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반도체전쟁, 시장에 어떤 영향 미칠까

2020-09-11 11:00:07 게재

미국의 대중조치 단기효과

장기화 땐 미국도 비싼 대가

미국 시장조사기관 '국제사업전략'(IBS)에 따르면 반도체시장은 2031년 또는 2032년쯤 1조달러 규모가 될 글로벌 산업이다.

미국은 프로세서와 기타 핵심 부품에서 선두다. 한국은 메모리반도체에서 선두다. 유럽 기업들은 전력반도체에 선두다. 전기차 시장 규모가 거대한 덕분이다. 일본은 스마트폰과 자율주행차에 쓰이는 이미지센서의 핵심 공급처다.

중국은 올해 전 세계 반도체의 47.5%를 소비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중국 내 반도체 소비 패턴에 거대한 변화가 있다. IBS 헨델 존스 회장은 10일 아시아타임스 기고에서 " 중국의 반도체장비 공급업체의 경쟁력이 강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2006년 중국 시장에 유입된 반도체 11.5%는 중국 전자장비 공급업체가 소비했다. 개인용 컴퓨와와 자동차 등에 주로 쓰였다. 중국 기업들은 올해 중국 시장의 반도체 50%를 소비할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큰 몫은 스마트폰이 가져간다. 2030년 중국 기업들은 중국 시장 반도체의 68.6%를 소비할 것으로 전망된다. 스마트폰이 여전히 큰 시장이겠지만, 인공지능(AI)과 관련된 데이터센터도 상당히 커질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산업은 지난 10년 간 많은 변화를 겪었다. 향후 10년 동안엔 더 극심한 변동이 예상된다. AI기술 채택 증가가 주요 요인이다.

미국의 상황

인텔과 AMD, 엔비디아 등 미국 기업들은 컴퓨터 응용장치에 쓰이는 CPU와 GPU 부문에서 글로벌 리더다. AMD와 엔비디아는 최신 모델의 웨이퍼 공급업자로 삼성, TSMC와 거래한다. AMD는 일부 이전 모델의 경우 글로벌파운드리와 거래한다. 인텔은 자체적인 웨이퍼 공장을 갖고 있지만, 최근 새로운 프로세서 설계에서 TSMC, 삼성과 거래할 것임을 시사했다.

퀄컴은 스마트폰 칩셋 부문에서 글로벌 리더다. 최신 설계를 위해 삼성이나 TSMC로부터 웨이퍼를 공급 받는다. 애플은 직접 스마트폰 칩셋을 설계하며 TSMC로부터 웨이퍼를 공급 받는다. 브로드컴은 이더넷 네트워킹 설계에서 글로벌 리더다. 아시아에서 웨이퍼를 공급 받는다. 마벨테크놀로지그룹도 네트워킹 시장에서 이름 난 기업이다. 역시 아시아에서 웨이퍼를 사온다.

마이크론테크놀로지는 D램과 3D낸드에 경쟁력을 갖고 있다. 웨이퍼는 대만과 싱가포르 일본에서 사온다.

텍사스인스트루먼츠는 아날로그반도체 부문의 리더다. 웨이퍼는 텍사스에서 공급 받는다. 이 회사는 독일과 중국 일본에 웨이퍼 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글로벌파운드리는 뉴욕주 몰타에 웨이퍼 공장을 갖고 있다. 삼성은 텍사스주 오스틴에 웨이퍼 공장을 갖고 있다. 하지만 두 곳 모두 최첨단 기술을 구현하는 곳은 아니다.

미국엔 기타 반도체 기업들이 많다. 웨이퍼 팹 또는 팹리스에 한정된다. 온세미컨덕터 등 웨이퍼 제조 능력을 가진 기업이 일부 미국에 있지만, 파운드리 능력을 가진 주요 기업들은 대개 아시아에 몰려 있다.

미국 반도체 기업의 웨이퍼 공급은 주로 아시아에서 이뤄지지만, 반도체 제조장비 선도기업들은 주로 미국에 있다.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와 램리서치, KLA, 비코인스트루먼츠 등이다. 반도체 제조장비의 주 고객들은 아시아에 있다.

시놉시스와 케이던스디자인시스템, 지멘스의 멘토그래픽스, 앤시스 등은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 부문의 선도기업들이다. 이들 기업은 미국에 있지만 글로벌 시장을 공략한다.

반도체 산업 생태계에 있는 미국 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논다. 당연히 글로벌 무대에서 고객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미국 기업의 총유효시장(TAM)을 위축시키는 조치는 당연히 다른 나라 기업들의 총유효시장을 늘려주게 된다.

IBS 존스 회장은 "시장과 공급망에 중대한 차질이 빚어지지 않는 한 미국 반도체 기업들은 2030년에도 글로벌 경쟁력을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미국 기업들이 공급망 차질 없이 아시아에서 웨이퍼를 조달 받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많은 경우 웨이퍼 가치는 최종산물 가치의 35% 정도를 차지한다. 미국 기업들은 계속 나머지 65%를 유지하길 원한다.

중국의 상황

중국 스마트폰 기업들은 올해 전 세계 스마트폰 총 공급의 65.1%를 차지할 전망이다. 당연히 중국은 반도체 대량 구매국이다.


화웨이는 직접 자사 스마트폰 칩셋을 설계하는 반면 다른 중국 스마트폰 기업들은 미국 퀄컴과 대만 미디어텍 등 나라 밖의 선도적인 반도체 기업에서 칩셋을 구매한다. 화웨이의 최첨단 제품에 대한 웨이퍼는 TSMC에서 공급한다.

비슷하게 중국 기업들의 핵심 D램 공급업체는 삼성과 SK하이닉스, 마이크론테크놀로지다. 중국은 자국의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에 투자하고 있지만 결과물은 현재까지 제한적이고, 향후 5년 동안 크게 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그러나 SK하이닉스는 중국과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 중국 우시에 대규모 제조공장을 세웠다.

낸드플래시메모리도 비슷한 상황이다. 중국 기업들은 삼성과 키오시아, 마이크론, SK하이닉스, 인텔 등에 의존한다. 중국은 양쯔메모리에 대거 투자하고 있지만, 중국 시장에서 양쯔메모리의 영향력이 향후 5년 내 크게 변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삼성은 중국 시안공장에 추가적으로 150억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중국 시장은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 낸드플래시 공급망과 관련해 큰 영향력을 미칠 전망이다.

중국은 웨이퍼 제조 능력을 확대하고 있다. SMIC는 상하이 제조공장 확대에 100억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목표는 자국 내 웨이퍼 제조 시장을 장악하기 위한 것이다. SMIC의 기술력은 TSMC에 비해 2~3세대 뒤처진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SMIC는 향후 5나노미터급 웨이퍼를 생산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미국이 반도체 기판에 회로를 조밀하게 그려내는 ASML사의 극자외선 리소그래피 스캐너를 공급 받을 수 없도록 막았기 때문이다.

미국이 SMIC마저 블랙리스트에 올리게 되면 자체적으로 웨이퍼를 공급하겠다는 중국의 계획은 더 늦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SMIC는 대략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 5% 비중을 차지한다. 다른 파운드리 기업이 18~24개월 정도면 SMIC를 대체할 수 있다.

중국은 웨이퍼 제조 능력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에이멕(AMEC)이 높은 시장가치를 갖고 있긴 하지만,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의 경쟁자를 향후 5년, 잠재적으로는 10년 이내에 따라잡긴 어렵다.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도 비슷한 상황이다. 케이던스나 시놉시스 등 미국 기업과의 격차는 5~10년 내 좁히기 힘들다.

대신 중국은 5G스마트폰이나 5G인프라, 개인용 컴퓨터, TV, 자율주행차, 전기자동차, 로봇, 초고속열차, 데이터센터 등에서 강력한 전자장비 산업을 구축하고 있다. 중국이 전자장비와 AI 등에의 성장전략을 성공시키려면 중국 밖에서 만든 반도체가 절실하다.

올해 외국 반도체기업들이 중국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1.0%으로 전망된다. 2030년에도 중국은 필요한 반도체 60.2%를 외국 기업으로부터 조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IBS 존스 회장은 "그 결과 중국 기업들이 다양한 곳에서 반도체를 공급 받는 게 중요해졌다. 마찬가지로 외국 반도체기업들도 광활한 중국 시장에 진입하는 게 중요해졌다"고 전했다.

무역 갈등의 고조

중국은 반도체업계 지원을 늘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년 동안 성과는 엇갈렸다. 하지만 이젠 미중 갈등 심화로 국가적 지원이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중국은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향후 10년 동안 매년 500억달러씩 5000억달러를 지원할 방침이다. 이러한 지원은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 것은 물론 경쟁력 있는 공급망을 짜는 데도 투입된다.

상하이증시 커촹반(기술·벤처기업 전문 증시) 역시 고급기술 제품을 개발하는 새로운 반도체 회사에 자금을 지원하는 긍정적 원천이 될 것이다.

추가적으로 중국 정부의 자금지원 상당 몫은 외국 기업들이 중국 내 제조공장을 설립하는 것에도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삼성과 SK하이닉스, 인텔 등과 같은 투자패턴을 유인하기 위해서다.

IBS 존스 회장은 "미국 반도체 산업계에도 중국 시장은 중요하다. 향후 중국 시장에 접근하기 위해선 미국 정부가 중국 기업들에 부과한 제품공급 제한조치를 철회해야 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중국 시장은 삼성과 SK하이닉스, 현대자동차, LG전자 등이 있는 한국에도 중요하다. 한국의 주요 기업의 시장이 미국의 조치로 악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 정부가 이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할지 관심이 쏠린다.

유럽 기업들도 비슷한 상황이다. 스위스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나 독일 인피니온테크놀로지, 네덜란드 NXP세미컨덕터스, 폭스바겐, 지멘스 등 중국 시장에 발을 들여놓은 기타 유럽기업들은 미국 정부의 조치 악영향을 받게 될 전망이다.

미국 기업과 소비자들 역시 중국산 제품의 구매자들이다. 스마트폰과 개인용 컴퓨터, TV 등이다. 중국 대신 다른 나라에서 정밀제품을 위한 공급망을 짜는 건 상당한 도전과제다. 중국에선 고도로 자동화된 공장과 저비용-고품질 제품 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중국의 활동을 막으려고 계속 시도한다면 미국과 중국 기업 모두 부정적 영향을 받게 된다. 현재까지 미국 정부는 계속 중국의 기업 활동을 봉쇄하려고 한다. 아직까지 중국 정부는 화웨이나 틱톡 등에 대한 미국의 조치에 직접적 반격을 아끼고 있다.

IBS 존스 회장은 "그러나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는 건 비현실적이다. 중국도 향후 미국을 겨냥한 직간접적 조치를 취할 수 있다"며 "그렇게 되면 미중 무역갈등은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 핵심 문제는 중국 반격의 타이밍, 중국이 미국의 활동을 겨냥해 취할 접근법"이라고 지적했다.

가능한 시나리오 중 하나는 전 세계가 미국 편과 중국 편으로 양분되는 세계다. 이런 분열은 5G에서 가장 먼저 벌어질 수 있다. 소프트웨어에서 주된 차이를 보이는 2개의 글로벌 기준이 생길 수 있다.

올해 기준으로 미국은 AI 부문에서 중국을 앞서 있지만, 중국은 미국보다 최첨단 기술에 더욱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중국의 초고속열차 설계와 제조 기술은 미국을 상당히 앞섰다. 대형배터리 제조 능력이 전기차 등 용도로 구축되고 있고, 로봇택시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

중국 5G 네트워크 설치는 미국을 훨씬 앞섰다. 2030년 AI를 포함한 많은 부문에서 미국을 제칠 것으로 전망된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중국의 반도체 투자는 대폭 늘어나고 있는 반면, 미국에선 그같은 긴급성이 눈에 띄지 않는다. 미국 정부는 새로운 제품 개발이나 제조업 공급망과 관련해 투자를 늘리지 않고 있다.

잘못된 전략

IBS 존스 회장은 "미국은 중국을 경쟁자로 보지만, 중국을 이기기 위해 자국 내 기술과 제조업 능력에 필요한 투자를 하지 않고 있다. 미국이 반도체와 AI 등 핵심 전략부문에서 선도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드라이브를 건다면, 지금이라도 그리 늦은 건 아니다"라며 "하지만 현재 미국 전략에 기반해 예상하면, 중국은 2030년 많은 영역에서 미국을 크게 앞설 것이다. 그때가 되면 미국이 중국과의 기술, 제조업 격차를 좁히기엔 너무 늦다"고 경고했다.

중국을 지체시키려는 미국 정부의 시도는 단기적으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은 미국의 조치에 대항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 기업의 제품을 중국 시장에 들이지 못하게 제한을 걸 수 있다.

미중 무역전쟁이 계속 고조되면, 미국과 유럽 한국 일본 중국 등의 반도체 기업들이 악영향을 받는다.

IBS 존스 회장은 "반도체 부문의 무역전쟁은 미국의 잘못된 전략이다. 중국은 이 갈등을 이용해 자국의 반도체 공급 발전을 가속화하고 중국 시장에 편입되고자 하는 나라들과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다. 미국이 군사와 금융 패권을 가졌다면, 중국은 광활한 시장과 거대한 재정력을 확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갈등은 자원을 소모시킨다. 반면 경쟁은 창의력을 자극한다. 미국은 전략을 재검토해야 한다"며 "글로벌 리더십을 가질 수 있는 핵심 영역인 반도체와 전자산업, 특히 점차 중요해지는 AI부문에 집중해야 높은 가치를 획득할 수 있다. 미국은 중국을 적이 아닌, 강력한 경쟁자로 인식해야 한다. 미국 기업의 추진력이라면 능히 중국을 제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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