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억원대 필로폰 밀수, 징역 15년

2021-06-11 12:01:52 게재

1심 17년보다 줄어, 일당 22명 모두 유죄 처벌

610억원대 필로폰을 국내로 밀수입해 유통시켜 해외에서 도피를 이어간 '아시아 마약왕'이 항소심에서 일부 감형됐다.

서울고등법원 형사7부(성수제 부장판사)는 마약류 불법거래 방지에 관한 특례법을 위반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7년을 선고받은 H씨에 대해 징역 15년과 벌금 3000만원을 선고했다고 11일 밝혔다. 또 7억8000만원을 추징하고, 벌금을 납입하지 않을 경우 300일간 노역장에 유치할 것을 명령했다.

◆가정주부 등 운반책으로 활용 = 2013년부터 캄보디아에서 필로폰을 사들인 뒤 한국으로 소량을 밀수해 온 H씨는 점점 대범해졌다. 자신이 직접 운반하지 않고 가정주부나 대학생을 모집했다. 무료로 여행을 보내준다며 꾀어낸 뒤 '간단한 짐'을 캄보디아에서 한국까지 운반할 것을 요구했다. 운반책 16명이 21차례나 H씨의 심부름 요구에 응했다. 이런 방식으로 2017년 12월까지 일당과 함께 들여온 필로폰은 18.3㎏에 달했다. 검찰은 이를 61만명이 동시 투약할 수 있는 양으로 시세로 환산할 경우 610억원에 달한다고 봤다.

그는 애초 캄보디아의 다른 마약사범 밑에서 일을 돕다가 나중에는 거래처를 장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당들의 마약 운반도 대담해졌다. 2013년 11월에는 필로폰 3㎏을 한꺼번에 밀수하는데 성공했다. 당시 운반을 도운 일당은 3000만원을 수고비로 받기도 했다.

일당의 범죄는 갈수록 대담해졌다. 여성들은 운반량을 늘리기 위해 속옷과 몸 안에 필로폰을 숨겼고, 아예 여행가방이나 서류가방에 집어넣은 뒤 인천국제공항을 통과하기도 했다. 공범들은 모두 H씨 지시에 의한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는 또 한국에서 판매책을 모집한 뒤 '던지기' 방식으로 필로폰을 판매하기도 했다. 이렇게 185차례 필로폰을 판매했고 그 수익이 1억원 가까이 됐다.

H씨의 꼬리가 잡힌 것은 2016년쯤. 한국에서 검거된 운반책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H씨의 존재를 파악한 검찰은 외교부를 통해 그의 여권을 무효화 했고 인터폴에 적색수배했다. 캄보디아 마약청과 공동으로 2년 가까이 추적한 끝에 H는 한국 수사요원에 붙잡혔다. 그는 캄보디아 이민국 구치소에 수감됐지만 이내 탈출한 뒤 태국으로 도주했다. 이번엔 국가정보원까지 나섰다. 여러 관계기관간의 공조 끝에 H씨는 2019년 말 다시 체포돼 태국에 구금됐다. 4년간의 수사가 마무리 된 것이다.

그러나 또 다시 문제가 터졌다. 코로나19로 인해 국내 송환에 제동이 걸렸다. 당시 태국은 외국인의 입국을 전면 제한한 상태라 H를 송환할 수사관들이 캄보디아에 들어갈 수 없었다. 검찰과 대사관, 태국 이민청 등의 협의가 3개월여 진행된 끝에 검찰은 H씨를 지난해 5월말 강제송환하는데 성공했다.

◆항소심 몰수된 마약 고려 감형 = 검찰은 재판부에 징역 25년과 벌금 1억3000만원, 추징 7억9000만원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1심 재판부는 H씨가 범행 일부를 부인하는데도 수사기관의 공소사실에 문제가 없고, 범행에서 핵심역할이라는 점을 고려해 징역 17년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이 시작되자 H씨는 검찰이 자신을 조사하면서 진술한 일당 중 1명이 사망해 법정 진술을 하지 않았고, 자신에 대한 반대신문이 이뤄지지 않았으니 공범들의 진술은 증거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 일부 증인이 법정에서 증언을 번복했다며 일부 무죄를 주장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범행 대부분을 인정했고, 압수된 필로폰 4.6㎏이 국내에 유통되지 않은 점을 참작했다"며 감형이유를 설명했다.

검거된 그의 일당은 모두 22명이다. 법원은 이들에게 징역 2년6개월에서 9년까지 징역형을 선고했다. 주범인 H가 제일 나중에 잡혀 징역 15년형을 받게 된 것이다.
오승완 기자 osw@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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