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 이번에는 뿌리뽑자

범행수법은 날로 진화, 수사기법은 제자리 걸음

2021-02-15 11:51:44 게재

은밀·교묘해진 범죄에 위장수사 도입 요구 확산

선진국들은 전담 수사조직 운영으로 전문성 확보

온라인그루밍 처벌법은 전 세계 63개국이 도입했으며, 잠입수사도 미국 및 영국, 호주, 캐나다 등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다.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도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계기로 불거진 디지털 성범죄를 근절하기 위해 '디지털 성범죄 근절대책'을 발표했다. 근절대책에서 정부는 디지털 성범죄물 범위를 불법 촬영물, 합성·편집물, 협박·강요·그루밍 등에 의한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 당사자 동의 없이 유포한 영상물 등으로 확장했다.

당시 정부는 대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그루밍 처벌 규정 신설과 위장수사 도입을 제시했다. 하지만 10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정부 대책은 실행되지 않고 지지부진하다.

'조주빈 징역 40년' 텔레그램성착취공대위 기자회견│'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1심에서 징역 40년을 선고받은 지난해 11월 26일 텔레그램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서초동 중앙지법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아동·청소년 성매수 91%, 사이버 공간서 = 그루밍은 사이버 공간에서 성착취(성매매, 성폭력, 성착취물 제작 유포 등)를 목적으로 아동·청소년과 친분·신뢰를 쌓아 심리적으로 지배하는 등 통제·조종 기술을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동·청소년의 인터넷과 스마트폰 이용이 급증하면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카카오스토리, 밴드, 채팅 앱 등의 사이버 공간에서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그루밍 성범죄가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여성가족부가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 위탁 수행한 '2018년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동향분석'에 따르면 아동·청소년 대상 성매수 범행의 주요 수단은 사회적관계망(SNS)이었다. 범행의 91.4%가 SNS를 비롯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이뤄졌다. 성매매 알선 또한 89.5%가 메신저·SNS·앱을 활용했다. 메신저·SNS·앱을 통한 아동·청소년 대상 성매수는 최근 5년간 꾸준히 증가했다. 2014년 46.1%에 머물렀던 사건 비율이 △2015년 68.6% △2016년 82.2% △2017년 85.5% △2018년 91.4%에 달했다. 메신저·SNS·앱을 통한 성매매 알선 역시 2014년 36.4%에서 2018년 89.5%로 급격히 증가했다.

문제는 사이버 공간 특성상 짧은 시간 동안, 동시에 다수를 대상으로 한 그루밍 범죄가 가능해 오프라인에서보다 피해가 크다는 점이다. 실제로 그루밍을 통한 아동·청소년 성착취 범죄는 일반 성범죄보다 성폭력 기간이 약 3배 정도 길어 피해가 장기적으로 지속되고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가 고착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가해자에 의해 조종당한 아동·청소년 피해자가 성착취 피해를 폭로하지 못해 은폐 가능성도 높았다.

이현숙 탁틴내일 대표는 "성적 의도를 가진 그루밍은 그 자체로 아동·청소년에게 심각한 피해를 야기할 뿐 아니라 성착취 범죄의 예비 또는 미수 단계로서 잠재적인 아동·청소년 성착취 범죄"라면서 "아동·청소년이 성착취에 노출되기 전에 아동·청소년을 보호할 수 있도록 그루밍 행위를 범죄로 규정해 처벌 할 필요성이 절실하다"며 법제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시민단체들에 따르면 해외에서는 그루밍 범죄, 특히 온라인 그루밍을 법제화하는 등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성범죄법에 아동에 대한 성적 그루밍과 오프라인에서의 그루밍을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호주는 온라인 그루밍 및 성적 목적을 위해 유인하거나 그 밖에 외설 음란 자료를 아동에게 노출하는 행위를 성착취로 규정해 처벌하고 있다.

또 미국은 18세 미만의 미성년자에게 형사범죄로 기소될 수 있는 성매매 성행위를 하게할 목적으로 설득 유인 강요하는 경우 벌금 또는 10년 이상의 중형에 처하도록 하고 16세 미만의 미성년자에게 형사범죄로 기소될 수 있는 성행위를 하도록 유인하거나 권유할 목적으로 정보를 전송하거나 이를 시도하는 경우 벌금형 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기회제공형 수사 기법 도입 추진 = 더 큰 문제는 처벌 조항이 만들어져도 디지털 성범죄를 적발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범죄자 대부분은 가입자와 IP 추적이 어려운 해외 메신저 프로그램 또는 다크웹에서 범행을 저지른다. 성착취 영상물 거래 등의 경우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를 이용하는 수법들이 속속 등장한다. 여기에 그동안 디지털 성범죄 해결에 결정적 단서를 제공하던 시민사회단체의 잠입제보에도 법적 제약이 발생했다. 아동성착취물 불법촬영물에 대한 시청죄(성폭력처벌법 제14조)가 신설되면서 추정단 불꽃이나 프로젝트 리셋 등의 잠입 제보도 법적으로 곤란해진 상황이다.

이때문에 시민단체들은 함정수사 또는 잠입수사로 불리는 위장수사의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위장수사는 수사관이 신분을 가장해 수사대상자와 접촉하거나 특정 조직 등에 잠입해 범죄정보와 증거를 수집하는 활동을 통칭한다.

국회 입법조사처도 관련 보고서에서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아동·청소년 대상 성적 유인·권유 행위를 적발하고 처벌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며 "익명성에 기반한 텔레그램 다크웹의 경우 공개적 접근이 어려운 만큼 잠입수사를 통한 범죄자 색출이 효과적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경찰은 실무에서 판례를 바탕으로 일부 사안에 대해 위장수사를 진행한다. 2007년 대법원은 위장수사를 범의유발형 수사(함정수사)와 기회제공형 수사로 구분했다. 그리고 '범의를 가지지 아니한 자에 대해 수사기관이 사술이나 계략 등을 써서 범의를 유발케 해 범죄인을 검거하는 경우는 함정수사로 위법함을 면할 수 없다'며 함정수사를 허용하지 않았다. 반면 '범의를 가진 자에 대해 범행의 기회를 주거나 범행을 용이하게 한 것에 불과한 경우에는 함정수사라고 할수 없다'며 기회제공형 수사는 허용하는 입장이다.

국회에 발의된 법안과 경찰 등 정부는 이런 대법원 판례를 수용, 기회제공형 위장수사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반면 일각에서는 위장수사의 남용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런 우려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현재는 구체적 사안에서 위장수사가 허용되는 것인지 여부는 여러 상황을 고려해 수사관이 판단할 수밖에 없다"면서 "이는 곧 수사권의 남용으로 인권까지 침해할 수 있는 상황으로, 명확한 허용 기준과 위장수사를 행한 수사관 보호에 관한 명시적인 법률규정이 필요하다"고 법제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해외 주요국들도 실무적으로 함정수사 기법을 활용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전미 아동 실종 및 착취센터(NCMEC)에서 500만개 이상의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확인하고 4103명 이상의 피해자들의 신원을 파악해 가해자들을 처벌했다. 또 2017년 실크로드라는 조직범죄에 대해 실무적으로 잠입수사 기법을 활용해 최초로 다크웹을 적발 폐쇄했다. 이밖에도 알파베이, 한사 등의 사건도 유사한 방법을 사용해 해결했다.

곽대경 동국대 교수는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지는 성범죄의 경우 익명성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 신원파악도 힘들다"면서 "수사 효울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위장수사가 불가피한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부에서 수사개시를 위해서는 법원 영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데 신속성이 생명인 디지털 성범죄의 특성을 모르거나 알아도 모른척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사전문성 확보도 관건 = 또한 청소년 성범죄 수사전담기구 설치에 대한 요구도 나온다. 기존 수사기법이 많이 노출돼 이를 피하기 위한 다양한 범행수법이 등장하고 지능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사회단체들은 디지털 성범죄의 신속한 수사와 예방을 위한 전담기구를 설치해 △아동·청소년 성범죄에 대한 신고 접수·조사 △영상물 삭제명령부터 전문수사 수행·지원 △전문 수사기법 연구·개발 △국제 공조가 필요한 수사 △피해자 지원 등을 맡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현숙 대표는 "위장수사 등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도 성범죄자들은 아이들에게 접근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교묘하게 수법을 발전시킬 것"이라며 "잠입수사가 실효성이 있으려면 고도로 훈련된 수사관이 전담해 수사할 수 있는 전담수사기관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전담수사기관은 잠입수사뿐만 아니라 가해자와 성착취범죄자와 성착취물에 대한 데이터도 관리해 범죄자를 색출·처벌하고 조기에 개입하여 아동을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세균 총리도 8일 국회국정질의 답변에서 "n번방 사태 대책을 논의하면서 현재 우리 시스템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면서 "신속하게 조사가 이뤄지고 필요한 조치를 취하기 위해서는 현재 우리 시스템보다는 더 진일보한 시스템이 필요하고 특히 컨트롤타워가 있어야 한다는데 공감을 해서 그 방안을 만들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선진국들의 경우 오래전부터 전담기구를 운영하고 있다. 영국 국가범죄수사국 산하 아동착취·온라인보호센터(CEOP)는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에 대한 신고접수, 수사, 조사, 분석, 관계 부처 간 협조, 국제공조 등의 업무를 전문적으로 전담하고 있다. CEOP는 중대조직범죄국과 협력체계를 통해 2010년 비정부 공공기관으로 지정됐다. CEOP는 경찰과 분야별 민간 전문가들의 협력체계로 구성됐다. 이들은 직접적인 아동성착취 수사가 가능하고 온라인 그루밍 잠입수사, 아동성착취물 분석, 아동 구조 등을 수행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2008년 아동대상 사이버범죄근절법에 의해 연방 법무부 산하 아동대상 사이버범죄 대응팀(ICAC)을 설립했다. ICAC는 2020년 현재 4500개의 연방, 주, 지방 수사기관 및 검찰로 이루어진 61개의 협력대응팀이 전국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각 대응팀은 사이버공간 아동ㆍ청소년 대상 성범죄에 대응한 위장수사와 법과학수사 및 형사소추 업무를 전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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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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