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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중립과 석유회사의 변신

2022-01-13 11:54:43 게재
이승국 동아대 교수 에너지자원공학과

석유회사는 코로나 팬데믹 이전까지 포춘 글로벌 500대 기업 중 상위 10대 기업에 매년 3~5개사가 포함될 정도로 1, 2차산업혁명의 핵심 에너지원 공급역할을 했다. 영국 BP사의 월드에너지 통계에 따르면 지난 40년간 인류가 쓴 석유는 약 1조 배럴이다. 그런데 매장량은 1980년 7000억 배럴, 2020년에는 1조7000억 배럴이다. 1조 배럴을 쓰고도 매장량이 크게 는 것은 석유의 고갈 가능성이 그만큼 희박하다는 의미다.

산업혁명은 인류가 화석연료를 태우기 시작하면서 본격화됐다. 수억, 수천년 전 지하에 매몰된 유기물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탄소화합물 화석연료인 석유 가스 석탄으로 바뀐다. 인류가 이를 시추해 태우면서 다량의 탄소가 배출돼 대기권의 탄소총량이 늘면서 태양열의 반사를 방해, 지구온도가 상승하는 것이 이른바 온실효과다.

탄소중립이란 온실효과로 인한 지구 평균온도의 상승을 산업혁명 이전 대비 2℃ 이하 나아가 1.5℃로 억제하자는 글로벌 합의다. 이는 1997년 교토의정서, 2015년 파리협정, 2018년 우리나라 송도의 'IPCC 지구 온난화 1.5℃ 특별보고서' 채택, 2021년 글래스고 기후합의 등으로 이어졌다.

빌 게이츠는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에서 인류가 줄여야 할 탄소총량은 연간 약 510억톤으로, 발전 27%, 제조업 31%, 사육과 재배 19%, 수송 16%, 냉난방 7% 등이라고 주장했다. '대한민국 2050 탄소중립 전략'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연간 약 7억톤이 감축목표인데 에너지 공급 37%, 산업부문 37%, 수송 14%, 건물 7%, 농축수산 3%, 폐기물 2% 등이다.

탄소 해저저장에 눈 돌리는 석유회사

지금 세계에서는 신재생에너지, 이산화탄소 포집·저장, 제로 탄소 제조업, 차세대 핵분열·핵융합, 축전·축열, 인공고기 등 다양한 감축기술 개발을 추진하는 중이다. 석유회사는 이중 이산화탄소 포집·저장(CCS)과 부유식 해상풍력에 집중하고 있다. 이 기술들이 석유생산에서 유래했기 때문이다.

CCS는 이산화탄소를 액화해 지하 퇴적층에 영구히 저장하는 기술인데 석유회사는 수십년 전부터 생산이 줄면 지하 퇴적층에 이산화탄소를 주입하곤 했다. 부유식 해상풍력은 닻을 이용한 부유 시설로 풍력 구조물을 지지하는 방식인데 석유회사는 해상 석유생산에 부유식 시설을 설치·운영한 경험이 풍부하다.

글로벌 CCS연구소의 최근 보고서에 의하면 현재 전세계 CCS 시설은 26개로 연간 4000만톤의 이산화탄소를 지하에 저장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향후 연간 56억톤의 이산화탄소를 저장해야 하며 연간 70~100개의 CCS 설비가 추가되어야 한다고 본다.

한편 카본트러스트Carbontrust) 보고서에 따르면 부유식 풍력이 해상풍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미미하나, 먼바다에 바람이 강하고 수용성 장점으로 그 발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석유공사는 곧 생산중단 예정인 동해 가스전을 활용한 CCS와 부유식 해상풍력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동해 가스전은 울산 동쪽 58km 수심 150m 해상에 있다. 지하 2000m 하부 퇴적층에는 연간 40만톤의 이산화탄소를 주입하고, 해상 구조물은 25기 부유식 풍력터빈의 허브 시설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우리나라를 산유국의 반열에 오르게 한 동해 가스전이 그 수명을 다한 후에도 석유공사 변신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는 셈이다.

온실가스로 인한 지구의 기후는 변화, 위기 단계를 넘어 재앙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최근 20년간 지구촌 자연재해는 7300여건으로 그 이전 같은 기간보다 2배 가까이 급증했다. 해수면 상승 속도도 2배 이상 빨라졌다. 국립기상과학원의 '한반도 100년의 기후변화'(2018)에 따르면 최근 30년 한반도의 기온은 20세기 초(1912~1942)보다 1.4℃ 올랐고 여름은 19일 늘었지만 겨울은 18일 짧아졌다.

동해 가스전, 석유공사 변신 전초기지로

탄소중립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인류의 생존전략이다. 온실가스를 줄이지 못하면 육지는 점점 줄고 지구는 더 이상 인류가 살 수 없는 땅이 될 수 있다. 감축은 지속적이고 항구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석유회사도 예외는 아니다. 탄소중립에 부응하지 못하는 매장량 확보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화석에너지 사용으로 산업혁명의 특수(?)를 누렸던 석유회사가 탄소중립이라는 지구촌 생존 과제에 어떤 역할을 할지 주목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