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성 강화 위해 정시 확대하니

의대·서울대 합격자 중 강남학생들 급증 … "수능은 또다른 쩐의 전쟁"

2022-04-13 12:40:04 게재

지난 2월 2022학년 대입이 마무리되며 강남 지역 학교들은 전년 대비 의대·최상위권 대학 합격자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 단위 자사고는 물론 일반고에서도 근래 가장 좋은 실적을 거뒀다.

◆의약학 계열·서울대 합격자 증가 = 최상위권 학생들의 선호도가 높은 의대 치의대 약대 한의대 등 의약학 계열에서 강남·서초 학군 학교가 더 선전했다.


해당 지역의 숙명여고 세화고 진선여고 휘문고 등 4개 학교의 2020~2022학년 진학 결과를 보면 의약학 계열 합격자 증가가 눈에 띈다(표1). 합격자 상당수는 정시에서 성과를 냈다. 재수생이나 삼수생 등 졸업생의 비중이 높았다. 재학생 대비 졸업생의 합격 규모가 3배 이상인 학교도 있었다.

정경희 국민의힘 의원실에서 제공한 '2022학년 서울대 출신 고교별 합격자수(최종 등록자 기준)'에서도 합격자수가 가장 많은 30개교 중 6개교(세화고·휘문고·중동고·상문고·경기고·단대부고)가 강남·서초 학군 고교였다.

특히 이들 학교는 정시 합격자가 수시보다 많은 특징이 있다. 상위 30개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특목·자사고의 경우 외대부고·상산고 외에는 수시 합격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실제 정시 합격자가 많은 상위 10곳 중 5곳이 강남·서초 고교로 나타났다(표2).

◆강남 학군의 선전, 이유는? = 전문가들은 강남 학교 선전의 요인으로 정시 확대를 꼽았다. 정시는 수능 중심의 전형이다. 출제 구조 상 수능형 문제를 많이 접하면 유리하다. 학업 역량이 비슷한 집단이나 특정 수준에 맞춘 문제를 제공할 수 있는 사교육 환경에서 훈련하면 높은 점수를 받을 확률이 높다.

더 오래 학습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재학생의 학업 수준이 크게 차이나지 않는 학교나 사교육 인프라가 뛰어난 지역, 졸업생에게 유리하다. 강남의 특성과 일치한다.

수능 난이도 상승으로 상위권과 중위권의 격차가 커지면서 최상위권이 몰려있는 강남 학생들의 성적이 상대적으로 높게 형성된 점, 이들 지역에서 선호도가 높고 정시 선발 비중이 큰 약대가 14년 만에 학부에서 신입생(정원 내 기준 1763명)을 선발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지원 단계에서 '정보의 차이'도 컸다. 강남 지역 학교는 선호 대학·계열의 폭이 그리 넓지 않다. 재학생은 물론 졸업생들의 진학 데이터까지 누적돼 특정 대학·학과 진학지도의 질이 우수하다다. 선배들의 멘토링 또한 활발해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후문이다.

◆교육 불공정 더 커져 = 수능 경쟁력이 뛰어난 강남 학생들이 정시 확대 기조에서 선전했다. 정시 확대는 공정성 강화 방안의 일환이지만 공정한 시험의 결과가 특정 지역 학생에게 특별히 유리하다면 '공정성'은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

일각에서는 '실력'의 차이이므로 문제가 없다는 시각도 있다. 국가 단위의 동일한 시험을 치르고, 점수에 따라 당락이 결정되는 수능의 결과는 개인의 역량이라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교육 전문가들은 그 실력의 배경을 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간 정시의 주요 전형 요소인 수능은 '패자부활'이 가능하고, 인강 시장이 활성화돼 있어 비교적 낮은 비용으로 대비할 수 있다며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교육 현장에서는 수능의 '비용'이 상당하다고 본다.

수능은 경험이 많을수록 좋은 성적을 얻는다. 상위권은 킬러 문항이나 준킬러 문항 점수에 따라 등급이 갈린다. 이런 문항을 집중적으로 훈련하고 싶다면 사교육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다.

교재 출판사에서 수준별 문제집을 출판하기도 하지만 실제 시험에는 입시전문학원이나 인강업체들의 '봉투 모의고사'(봉모) 혹은 1타 강사들이 제작하는 자체 문제집이 더 도움이 된다.

봉모 가격은 업체에 따라 영역별로 1회에 4000~2만원선이다. 수험생들은 매일 영역별로 수회분을 풀며 수능이 가까워질수록 더 많이 푼다. 4000원선의 봉투 모의고사를 국어와 수학, 탐구 2과목 등 4개 영역별로 매일 3회, 주 5일 풀면 한달 비용이 120만원에 달한다. 1타 강사들의 자체 문제집은 '현강', 즉 대면강의 수강생에게만 제공한다.

학원비는 과목당 30만~40만원 선이며 교재비는 따로다. 졸업생의 재수 비용은 보통 3000만원에서 많게는 5000만원 이상이다. '누구에게나 다시 시작할 기회가 열려있는' 시험이 아니라 경제적 부담이 높다.

◆수시-정시 논쟁 그만, 보완 논의해야 = 2022 대입에서 강남 지역의 선전은 대입의 방향을 돌아보게 한다. 정시가 눈에 띄게 확대된 첫 대입의 결과이고 정시 확대를 공약으로 내세운 새정부가 5월 들어설 예정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현 대입제도를 손질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수시-정시 비중 논쟁을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입시를 공정과 불공정의 프레임으로 접근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경쟁을 줄이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에는 동의하면서도 점수화하는 방식이 아니면 공정하지 않다는 게 대중의 이중적 인식이다. 여기에 묶이면 논의가 나아가기 어렵다. 전형별 장단점이 뚜렷하니 단점을 보완해 수험생의 혼란을 막고 교육을 정상화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수시 수능 최저 기준 폐지, 수능 절대평가 등이다.

주석훈 서울 미림여고 교장은 "수능을 학생의 원래 점수인 원 점수 기준의 절대평가로 전환하고, 선택과목을 없애고 EBS 연계율을 확대하는 등 쉽고 단순한 수능으로 간다면 경제적인 영향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수시는 아예 수능 최저를 폐지해 학교생활에 집중한 학생들에게 기회를 주는 성격을 강화하는 것도 제언했다.

권오현 서울대 교수는 "이대로라면 지역 격차와 학교 서열화가 갈수록 심화될 것"이라며 "국가가 관리하는 객관식 수능을 유지해야 한다면 절대평가로 전환해 대학이 자율적으로 활용하게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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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수 · 정나래 내일교육 기자 lena@naeil.com k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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