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부회장 '주가조작·부정거래 목적' 입증이 최대 쟁점

2020-06-05 11:49:28 게재

검찰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 불공정거래' 경영권 불법승계의혹 겨냥

변호인단 "검찰이 구성하고 있는 범죄혐의 도저히 수긍할 수 없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일 법원의 영장실질심사를 받게 되면 최대 쟁점은 자본시장법상 시세조종(주가조작)과 부정거래 혐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주가조작의 경우 고의 이외에도 목적을 입증해야 한다는 점에서 검찰 수사의 완결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 '삼성 경영권 불법 승계의혹' 정조준 |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삼성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이 4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사진은 지난달 26일 이 부회장이 검찰에 비공개 소환조사를 받을 당시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관계자가 들어가는 모습. 연합뉴스 류영석 기자


반면 변호인단은 이 부회장이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벌어진 불공정거래 혐의들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주장할 예정이다. 변호인단은 4일 입장문을 통해 "수사가 사실상 종결된 시점에서, 이 부회장 등은 검찰이 구성하고 있는 범죄혐의를 도저히 수긍할 수 없다"고 밝혔다.

변호인단은 또 "이 사건 수사는 1년 8개월이라는 장기간에 걸쳐 50여 차례 압수수색, 110여 명에 대한 430여회 소환조사 등 유례가 없을 정도로 강도 높게 진행돼 왔고, 이 부회장과 삼성그룹에서는 경영 위기 상황에서도 검찰의 수사를 묵묵히 받아들이면서 성실하게 수사에 협조해왔다"며 "검찰이 이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그룹 관계자 3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데 대해 변호인단은 강한 유감의 뜻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자본시장법 전문가들은 주가조작과 부정거래 등 불공정거래의 경우 법정형이 높아서 '스치기만 해도 골로 간다'는 말을 할 정도다. 불공정거래로 얻은 이득이나 손실 회피액이 50억원이 넘으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이다. 대법원에서 정한 증권·금융범죄 양형기준은 이득액이 300억원 이상이면 기본형량을 7~11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감경요인이 있어도 최저 형량이 징역 5년이어서 집행유예 판결 자체가 불가능하다.


유죄가 인정될 경우 중형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법원은 혐의 입증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주가조작의 경우 △매매가 성황을 이루고 있는 듯이 잘못 알게 할 목적 △타인의 판단을 그릇되게 할 목적 △타인의 매매를 유인할 목적 △시세를 고정시키거나 안정시킬 목적 △부당이득을 취득할 목적 등이 입증돼야 한다. 주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고의'를 넘어서 '목적'을 요구하고 있다. 영장실질심사에서 검찰과 삼성의 치열한 공방이 예상되고 구속영장 발부 여부에 따라 한쪽은 치명상을 입게 될 전망이다.

◆이 부회장 지시 또는 보고 받았나 = 이 부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삼성물산 합병과정의 불공정거래혐의와 관련해 "지시나 보고를 받은 적이 없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검찰은 삼성 미래전략실의 적극적인 개입이 있었다고 보고 이 부회장 역시 보고를 받았다는 정황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이 그룹의 경영권 확보를 위해 불공정거래를 벌이려는 충분한 목적도 있다고 판단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은 이 부회장의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갖고 있다.


합병 전인 2015년 9월 이전까지 이 부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삼성전자 지분은 0.57%에 불과했다. 하지만 합병 이후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지분은 11.84%로 크게 늘었다.

이같은 지분 변화가 가능했던 것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비율에 있다. 이 부회장은 2015년 9월 전에 삼성물산 주식을 한주도 갖고 있지 않았다. 반면 제일모직 주식은 23.24%를 보유했다. 당시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을 4.06% 보유했고 삼성생명 지분을 19.34% 갖고 있었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을 7.21% 보유했다. 따라서 삼성물산을 합병하면 이 부회장은 단숨에 삼성전자 지분 11.27%의 의결권을 추가로 확보하게 된다. 삼성물산 주식이 한주도 없었던 이 부회장은 제일모직이 삼성물산과 합병을 하면서 통합 삼성물산 지분을 16.40% 보유한 대주주가 됐다.

◆제일모직 가치 상승시킨 '삼바 분식회계' = 삼성물산 합병과정에서 등장하는 중요한 사건은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 분식회계다. 삼바는 제일모직의 자회사로 삼바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제일모직의 가치가 달라지고 삼성물산의 합병비율에 변화가 생기기 때문이다.

당시 삼바에 대한 가치를 안진회계법인은 8조9360억원, 삼정회계법인은 8조5640억원으로 평가했다.

이같은 평가결과 등을 바탕으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비율은 0.35:1로 결정됐다. 제일모직 주식 1주는 삼성물산 주식 약 3주와 동일한 가치를 갖게 됐다. 제일모직 지분이 많은 이 부회장이 가장 큰 수혜자가 된 셈이다. 삼성물산 주주들은 회사에 대한 심각한 저평가로 손해를 입었다며 반발했다.

삼성물산 합병당시 단순히 의혹으로만 불거졌던 경영권 승계의혹은 삼바 분식회계 사건을 계기로 혐의가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금융당국이 삼바 분식회계 조사과정에서 입수한 삼성의 내부문건에는 2015년 8월 '물산 TF 송도 방문의 건'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삼성물산 통합을 위한 TF가 삼바를 방문했다는 내용이다. 문건에는 '(삼성물산) 합병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적정한 기업가치 평가를 위한 안진회계법인과의 인터뷰 진행, 자체 평가액(3조원)과 시장평가액(평균 8조원 이상)의 괴리에 따른 시장영향(합병비율의 적정성, 주가하락시)의 발생 예방을 위한 세부 인터뷰 진행' 등이 적시돼 있다. 또한 삼바의 콜옵션 부채를 반영하면 기업가치가 하락하는데 이를 상쇄하기 위해 할인율을 조정해서 평가액을 유지하겠다는 내용이 나온다. 삼성물산 합병시 제일모직 주가의 적정성 확보를 위해 삼바의 가치를 목표수준인 6조9000억원에 맞췄다는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내용이다.

◆삼성 내부문건, 삼바 자본잠식 우려 = 금감원은 삼바 분식회계와 관련한 1차 감리 후 삼성의 내부문건을 입수했다. 문건에는 삼바의 회계처리를 변경하지 않으면 회사의 자본잠식과 모회사인 제일모직의 부채증가, 삼성전자의 손실 발생 등이 예상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이에 대한 대응방안도 포함돼 있었다.

내부문건에 따르면 삼성물산은 2015년 9월 합병시 삼바의 가치를 6조9000억원으로 평가했고 보유 중인 삼바 지분 51%에 대해 3조5000억원으로 자산평가를 했다.

하지만 삼바의 가치평가 결과는 미국 바이오젠의 투자를 받아 설립한 조인트벤처인 삼성바이오에피스에 대한 바이오젠의 콜옵션(주식매수청구권)으로 인해 문제가 됐다.

바이오젠이 2015년에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으면 콜옵션 가치를 삼성바이오의 파생상품 부채로 간주해 회계처리 해야 한다는 점을 삼성측은 우려했다. 콜옵션 부채(시가평가)를 회계에 반영할 경우 삼바는 완전자본잠식에 빠지기 때문이다. 자산은 1조8000억원인 반면 부채는 2조7000억원이 된다. 문건에는 '자본잠식시 기존 차입금 상환과 신규차입, 상장 불가'라는 내용이 나온다. 삼바의 모회사인 제일모직은 연결부채 1조8000억원 증가, 삼성전자는 손실 3000억원이 발생할 것이라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검찰은 이같은 내용의 삼성 내부문건 등을 토대로 경영권 승계 작업을 주도한 미래전략실이 삼성물산 합병과 삼바 분식회계의 전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합병비율을 변경하기 위해 자본시장법과 외부감사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를 이 부회장에게 적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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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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