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12월에 부르는 산재 희생자 진혼곡

2021-12-15 12:01:39 게재
안종주 언론인, 보건학 박사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는 진혼곡이다. 진혼곡은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국가와 지역을 가리지 않고 울려 퍼졌다. 독립운동을 하다 죽은 사람, 자유와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싸우다 희생된 투사들, 전쟁으로 스러진 사람, 재난참사와 사고로 숨진 이들에게는 진혼곡이 필요하다.

진혼곡은 죽은 자의 넋을 달래기 위한 노래다. 하지만 그들은 그 소리를 들을 수 없기에 실은 산 자를 위한 노래다. 진혼은 죽은 사람들이 고이 잠들 수 있도록, 살아 있는 사람들이 더는 그런 일을 겪지 않도록 그들의 죽음 앞에 옷깃을 여미며 행동을 다짐하는 것이 돼야 한다. 죽은 이의 영혼을 위로하는 미사음악 레퀴엠에서 유래한 진혼곡은 특정 종교의 손을 떠나 만인의 노래가 된 지 오래다.

독재에 저항하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목숨 걸고 싸우다 숨진 우리 사회 최근의 역사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이다. 이 운동을 추모하는 노래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의 '임을 위한 행진곡'도 실은 진혼곡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광주를 넘어 한국인의 마음속 깊숙이 자리 잡은 국민가요가 됐다. 뿐만 아니라 홍콩 대만 라오스 등 동남아시아에서도 노동자 등 사이에서 널리 애창되는 노래다.

현대사의 비극적 재난인 세월호 참사 진혼곡 '천개의 바람이 되어'도 많은 국민이 즐겨듣는 추모의 노래다. 우주만물에 희생자들의 넋이 깃들어 있다는, 살아 있는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나 더는 같은 희생자들이 나오지 않는 세상을 만들도록 행동하기를 바라는 내용이다. 인간 사회에 재난 참사가 없도록.

진혼곡은 슬픔과 위로에 그치지 않고 용기를 북돋우는 노래다. 그리하여 광주 영령들은 민주주의가 핍박을 받을 때 자신들처럼 행동하기를 바란다. '임을 위한 행진곡'에서 그들은 앞서 행동한 사람임을 말한다.

다시는 일하다 죽지 않는 세상 만들기 위해

진혼을 노래로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2일 한 공중파방송이 방영한 고 김용균 3주기 특집 다큐멘터리 '다시는 일하다 죽지 않게'는 산재 희생자와 그 가족,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들려주는 진혼 방송 프로그램이었다. 여기에 등장하는 산재 사망자와 그 가족들은 바로 우리 자신들이다.

왜 유가족들이 추운 겨울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을 염원하며 한 달 가까이 목숨을 건 단식농성을 했는지를 살피고 공감하고 행동하는 것이야말로 살아 있는 우리들의 몫이다.

김동준의 어머니 강석경씨, 이한빛의 아버지 이용관씨, 김태규의 어머니 신현숙씨, 이선호의 아버지 이재훈씨, 장덕준의 어머니 박미숙씨, 그리고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씨는 산재 희생자들의 어머니·아버지로 불릴 만하다.

이들 청년 산재 희생자들은 제각기 다른 작업 현장에서 서로 다른 이유로 숨졌지만 모두 지금의 우리와 함께 살아갈 수 있었다. 이렇게 죽어가는 노동자가 매년 2000명 안팎이다.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을 겪은 부모들이었기에 그들이 하는 말은 절절하게 우리의 가슴을 마구 후벼 판다. "조금만 관심을 가져 주었더라면 생명을 살릴 수 있었습니다." "왜 귀한 우리 자식들이 허무하게 죽어가고 있는지 답답하기만 합니다."

진혼은 일하다 죽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 진혼의 핵심은 이들의 말을 기억하고, 산재 희생자들의 죽음을 기억하고, 다시는 일하다 죽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다.

정말 산재 진혼곡을 들어야 할 사람들

12월 10일은 한국발전기술에 입사해 서부발전 태안화력본부에서 한밤중 나 홀로 작업하다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숨진 김용균의 3주기였다. 한해의 마지막 달에 산재 희생자들을 위한 진혼곡을 생각한 것은 이 때문이다.

산재 진혼곡과 다큐를 정말로 듣고 보아야 할 사람들은 산재 없는 세상을 위해 몸을 바치고 있는 사람들이라기보다는 기업주와 중간 관리 간부들이다. 원청과 하청을 가리지 않고 말이다. 국민의 녹봉을 받고 있는 행정부와 입법부, 그리고 사법부 책임자들과 종사자들이다.

마지막 달 12월에 나지막하게, 아니 소리 높여 산재 희생자 진혼곡을 불러본다. 다시는 일하다 죽지 않기를. 다시는 산재 유가족이 생기지 않기를 염원하며.

산재 희생자들을 위한 진혼곡은 12월에만 불러서는 안된다. 매월 매일 불러야 한다. 진혼곡을 자주 부를 필요가 없는 세상이 올 때까지. 궁극적 목표는 더 이상 진혼곡을 부를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안종주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