(고소인, 기관고발인, 피해자, 피의자 및 그들의 대리인과 변호인)은 구속영장 청구(재청구)에 대해서는 수사심의위원회 심의를 신청할 수 없도록 돼 있는 것이다.

운영지침 제3조 1항에는 심의대상으로 △수사 계속 여부 △공소제기 또는 불기소 처분 여부 △구속영장 청구 및 재청구 여부 △공소제기 또는 불기소 처분된 사건의 수사 적정성·적법성 등 △기타 검찰총장이 위원회에 부의(附議)하는 사항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운영지침 제6조 1항에는 사건관계인이 위원회 소집신청을 할 수 있는 항목에 구속영장 청구 및 재청구 여부는 제외돼 있다.

그런데 운영지침 제8조와 제9조에는 검찰총장 직권 또는 지방검찰청 검사장이 소집 신청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구속영장 청구 여부에 대한 심의 신청은 검사장이나 검찰총장만 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는 셈이다.

검찰은 이번 구속영장 청구가 운영지침에 따르더라도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검찰 관계자는 "구속영장 청구 등 신병은 사건관계인 신청에 따른 수사심의의 대상이 아니며, 소집 신청으로 수사 절차가 중단되지도 않음이 명백하다"며 "어제(3일) 검찰총장의 최종 승인 이후 기록 조제, 영장 청구서 및 의견서 완성 등 절차를 거쳐 오늘(4일) 오전 법원에 관련 서류를 접수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 신청에 따라) 부의심의위원회 구성 등 필요한 절차는 관련 규정에 따라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법조계 찬반 양론 = 이번 수사심의위 소집 신청과 별도로 진행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찬반 양론이 엇갈리고 있다.

한편에서는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갖는 의미와 설립 취지에 반한 결정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사건의 특수성으로 외부 인사들이 모여 심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만큼 수사심의위원회가 판단할 사안이 아니며 이를 신청한 것은 절차를 남용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김한규 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는 "검찰수사심의위원회는 현 정부 들어 검찰 스스로 개혁의 일환으로 도입한 대표작"이라며 "이재용 부회장의 소집요청에 대해 묘수니 지연책이니 말이 많지만, 어쨌든 사건관계인이 제도화된 위원회를 이용하고자 하는 것은 당연히 보장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런데 검찰은 소집요청에 대한 반응을 영장청구로 드러냈다. 한 마디로 스스로 만든 위원회를 무력화시킨 것"이라며 "더욱 우려되는 것은 일반인들도 위원회 소집요청을 감히 염두에 둘 수 없도록 강력한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와 달리 김정철 변호사(법무법인 우리)는 "아마도 이 사건은 삼성과 제일모직 합병절차문제와 자본시장법 위반혐의가 존재하기 때문에 수사할 전문성을 가진 수사 검사도 몇 안 될 것이다. 이런 사건을 외부 인사들이 모여 심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형사절차의 적법성을 실체보다 중시하지만, 이것은 절차를 남용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검사가 구속영장을 청구할 정도로 수사가 된 사건에 대해 수사심의원회에 심의를 요청한 삼성측 변호인단의 판단이 잘못됐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이 부회장 측 "아쉬움 금할 수 없다" = 구속영장 청구 사실이 알려지자 이 부회장 측은 반발했다. 이 부회장 측 변호인단은 이날 "수사가 사실상 종결된 시점에서 검찰이 구성하고 있는 범죄혐의를 도저히 수긍할 수 없어 국민의 시각에서 수사의 계속 여부 및 기소 여부를 심의해 달라고 수사심의위 신청을 접수했던 것"이라면서 "서울중앙지검 시민위원회의 안건 부의 여부 심의절차가 개시된 상황에서, 전격적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전문가의 검토와 국민의 시각에서 객관적 판단을 받아 보고자 소망하는 정당한 권리를 무력화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심정"이라고 반발했다.

이어 "심의위 절차를 통해 사건 관계인의 억울한 이야기를 한번 들어주고 위원들의 충분한 검토와 그 결정에 따라 처분했더라면 국민도 검찰의 결정을 더 신뢰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한편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부(원정숙 부장판사)는 오는 8일 오전 10시 30분 삼성그룹 경영권 부정승계의혹 사건 피의자인 이 부회장 등에 대한 구속전 피의자신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할 예정이다. 영장심사 결과 구속영장 발부 여부에 따라 이 부회장의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심의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구속영장이 발부되면 심의 자체가 의미를 상실할 것으로 보이며, 기각되면 이 부회장 측의 입장에 힘이 실릴 전망이다. 운영지침 제19조에 따르면 주임검사는 현안위원회의 심의의견을 존중해야 한다고만 규정하고 있어 심의위 결정을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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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일 오승완 안성열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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