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의 숙제 노인학대 ②

자녀에게 맞는 노인 "처벌 아닌 보호부터"

2022-05-10 10:53:57 게재

고소하더라도 이내 합의 … 공권력 개입 제한돼

노인학대는 가해자가 아들이나 딸인 경우 기본적으로 피해자들이 신고를 기피한다. 경찰에 고소를 하더라도 이내 철회하거나 합의를 한다. '자식을 감옥 보낸 부모'라는 손가락질이 두렵기 때문이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일상생활로 복귀하면 노인학대는 도돌이표처럼 반복된다.

10일 법조계와 학계에 따르면 노인학대 범죄를 줄이기 위해서는 처벌 중심이 아닌 피해자 보호를 중심으로 법·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노인들이 경찰이나 보호기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는 가해(자녀)자 처벌이 아닌 당장의 폭력을 '말려달라'거나 '보호해달라'는 게 주목적이다.

김현주 대한법률구조공단 변호사는 "노인학대 피해자들은 관계특성상 사선 변호사를 선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현재 법률 체계상 국선 피해자 변호사들이 도울 수 있는 것도 제한적"이라고 토로했다.


◆반의사불벌죄로 학대 반복 = 보건복지부가 2020년 노인학대 유형을 조사한 결과 친족의 학대가 85.6%로 나타났다. 이중 아들(35.8%)과 딸(8.4%) 등 자녀에 의한 학대가 44.2%였고 다음에 배우자(35.8%)로 집계됐다. 또 다른 친족 학대로는 손자녀(2.7%) 며느리(1.6%) 친척(1.0%) 사위(0.4%) 순으로 나타났다.

가족간 범죄라는 특수성 때문에 처벌로 이어지는 경우는 흔치 않다. 형사 고소는 처벌이 수반되는데 부모들은 자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고소를 취하한다. 경찰이 개입해 상황이 일단 정리되면 이내 합의서가 들어온다. 경찰이 노인학대 사건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않는 이유다. 노인학대의 경우 반의사불벌죄, 즉 합의를 할 경우 처벌이 불가능하다. 간혹 다른 가족이 가해자녀의 처벌을 피하기 위해 합의를 요구하면 받아들이는 게 대부분이다. 간혹 상습 폭행인 경우 존속상해를 적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흔치 않다.

김 변호사는 "노인학대 피해자 지원은 변호사들로서는 규정상 없는 업무 영역"이라며 "간혹 경찰 등에서 도와달라는 요청이 오지만 대부분 거절하기 힘들어 무보수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선 피해자 변호사가 수사 개시를 요청할 수 있지만 보호만 해달라고는 요청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이는 법률상 노인학대 피해자들이 소외 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족범죄 담당(여성청소년과)인 경찰도 "대부분 자녀의 가정폭력은 지속적 폭행, 즉 상습이 아닌 이상 구속되는 일이 드물다"라면서 "자녀에 의한 학대는 피해자가 신고를 하지 않아 사실상 알려지지 않는 게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보호시설 있어도 대부분 무용지물 = 노인학대 등 범죄피해자들에게는 해바라기센터나 쉼터 등 숙식을 제공하는 지원시설이 제공되기도 한다. 하지만 시설에 들어가는 노인학대 피해자는 극소수다. 지속되는 노인학대는 보통 자녀가 부모의 거주지를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부모가 집에 없는 경우 가해 자녀는 친한 이웃이나 주변 형제, 친척 등의 집을 찾아가 '부모가 있는 곳을 알려달라'며 행패를 부린다. 피해자가 주거지를 떠나지 못하고 학대를 지속적으로 당하는 게 여기에 있다. 아예 학대피해자가 경찰 단계에서 쉼터 등을 소개받지 못한 경우가 상당하다.

여기에 전문기관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못하는 것은 대부분 노인들이 법률상 성인이기 때문이다. 아동·장애인은 스스로 가해자로부터 분리돼야 하는지, 공권력 보호를 받아야 하는지 판단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데, 장애가 없거나 치매가 아닌 노인은 경찰이나 전문기관들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보호조치 활성화 필요 = 전문가들은 아동학대 사건에서 학교나 보육기관 종사자가 신고 의무자로 지정된 것처럼 노인학대도 의료진 등을 신고의무자로 지정한다거나 반의사불벌죄 폐지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다만 관련 법을 크게 바바야 하는 문제가 있어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 한다.

일각에서 처벌 강화를 외치지만 능사가 아니다. 이미진 건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인학대라는 게 오래된 가족 역사 안에서 일어난 경우가 많다"며 "처벌을 강화하면 나아질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복잡하고 다양한 유형의 학대가 모두 포함되는데다가 관계의 특수성도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피해자 국선변호인들이 법원에 피해자 임시보호조치나 가해자의 접근금지 명령, 피해 노인에 대한 스마트워치 보급 요청 등을 할 수 있게 하거나 공권력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야만 학대 받는 노인들을 도울 수 있다는 이야기다.

20대 국회에서 의료기관이나 노인복지시설 근무자에 대해 노인학대 신고 의무 부과, 경찰·보호전문기관이 피해 노인 보호조치 등을 포함한 '노인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안'이 발의됐으나 회기 만료로 자동폐기된 바 있다.

노인학대 사건을 다룬 경험이 있는 검찰 관계자는 "피해 사실을 주변에서 먼저 파악하고 대응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는 것이 중요하다"며 "노인학대의 경우에도 아동학대에 준해 학대 노인을 보호하기 위한 울타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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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완 박광철 기자 osw@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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