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이웃과 함께 하는 외투나눔 축제 '제4회 첫 겨울 나눌래옷' 출범식

"겨울 경험 없는 외국인에게 처음 가는 길 밝혀주는 손전등 같은 축제"

2021-11-05 12:10:43 게재

시민·학교, 기업, 공공기관 참여 … 서울·수도권 넘어 전국으로 확산

#1. 따뜻한 나라 태국 출신 피라낫 쌔리씨는 한국에 온지 이제 한달이 됐다. 이주노동자인 그는 앞으로 건설업체에서 일하게 된다. 한 번도 겨울을 겪어본 적 없는 쌔리씨는 '너무 춥지 않을지, 잘 견딜 수 있을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태국에서부터 한국 겨울의 '무서움'을 익히 들었기 때문이다. 입국하면서부터 외투를 사야한다고 생각했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아 걱정이었다. 그런 쌔리씨는 직장 동료에게 외투나눔 대축제를 소개받고 외투 2벌을 신청했다. 그는 "겨울을 경험해보지 못해서 막막한 상태에서 받는 도움이라 마치 처음 가는 길을 밝혀주는 손전등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사랑을 포장합니다"│4일 서울시청 8층 다목적홀에서 열린 '4회 외투나눔 대축제' 출범식에 참가한 내외빈들이 외국인 이웃들에게 전달될 외투와 선물을 택배 상자에 포장하고 있다. 사진 이의종


#2. 우즈베키스탄 출신 대학생 주마노브 아브로르존씨는 올 초 한국에 입국해 경제학을 전공하고 있다. 이번 겨울은 그에게 두번째 겨울이다. 한국에서 경험한 그의 첫번째 겨울은 옷까지 얇아 더더욱 추웠다. 아브로르존씨는 올해는 일찌감치 외투나눔 대축제 홈페이지에 두꺼운 겨울 외투를 신청했다. 그는 "타인을 위해 이렇게 따뜻한 마음을 주는 것이 참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3. 9살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타티아나씨는 러시아 출신의 결혼 이주여성이다. 그녀는 러시아 출신이라 한국의 추위쯤은 거뜬할 것이란 주변 시선에 억울해 한다. 그녀는 "나도 한국 사람과 같이 피가 흐르는 사람"이라며 "그래서 한국 겨울이 무척 춥다"고 말했다. 이어 "같은 옷을 함께 공유하고 나눠 입을 확률은 무척 낮을 것"이라며 "나에게 도착할 외투의 주인이 무척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어 "귀한 인연으로 생각하고 소중히 입고 간직할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4일 서울시청 8층 다목적홀에서 외국인노동자 유학생 다문화가족 등 외국인 이웃과 함께하는 '외투나눔 대축제' 출범식이 열렸다. 이날 행사는 1000벌 이상을 기부한 서울시 경기도교육청 우정사업본부 한국전력 신한금융그룹을 비롯해 총 20개 기관과 시민들이 기부한 외투를 외국인 이웃들이 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도록 전달하는 자리였다.

◆"한국인 정 느꼈어요" = 외투나눔 행사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출범식을 제외하고는 비대면으로 진행하고 있다. 사무국은 세탁과 수선을 통해 새 옷처럼 변신한 기부받은 외투의 사진과 정보를 사이트에 공개한다. 참가자는 외투나눔 사이트에서 자신에게 적당한 옷 두벌을 선택해 택배로 배송 받는다. 택배상자에는 외투뿐만 아니라 오뚜기(라면·즉석밥) LG생활건강(바디케어세트) 바늘이야기(손뜨개 목도리) 롯데제과(과자) 아이소이(화장품) 등의 기업이 기부한 선물이 동봉된다.

이날 출범식에 참석한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 오세훈 서울시장, 이진수 우정사업본부 경영기획실장, 이정복 한국전력공사 상생관리본부장, 진옥동 신한금융그룹 신한은행장, 이동원 노사발전재단 국제노동본부장, 이옥경 (사)밥일꿈 이사장, 장명국 내일신문 대표이사 등이 참석했다. 내외빈들은 기부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외투나눔 홈페이지를 통해 외국인 이웃들이 선택한 외투를 택배 박스에 담고 직접 손편지를 써 발송하는 활동을 벌였다.

택배상자는 우정사업본부 소속 집배원들을 통해 전국 곳곳의 외국인 이웃에게 전달된다. 특히 우정사업본부는 택배 지원뿐 아니라 가장 많은 외투를 기부해 눈길을 끌었다.

이진수 우정사업본부 경영기획실장은 "우정사업본부는 다양한 공익사업을 통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다"며 "외투나눔행사가 국내거주 외국인들이 한국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뜻깊은 나눔실천을 위해 전국 우체국 종사원들이 참여했으며, 앞으로도 국민 가장 가까이에서 사랑과 신뢰받는 기관이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행사는 내일신문이 주최하고 (사)밥일꿈과 노사발전재단이 공동주관했다. 외투나눔 대축제 '첫 겨울 나눌래옷' 사업은 한국 사회가 다문화 선진국으로 가기에는 차별과 불평등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는 문제의식에서 2018년 내일신문 창간기념 행사로 처음 기획됐다.

후원사인 신한금융그룹과 함께 겨울외투에 주목했다. 시민들의 작은 실천이 외국인 이웃에게 실질적 도움을 줄 뿐 아니라 다문화사회로 이어질 수 있는 방안이라는 판단에서다. 지난해 말 현재 국내 체류 외국인은 230만명을 넘었다. 이중 취업 비자를 받은 노동자의 경우 최근 출신지나 근무 직종이 다양해지는 추세지만 아직까지 중국과 동남아 등 아시아 국가 출신이 많다. 이들은 내국인들이 기피하는 제조업, 건설, 농수축산업 등의 직군에 종사한다.

◆월급 대부분 송금, 외투 구입 부담 =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는 언어와 문화 차이만큼이나 한국의 추운 겨울이 힘들다. 특히 동남아 출신 노동자들에게는 고향에서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한국의 겨울을 맞지만 월급 대부분을 본국에 송금하거나 저축하는 만큼 난방이나 외투 구입이 부담스럽다. 이에 시민들의 옷장 속 잠자는 외투를 떠올린 것이다. 여러 시민단체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품질에 문제없지만 체격이 달라져 입지 못하거나 취향이 바뀌어 안 입게 된 옷을 기증하자는 캠페인을 벌였다.

이동원 노사발전재단 국제노동본부장은 "평생을 따뜻한 동남아 지역에서 살다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처음 온 외국인들에게 첫 겨울나기는 신기하기도 하지만 고통이기도 하다"면서 "이번 행사는 두툼한 외투와 선물을 집에서 편하게 받고,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도록 해 줬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외국인 산업재해 사고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처음 겪는 한국의 겨울추위로 돌연사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안전하고 따뜻한 생활로 이번 겨울을 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홍삼제조 회사에 근무하는 중국 출신 양보령씨는 "한국에는 나와 같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다"면서 "다들 추운 겨울에 아직 적응하지 못하고 있지만 신청한 외투를 받아볼 생각에 따뜻함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인의 정이라는 것이 이런 게 아닐가 싶다"고 덧붙였다.

◆해마다 늘어나는 기부 = 외투나눔 대축제는 2018년 경희궁 앞마당에서 서울지역 학생과 시민들이 기부한 외투 3500여벌을 외국인 노동자 1500여명에게 전달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이듬해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2회 행사에는 공공기관, 기업들이 참여하기 시작해 7800벌의 외투를 노동자와 외국인 유학생 2000여명에게 전달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터넷 쇼핑몰 개념을 도입, 비대면으로 진행한 지난해 3회 행사에는 자치단체, 공공기관, 기업, 학교 그리고 시민들이 기부한 9200벌의 외투를 택배로 3440여명의 외국인 이웃들에게 전달했다.

해마다 기부에 동참하고 있는 서울시 김선순 여성가족정책실장은 "시 본청과 서소문 별관 등에 대형 외투 수거함을 층별 1개씩 총 38개를 설치하고 행사 취지를 공문으로 전부서에 발송했다"면서 "또 사내게시판에는 외투나눔행사 포스터를 게시해 직원들의 관심을 유도했으며, 수거 마지막 일주일동안은 사내 방송을 통해 집중 안내했다"고 말했다. 이어 "해마다 25개 자치구도 참여하고 있다"면서 "상수도사업본부와 일선 소방서 등에서도 참여하고 싶다는 직원들이 있어 내년 행사에는 외투수거 대상을 더 확대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외투나눔 대축제는 기부 받은 외투 숫자만 늘어난 게 아니라 대상도 처음 외국인 노동자에서 유학생, 다문화가족 등 외국인 이웃 모두로 확대됐다.

한국 생활 8년차로 무역회사에 근무하는 투르크메니스탄 출신 욜라씨는 "따뜻한 나라에서 왔기 때문에 겨울이 무척 추웠고, 많은 눈이 오는 것도 처음 봤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을 생각하면 많은 사람들이 경제발전을 떠올린다"면서 "경제 발전에 성공한 한국이 (나눔)활동을 시작하면서 많은 외국인들은 한국인들에게서 따뜻함을 느끼고 있다"고 강조했다.

비대면 방식을 도입한 지난해 행사는 서울·수도권 중심이었던 참가자들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

최명호 한전 상생발전처장은 "외투나눔은 어려운 이웃에게 단순히 무엇을 나눠준다는 기부에 그치지 않고 진정한 휴머니즘에 가까운 실천"이라며 "이것이야말로 정치 철학 윤리적인 개념을 초월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실현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행사를 범국민적으로 확대해 우리나라 거주자뿐만 아니라 추운겨울을 나는 동유럽, 동아시아 국가의 불우한 국민들에게 '외투나눔'을 실천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비대면으로 진행 중인 '제4회 외투나눔 대축제'는 이달 26일까지 계속된다. 시민들이 기부한 나눔외투는 홈페이지(www.lovecoat.co.kr)에 등록돼 새로운 외국인 이웃 주인과 만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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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선 · 박광철 ·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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