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근로 중 심장질환 악화로 사망, 업무상 재해"

2021-09-27 11:22:33 게재

대법원 "평소 질환관리 잘 했다면 업무관련성 인정"

심혈관계 질환이 있던 공공근로자가 추운 날씨에 야산에서 작업하던 중 쓰러져 급성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면 이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할 수 있을까. 평소 심장 질환을 잘 관리했다면 업무관련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A씨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7일 밝혔다.

A씨는 30년간 직업군인으로 복무하고 2014년 전역한 다음, 2015년 3월부터 비정기적으로 공공근로사업의 일용직으로 일했다.

사고 당일인 2017년 3월 11일 A씨에게 주어진 업무는 무릎 아래 높이의 소나무에 구멍을 뚫어 약제를 주입하는 일이었다.

A씨는 투입 첫날 오전 8시부터 11시50분까지 강원도 철원군 소재 임야 작업장에서 소나무 천공작업을 하고 11시50분부터 12시30분까지 점심식사를 한 뒤 다시 작업장으로 이동하던 중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10일만에 숨졌다. A씨의 사인은 무산소성 뇌손상으로 인한 급성 심근경색이었다.

A씨의 배우자 B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으나, 공단은 "A씨는 과거부터 고혈압 협심증 등 치료이력이 있는 등 심혈관질환 고위험군이었다"며 "과중한 업무로 인한 것이라기보다는 개인의 기존질환이 자연경과적인 악화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부지급 결정을 내렸다. B씨는 불복해 재심사를 청구했으나 기각되자 소송을 냈다.

1심은 근로와 사망간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1심 재판부는 "A씨가 고혈압 등 질환을 앓고 있기는 했으나 2016년 건강검진시 혈압 및 혈당 수치가 정상 경계에 해당할 정도로 질환이 관리되고 있었다"며 사망 당일 A씨의 업무가 신체에 상당한 부담을 주는 작업이었다고 판단해 B씨의 손을 들어줬다.

반면 2심은 "A씨가 건강검진 이후에도 불안정협심증으로 진료를 받았었고, A씨가 2015년 3월부터 비정기적으로 임도신설사업, 사방댐 설치공사사업 등 공공근로사업의 일용직으로 근로해 온 점에 비춰보면 A씨가 사고 당시 했던 천공작업이 A씨에게 과중했거나 스트레스로 작용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원고패소 판결했다. 산업재해로 인정되려면 업무와 질병 사이 인과관계가 인정돼야 하는데 A씨가 앓던 기존 질환이 공공근로사업으로 갑자기 악화해 사망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사망과 업무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며 원고 승소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재판부는 "A씨가 심혈관질환을 가진 상태에서 추운 날씨에 실외에서 과도한 업무를 수행하면서 평소에 정상적인 근무가 가능한 수준인 A씨의 기존 질병 등이 자연적인 진행속도 이상으로 급격하게 악화돼 급성 심근경색으로 발현됐고, 그 결과 사망에 이른 것으로 볼 여지가 크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A씨에게 고혈압, 불안정 협심증, 좌심실부전 등의 기존 질환이 있었으나 이러한 기존 질환은 잘 관리되고 있었고, 정기 검사에서도 협심증 재발을 의심할만한 정황은 없었다"며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A씨의 기존 질환이 자연적인 진행 경과만으로 급성 심근경색을 일으킬 정도로 위중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이어 "A씨가 객관적인 과로 상태가 아니었다는 전제에서 망인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본 원심의 판단에는 업무상 재해의 상당인과관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음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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