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 손가락질'로 변질된 '86 용퇴론' … 세대 갈등만 키웠다

2022-01-28 10:23:15 게재

초선·2030세대 강력 지지 … 다선 강력 반발

차기 대선·당대표 준비하는 '86세대'에 역부족

절반 넘는 초선, 대안세력 역할 못 보여줘

후보·대표·선대위원장 '86세대', 진정성 의심

대선을 40여일 앞두고 대통령후보가 30%대 유리천장에 갇혀있는 가운데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당대표가 내놓은 '86 용퇴론'이 세대간 갈등을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나 말고 너'라며 상대방을 겨냥한 손가락질을 유도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진정성에 의심을 받으면서 선거용이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28일 여당 선대위 핵심관계자는 "86세대들이 이율배반적이고 비겁하다"면서 "86세대가 기득권을 내려놔야 한다"고 했다.

이낙연 전 대표와 손잡은 이재명 대선후보│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27일 광주시 동구 충장로를 방문, 이낙연 전 대표와 손을 맞잡고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백승렬 기자


송 대표는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는 '쇄신안'을 깜짝 발표하면서 86세대에 "기득권이 됐다"며 "광야로 나설 때"라고 했다. '86세대 용퇴론'은 "동일지역구 국회의원 연속 3선 초과 금지를 제도화하겠다"는 다선 용퇴론으로 옮겨 붙었다. 그는 "자기 지역구라는 기득권을 내려놓고 젊은 청년 정치인들이 도전하고 전진할 수 있도록 양보하고 공간을 열어줘야 한다"고 했다.

2030세대 정치인들의 호응이 이어졌다. 청년대표 몫으로 지명된 이동학 최고위원은 공개적으로 "586의 용단을 요구한다"며 "자기 것을 던지며 활로를 만드는 이들이 많아지면 새로움이 공존할 공간을 얻게 된다"고 했다. 청년위원장이면서 민주당 정당혁신추진위원장인 장경태 의원은 송 대표의 결단을 지지했고 위원회에서는 곧바로 '4선 초과 금지법' 등을 발의했다.

하지만 86세대 중 한 명인 김종민 의원은 '용퇴'를 거부했다. 그는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나와 "(86 정치인이) 물러나든 안 나든 '86정치'가 용퇴해야 한다는 게 의미가 있다"며 "86용퇴론이라기보다는 낡은 기득권 제도를 용퇴시켜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고는 "(용퇴 관련 발언은) 제도개혁에 86 정치인들이 책임을 지고 반드시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취지의 메시지였다"고 해석했다. '86세대'의 역할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의미와 함께 '용퇴 요구'에 대한 거절로 이해됐다.

역시 '86세대'이면서 총선에 출마한 바 있는 김우영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의 비판도 나왔다. 김 대변인은 자신의 거취엔 언급을 하지 않은 가운데 "행동하지 않는 구두선의 정치는 배반형"이라며 "2030 청년들의 저항은 행동하지 않는 말의 정치에 대한 퇴장명령"이라고 했다. '김종민 의원의 용퇴 거부'를 강력하게 비난한 것이다.

5선의 중진인 이상민 의원은 ‘무조건적인 86 용퇴론’에 제동을 걸었다. 이 의원은 "586을 싸잡아 책임을 물으면 달라지냐"며 "책임은 옥석을 가려서 소재와 경중을 따져야지 그냥 두루뭉술하게 책임져라 하는 것은 그 대상이 된 사람들이 수용하기 어려울 거고 오히려 트러블만, 갈등만 크게 유발돼서 소모적으로 흐를 수 있다"고 했다. 세대와 선수로 뒤엉킨 비판과 방어 등 격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의심받는 진정성 = 궁극적으로 송 대표 '86 용퇴론'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진정성을 의심받기 때문이다. 대선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송 대표가 '불출마 선언'을 한 것을 두고 대선으로 가는 과정으로 읽는 시각이 당내에도 적지 않다. 86세대의 기득권을 내려놓겠다고 하려면 '정계 은퇴'를 선언했어야 했다는 얘기다.

또 이재명 후보, 송 대표와 함께 또다른 86세대 대표주자인 우상호 의원을 선대위 총괄선대본부장으로 임명, 대선을 지휘하게 한 점 역시 논란이다. 총선 불출마를 재확인했다고 하지만'86 용퇴론'과는 거리가 있다는 얘기다. 이상민 의원은 "이 후보도 86세대이고 어렵게 살았지만 지금은 기득권"이라며 "86세대를 몰아치듯 나가라는 식은 누구도 수용하기 어렵다"고 했다.

◆화두는 꺼냈다 = 송 대표가 시동을 건 '86 용퇴론'은 오래전부터 거론된 화두지만 갑자기 던지는 식은 애초부터 무리수였다는 평가가 많다. 이번엔 내부 토론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이벤트 성격이 강했다. 이재명 후보의 지지부진한 지지율을 견인하거나 충격을 가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는 지적이다.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의견일치를 보지 못하자 송 대표가 결단을 내릴 정도로 내부조율도 없었다.

'86 용퇴론'은 좀더 공론화를 거쳐 분위기를 만들어갔어야 했다는 얘기가 많다. 특히 국회의원들을 억지로 끌어내릴 방법이 부재하다는 점에서 공론화는 매우 중요한 절차다. 무엇보다 차기 대선을 노린다는 게 공공연한 사실인 송 대표가 '메신저'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한계가 분명했다. 다선의 86세대가 8월 당대표 선거를 준비하고 있는 과정에서 용퇴론에 순순히 화답할 가능성 역시 애초부터 부재했다는 평가도 많다.

대안 부재론도 깨야 하는 민주당의 숙제다. 86세대가 모두 나가 버리면 남은 곳은 누가 채우겠다는 우려에 민주당의 대답이 준비돼 있지 않다는 얘기다. 이는 절반이 넘는 초선들이 대안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비판과 맞닿아 있다.

모 의원은 "86세대 용퇴론을 말하지만 이들이 나간 후엔 누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면서 "팬덤에 휩싸여 정치를 하는, 86세대와 전혀 다르지 않은 세력들이 쥐락펴락할 것"이라고 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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