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경영 전과정평가

새 무역장벽, 모든 생산단계 탄소배출량 표시해야

2022-02-28 11:08:20 게재

전과정평가에 필요한 기본 데이터 턱없이 부족 … "배터리 분야는 당장 '발등의 불', 전문가 육성도 필요"

2024년부터 유럽에 전기자동차 배터리를 수출하려면 원료물질 채취부터 시장 판매까지 생산 전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탄소) 배출량을 반드시 표기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환경 규제가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될 거라는 점이다. 배터리 업체는 물론 철강 플라스틱 화학물질 등 해외 수출 시 탄소배출량에 대해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곧 닥친다는 얘기다.

정부가 뒤늦게 '환경영향물질 국가표준 자료'(LCI DB) 품질 개선에 나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2024년 전기차 배터리 수출 시 탄소배출량 표기 의무 = 유럽연합(EU)은 올해부터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시범 실시하고 2026년부터 본격화하기로 했다. 미국 의회에서도 2024년부터 탄소국경세를 도입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됐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이미 지난해부터 제품별 탄소발자국 기준치를 적용하는 내용의 청정구매법을 시행 중이다.

게다가 EU는 2024년 7월부터 배터리 지침(Directive 2006/66/EC)을 근거로 자국에 자동차 배터리를 수출할 경우 전과정 탄소배출량 표기를 의무화한다고 밝혔다. 내부 저장용량이 2kWh 이상인 전기자동차 배터리와 충전식 산업용 배터리 제품의 경우 배터리 모델별, 생산 공장당 탄소발자국 선언을 포함하는 기술문서를 작성해야 한다. 또한 탄소발자국 성능 등급을 나타내는 라벨을 눈에 띄게 부착해 명확하게 읽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U는 2027년 7월부터 전기자동차 배터리와 충전식 산업용 배터리에 대해 최대 탄소발자국 허용치를 적용, 무역 제재를 강화할 방침도 밝혔다.

코트라는 'EU 탄소국경조정제도 주요 내용 및 영향' 보고서를 통해 "실질 배출량 사용이 불가하면 기업에게 불리한 고정값 적용이 불가피하다"며 "탄소국경조정제도 과도기간 중 탄소배출 데이터 측정·관리에 필요한 체계를 신속히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탄소배출량 산정 방식이 사업장(site) 단위가 아니라 '전과정'(Net) 중심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에 국제 기준에 부합하도록 질적 도약이 시급한 상황이다. EU 탄소국경조정제도 상 제품 온실가스 배출량 산정 방법은 스코프(scope) 1, 2이지만 기본 개념은 전과정 관리 형태인 스코프 3을 택하고 있다. 스코프 1은 온실가스 직접 배출, 스코프 2는 간접 배출을 의미한다. 스코프 3은 제품 생산에서 운송 처분 사용까지 밸류 체인에 따라 생산되는 모든 온실가스 배출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LCI DB 약 800건에 불과, 질적 향상도 필수 = 이처럼 국제 시장에서 전과정에 걸친 온실가스 감축이 중요해지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기본적인 데이터 수부터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국토교통부 농림축산식품부 환경부 산업통상자원부 해양수산부 산림청 등이 LCI DB를 구축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 따르면 LCI DB는 약 800건에 불과하다. 환경부는 △에너지(LNG 등유 등) △수자원 △기초화학물질 △수송(육로 해양 등) 등과 관련한 LCI DB 312건을 보유 중이다.

산업부는 △에너지(전력 LPG 등) △석유화학제품(플라스틱) 등 201건을 확보하고 있다. 농림부 168건, 국토부 87건, 산림청 25건 등이다.

강홍윤 인하대 글로벌산업·환경융합전공 교수는 "양적인 부분도 문제지만 우리나라 현실에 맞는 양질의 LCI DB를 구축해야 할 때"라며 "해외 데이터를 사용하면 정확한 탄소배출량 산정이 어렵기 때문에 신뢰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고 이는 곧 기업 경쟁력과도 직결된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뒤늦게 문제를 인지해 환경부를 중심으로 관련 개발 계획을 추진 중이다. 3단계로 나눠 국제 탄소규제 대응 전략 LCI DB 개발 계획을 수립해 2030년까지 120개 제품군에 대한 탄소발자국 산정 방법을 개발할 방침이다.

관련 예산도 지난해 2억1500만원에서 올해 37억5000만원으로 껑충 뛰었다. 나아가 10년 이상 노후화된 LCI DB들에 대한 질적 보강도 함께 진행해 국제 LCI DB 공유 플랫폼(GLAD, LCDN 등) 요건에 부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 따르면 유엔환경계획(UNEP)에서 운영 중인 GLAD에 등록된 한국의 LCI DB는 181건에 불과하다. 스위스 6328건, 미국 5131건, 독일 3503건, 캐나다 2808건, 중국 2490건 등과 비교할 때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기업들 입장에서는 LCI DB 구축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며 "플라스틱류의 경우 2024년에 관련 데이터를 개발하는 걸로 정부 계획이 나왔는데 좀 더 앞당겨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는 사업장의 단계별 온실가스 배출량 등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라며 "타사에게 알려지면 안되는 기밀이 있는 등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플라스틱 등 DB 구축 속도 앞당겨야" = 강 교수는 "국가 차원에서 만드는 DB는 특정 기업의 자료만으로 생성할 수 없다"며 "시장 점유율 몇퍼센트 이상 회사들의 복수 자료들을 토대로 평균치를 내서 활용하기 때문에 기업의 개별 정보가 드러날 일은 없다"고 설명했다.

김 익 세종대학교 기후에너지융합학과 겸임교수는 "기업들은 정부가 제시한 LCI DB 로드맵을 꼼꼼히 살펴보고 본인들이 필요한 소재가 누락되거나 후순위로 밀렸는지 등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며 "만약 그렇다면 정부에게 적극적으로 해당 사항을 요구해야 나중에 낭패를 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준재 한국환경산업기술원 선임연구원은 "LCA에 대한 중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는데 국내 전문가 풀은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LCA 전문가 육성을 위해 건국대와 인하대 등과 특성화대학원 과정을 운영하는 등 여러가지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기업들의 고충을 충분히 듣기 위해 노력 중"이라며 "필요하다면 LCI DB 로드맵 상 개발 시기를 앞당기는 등 조정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알쏭달쏭 어려운 환경용어 설명]
■LCI DB = 제품에 대한 환경성적을 산정하는 데 필요한 기초 데이터다. 기업들이 전과정평가(LCA)시 기초 자료로 활용된다. LCA는 제품의 생산 단계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뿐 아니라 생산·유통·사용·폐기·재활용 등 제품의 전 생애주기를 통틀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정량적으로 평가하는 기법이다.

한 예로 종이컵을 생산할 때 원부자재로 종이와 코팅용 PE필름 등이, 에너지는 주로 전기가 사용된다. PE필름 생산은 원유채취→나프타 생산→PE칩 생산 등의 공정 단계를 밟는다. 이런 흐름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일이 LCA고, 이를 위한 기초 자료가 LCI DB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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