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사회 고용연장

평생직장 시대를 넘어 평생고용 시대로

2021-10-19 11:14:14 게재

정년연장보다 고용연장으로 … 임금체계·직무구조 개편, 세대갈등 해소, 노동자 참여 선결요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되고 있다. 2025년에는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이 전체 인구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로 접어든다.
평균수명이 늘어 오래 사는 것은 축복할 일이다. 하지만 둘이 만나 한명을 낳지 않는 합계 출산율(0.84)을 생각하면 문제가 심각하다. 고령인구 증가로 복지비 수급은 늘어나는데, 소득세 납세자는 줄어서 정부 재정건전성은 악화되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50년 뒤에는 생산가능인구(15~64세) 1명이 노인 1명을 부담해야 하고 한국의 노인부양 부담은 세계 평균보다 3배 이상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해법은 있다. 출산율을 높이거나 고령자의 고용을 연장시키면 된다. 특히 고령자의 고용연장은 출산율과 달리 고령자가 적극적으로 원하는 것이라는 데 희망이 있다.
하지만 고용연장을 위해 우리 사회가 넘어야 할 쟁애물이 많다. 고도성장기에 형성된 연공성이 높은 임금은 기업의 고용연장에 대한 자발적 의지를 꺾는다. 임금제도를 바꿨을 때 직무도 생각해야 한다. 가뜩이나 청년들의 구직난 속에서 젊은 세대와의 고용충돌은 없는지도 짚어야 한다.

고령사회대응연구회 발족│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는 지난 9월 9일 고령사회대응연구회 발족시키고 제1차 회의를 열었다. 연구회는 고령자 고용 및 임금체계 개편 방안 등에 대해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사진 왼쪽부터 나윤정 기재부 인구경제과장, 한요셉 한국개발연구원 부연구위원, 주평식 고용부 고령사회인력정책과장, 김동배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 김철희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유일호 대한상공회의소 고용노동정책팀장, 이철희 좌장(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유성재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 한국노총 임은주 정책실장과 정혜윤 중앙연구원 연구위원, 임영태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고용정책팀장.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1본부장, 김선애 경총 임금HR팀장, 구미현 경사노위 전문위원. 사진 경사노위 제공

 


2018년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육체노동자의 노동연한을 기존 60세에서 65세로 높였다. 2016년 60세 법적 정년이 시행된 지 3년도 안된 시점에 정년연장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확산되고 사회적 관심도 높아졌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2000년 고령화사회 진입 이후 2017년 고령사회로, 2025년에는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이 전체인구의 20.3%로 초고령사회로 접어든다. 국제연합(UN) 기준으로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전체인구의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로 구분한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 = 한국은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로 도달하는 데 25년 걸렸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 중이다. 프랑스는 143년, 미국은 88년, 독일은 77년 걸렸고 가까운 일본은 35년 걸렸다.

급속한 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2018년 정점을 찍은 뒤 지속적으로 감소 추세다. 생산가능인구가 2020년 3736만명에서 2050년 2449만명으로 줄고, 2067년에는 1784만명으로 2020년 대비 1952만명이 줄 것으로 보인다.

고령화는 잠재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노인부양부담의 급격한 증가로 공공재정의 지속가능성에도 부정적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민연금·건강보험 등 사회보험 분야 지출 비중이 2018년 6.9%에서 2060년 23.8%로 증가할 전망이다.

통계청이 2020년 유엔 201개국의 인구전망과 한국의 장래인구추계를 비교해 분석한 결과, 50년 뒤 한국의 노인부양부담은 세계 평균보다 3배 이상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 은퇴자들의 연금 소득대체율은 2017년 기준 3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66%에 크게 못 미친다.


◆노인빈곤률 OECD 회원국 중 1위 =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2016년 43.8%로 OECD 회원국 중 1위를 차지했다. 한국인들이 노동시장에서 실질적으로 은퇴하는 연령은 2018년 72.3세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았다.

지난해 기준 50~69세 고용률은 66.2%로 전체고용률 60.1%을 웃돌았다. 5명 중 1명이 대졸 이상(21.7%) 고학력 고령자였다. 고용의 질은 상용직 비중이 낮고 일용직 및 자영업자 비중이 높았다.

이상민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생애 주된 일자리에서 50세가 채 되기 전에 밀려난다"며 "그 후에는 어느 나라의 경우보다 더 오래 노동시장에 머물러 일하면서 저임금 불안정 일자리나 영세 자영업에 종사한다"고 말한다.

그는 "정년연장은 납세자를 늘리고 복지비 수급자를 줄임으로써 복지 부담을 완화한다"며 "정년연장으로 근무기간을 늘리면 노인빈곤율을 낮추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65세 정년연장, 15조9000억원 부담 = 정년연장에 대해 부정적인 우려도 있다. 추광호 한국경제연구원 일자리전략실장은 "생산성에 상응하지 못하는 임금체계, 청년실업률 증가 등의 문제해결 없이 '65세 정년연장'을 시행하면 기업의 막대한 인건비 부담, 청년실업 악화, 노동시장 양극화 등의 부작용이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유진성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이 지난해 7월 발표한 '정년연장의 비용 추정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정년을 65세로 연장할 경우 기업의 추가비용은 14조4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사회보험료 등 간접비용(1조5000억원)까지 포함하면 총비용은 15조9000억원에 이른다.

정년연장에 따른 고용연장 효과가 '괜찮은 일자리'인 공공부문과 대기업 정규직에 집중될 가능성도 높다. 이는 일자리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 2020년 6월 고용노동부 '사업체노동력조사 부가조사'에 따르면 정년제를 운영하는 사업체는 전체의 21.6%에 불과했고 기업 규모가 작을수록 정년제 운영 비율이 낮았다.

청년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우려도 있다. 2020년 한국개발연구원은 '정년연장이 고령층과 청년층 고용에 미치는 효과'를 분석했다. 그 결과 종업원 1000명 이상 대기업의 경우 정년연장 수혜자 1명 증가는 청년층 고용 1명 감소로 이어졌다.

이상민 교수는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청년고용을 줄일 수 있는 정년연장 결정은 MZ세대(20~30대)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세대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직무급제나 임금피크제 도입·확산 방안 = 전문가들은 정년연장의 조건으로 임금체계 개편과 직무구조 변화를 주문했다. 유진성 연구위원은 "정년연장에 따른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직무급제나 임금피크제 도입·확산과 같은 임금체계 개편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유 연구위원은 임금피크제를 도입·확대하면 2조7000억원의 비용이 감소하고 이 비용을 청년층 고용에 사용하면 8만6000명을 추가로 고용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임금피크제는 법정정년 60세 도입 때 활용된 임금피크제를 확대·적용해 중고령층 인건비 부담을 줄이는 방안이다. 다만 문제도 있다. 정년 직전의 임금 삭감분이 체계적 근거 없이 자의적으로 정해지면 노동자들과 노조의 반대에 부딪힐 수 있다.

이 교수는 "임금삭감에 상응하는 직무조정이나 근로시간 단축 등이 동반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경직적 임금체계 '연공급' 개선 = 근속년수에 따라 임금이 자동으로 늘어나는 '연공급(호봉제 임금체계)'의 개선도 필요하다.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임금 연공성이 가장 높다. 최초 입직 노동자의 30년 후 임금배율이 서유럽 1.7배, 일본 2.5배에 비해 한국은 3.3배나 된다. 연공급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정년연장이 되면 인건비 부담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유규창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는 "정년연장은 연공서열형 인사제도의 개선 없이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라며 "직무주의 인사관리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직무가치를 평가해 임금결정에 적극적으로 반영한다면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실현할 수 있다. 하지만 여러가지 저항에 부딪혀서 제대로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노동조합은 직무급이 저임금 고착화의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한다. 직무급은 새로운 직무를 맡지 않는 이상 임금인상의 기회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노동자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채, 회사 측의 전횡적인 직무평가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직무평가 과정에 노조 참여해야 = 정부는 정년연장 대신 고용연장(계속고용) 방안에 더 주목한다. 정부는 지난달 30일 제45차 경제중대본에서 관계부처 합동으로 '고령자 고용 활성화 대책'을 발표하면서 사실상 정년연장을 의미하는 '고용연장 도입' 논의를 본격화했다.

정년연장은 60세인 법적 정년을 높이는 개념이지만, 고용연장은 60세 이상 노동자에 대해 △재고용 △정년연장 △정년폐지 등 다양한 형태의 고용연장 방안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정년제도에서 정년을 채우지 않은 노동자를 나이가 많다고 해고하면 법 위반에 해당한다. 반면 고용연장은 정년을 그대로 두고 정년 이후에도 계약직 등으로 재고용할 수 있다. 현재 일본이 비슷한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이상민 한양대 교수는 "중고령층 노동자의 직무 노하우가 청년층에 전수돼 생산성 향상에 도움을 주고, 중고령층의 이러한 노력에 정당한 평가를 해주는 임금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정당한 연공성을 새로운 임금체계 속에 녹여내고 지나친 연공성은 단계적으로 약화시키는 과정을 노사가 함께 진행해야 한다"며 "이 과정을 통해 노사 간에 신뢰를 형성하고 직무가치 숙련 연공 성과 등이 조화롭게 구성된 임금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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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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