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용 중계기' 설치, 줄줄이 징역형

2021-07-28 12:27:12 게재

고액알바 꼬임에 실형도

'아들 부탁' 모친도 처벌

보이스피싱 범죄가 줄지 않는 가운데 경찰이 검거한 보이스피싱용 변작중계기(심박스)를 설치한 이들이 잇달아 법원에서 징역형 판결을 받았다.

28일 법조계와 경찰에 따르면 심박스를 설치한 경우 사기나 사기방조,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등의 혐의가 적용될 수 있으며 1년 이상의 징역형이 선고되고 있다.

심박스란 보이스피싱 일당이 피해자를 속이기 쉽도록 발신자 전화번호를 변경하는데 도움을 주는 기기를 말한다.

'02~'나 '010~' 등으로 시작하는 전화인데 어색한 발음으로 돈을 요구하는 보이스피싱 전화들이다. 사실 이들은 인터넷 전화를 이용해 보이스피싱을 시도한다. 주로 '070~' '15~' '25~' 등의 번호가 쓰인다. 국가에 따라 해당 국가번호가 발신자 번호에 뜨는데, 이런 경우에 수신자는 보이스피싱 등을 의심해 아예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해외에 있는 보이스피싱 일당이 '성공률'이 줄어들자 고안해 낸 기기가 사설중계기다. 이른바 '심박스'로 불리는 이 중계기는 국내 이동통신사로부터 사들인 선불폰 유심을 중계기에 삽입하는 방식으로 실제 전화번호를 속인다. 해외나 인터넷전화로 걸려온 보이스피싱 전화가 010이나 국내 지역번호가 찍히는 게 이러한 중계기 때문이다.

서울경찰청은 3월까지 전국 50여개 지역에서 심박스 161대를 적발했다. 심박스에는 유심칩이 200개 넘게 꽂혀 있었고, 이를 설치·관리해온 10여명을 검거했다.

사기 범죄가 IT 기술과 만나 진화한 셈이다. 이 중계기는 대단한 장비가 아니다. 사무실이나 집에서 쓰는 IP공유기만한 크기다. 전원만 연결해 꽂아 놓으면 되니 손쉽게 유지·관리할 수 있다.

보이스피싱 일당은 인출책으로 '알바생'을 모집했다.

일자리를 구하던 20대 A씨는 "인터넷 설치하는 일인데 주당 100만원의 수당을 지급하겠다"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는 지난해 10월부터 올 3월 검거될 때까지 전북 군산의 한 공동주택에 여러 대의 심박스를 설치했다. 나중에는 보이스피싱 일당에게 속은 이들로부터 현금을 송금받기도 했다. A씨는 사기와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7단독 강혁성 부장판사는 A씨에게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강 판사는 "피해금액이 크지 않고, A씨가 생계에 곤란을 겪는 점 등을 고려했다"면서도 "보이스피싱 범죄의 핵심 수단 성격을 가진 행위로 법률 위반을 직접 수행했다"고 실형 선고 이유를 설명했다.

보이스피싱이 아닌 마스크 판매 사기에 심박스가 이용된 경우도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4단독 정성완 부장판사는 사기방조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60대 B씨에게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김씨는 유심 54개를 꽂은 심박스를 설치, 운영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보이스피싱 일당은 코로나19로 인해 마스크 대란이 벌어지자 마스크 판매 사기에 심박스를 사용했다. 일당은 '마스크를 대량 판매하겠다'는 게시물을 작성한 뒤 피해자들로부터 6억원이 넘는 돈을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B씨는 본인이 얻은 이익이 없었지만 피해가 커서 상대적으로 큰 벌을 받게 됐다. 해외에 체류하던 아들이 심박스 설치를 부탁해 별것 아니라고 생각해 설치했던 것이다. 철없는 아들의 부탁을 들어준 엄마는 경찰에 검거된 뒤 구속됐다. 그는 1심 판결에서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 석방됐다.

A씨는 1심 판결 직후 항소했지만, B씨는 아직 항소 여부를 결정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심박스 설치 대가로 2주마다 100만원을 받기로 한 C씨는 자신의 집에 설치했다가 경찰에 검거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7단독 남신향 판사는 C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경찰 관계자는 "대개 보이스피싱 인출 심부름처럼 고액 알바를 통해 심박스 설치가 이뤄진다"며 "출처를 알 수 없는 통신 기기 등에 대해서는 함부로 설치하지 말고 언제든 경찰에 문의·신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승완 기자 osw@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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