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대규모 추경 지출구조조정, 조삼모사 '수두룩'

2022-05-18 11:43:18 게재

사업 지연·지급금 연기 통한 감액 시도

국회 예산정책처 "실질적인 절감 효과 없어"

신뢰도 하락·재정부담 확대 등 부작용 우려

국채발행을 하지 않고 대규모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기 위해 적지 않은 지출구조조정이 이뤄졌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사업지연, 이차보전으로 전환 등 지출을 줄인 게 아니라 내년으로 미뤄두는 '조삼모사' 형태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답변 준비하는 추경호 부총리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7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추경안에 관한 답변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18일 국회 예산정책처 최성민 예산분석관은 2022년도 2차 추경안 분석보고서를 통해 "2022년도 제2회 추경안에 포함된 지출구조조정 규모는 7조원으로 역대 지출구조조정 규모 중 가장 크다"면서 "상당수 사업들이 총사업비 규모의 변경이 없는 상황에서 사업지연에 따라 올해 사업비 일부를 감액하였다"고 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다목적방사광가속기사업은 사업추진체계 구축에 기간이 더 소요된다는 이유로 205억 원이 감액됐고 산업통상자원부의 킨텍스3단계 건립사업은 총사업비 규모 증가 필요성에 대한 기획재정부 재심의 절차로 사업 일정이 변경되면서 137억 원이 축소됐다. 이 예산은 차후에 사용될 수밖에 없어 '절약'이 아닌 '지출 연기'로 봐야 한다는 얘기다.

또 최 분석관은 "일부 R&D사업은 당해연도 협약기간과 회계연도간 일치를 위해 연구개발출연금을 조정했으나 해당 규모만큼 향후 지출소요액이 증가해 실질적인 지출 절감 효과를 발생시키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산업통상자원부 R&D사업 중 일부는 당해 연도 협약기간을 회계연도와 일치시키기 위해 수개월치의 연구개발출연금을 감액하는 취지로 지출구조조정사업에 포함됐다.

이같은 방식으로 구조조정 대상에 오른 사업만 산업혁신기반구축(R&D) 등 10개 사업이 있고 감액규모는 총 1661억 원에 달한다.

최 분석관은 "지출구조조정사업들의 감액사유를 보면, 총사업비나 총연구비의 규모가 감소하지 않은 상황에서 사업지연 또는 협약지연으로 사업기간이나 연구기간이 순연된 것이므로, 이번 지출구조조정을 통해 감액조정한 예산은 2023년도 이후에 추가로 편성해야 할 수 있어 실질적인 재정지출 감소효과를 발생시키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했다.

직접융자 사업을 이차보전 방식으로 바꿔 예산 지출액을 줄인 사업들도 적지 않았다. 기획재정부의 탄소중립전환 선도프로젝트 융자지원, 산업통상자원부의 에너지절약시설 설치(융자), 신재생 에너지금융 지원(융자), 녹색혁신금융(융자), 주택구입·전세자금(융자), 산림사업종합자금(융자)사업 등이 이 방식으로 구조조정됐다. 이차보전 사업은 민간금융기관 등이 대출해 주되 기준금리와 실제 대출금리의 차이를 정부가 보전해 주는 방식으로 이뤄지며 단기적으로는 재정지출 규모를 줄이고 대출공급 규모를 확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융자원금 회수나 이자 수입이 발생하는 직접융자 사업과 달리 대출기간 동안 지속적인 이차보전 지출에 따른 재정부담이 발생한다는 단점도 있다. 금리상승기에는 이차보전액이 당초 예상보다 증가할 수도 있다.

최 분석관은 "지출구조조정을 통한 추경재원 마련을 목적으로 직접융자 사업의 일부를 이차보전 방식으로 전환하기보다 직접융자 방식과 이차보전 방식의 장·단점, 금리상승 추이, 사업별 목적 및 자금수요자의 특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이차보전 전환여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농업재해보험 사업의 미지급금 지급시기를 늦춰 지출규모를 줄인 것에 대해서도 "국가보험사업에 대한 민간보험사의 신뢰도 저하로 귀결될 우려가 있고 향후 지출소요를 증가시켜 실질적인 지출절감 효과가 발생하기 어렵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미지급금 감액에 대해서는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출구조조정사업으로 농업재해보험 사업을 지목, 1000억원을 감액 편성했다. 감액 부분은 올해 민간보험사에 지급해야 할 과거 미지급금 1239억 9300만원 중 일부다. 이번 지출구조조정으로 2023년 이후에 집행해야 할 누적 미지급금은 모두 1858억 8900만원으로 늘어나게 된다.

최 분석관은 "추경재원 마련을 위한 지출구조조정으로 미지급금 예산을 감액하여 차후에 지급하도록 하는 것은 지급시기를 지연시킬 뿐 향후에 지출소요를 증가시킨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재정지출 절감 효과를 기대하기도 어렵다"면서 "추경안의 미지급금 감액에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며 향후 재해보험의 적정요율 산정과 국가의 적정보조율에 대한 검토를 통해 국가보험제도의 지속가능성을 제고할 수 있는 방향으로 중장기적 계획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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