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김현수 청소년정신건강전문가

"지난 3년 아이들은 기댈 곳이 없었다"

2022-07-13 11:08:55 게재

코로나 우울·극단적 선택 등 각종 지표 심각 … 모두를 포기하고 몇명만 살리는 교육 바꿔야

아이들이 아프다. 지난 5월 정부가 발표한 '2022년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2020년 청소년 사망자 중 50.1%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11년부터 지금까지 청소년 사망 원인 부동의 1위는 자살이다.
하지만 자살률이 50%를 넘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코로나 유행 기간 청소년들의 정서적 불안과 스트레스, 우울감이 심화돼 나타난 결과라는 분석이다. 문제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10대 비율이 계속 증가 추세라는 데 있다.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지난 3년, 아이들은 기댈 곳이 없었다. 평소에도 행복하지 않았는데 더 행복하지 않게 된 것"이라고 일갈한다. 그를 만나 현재 청소년들이 가장 힘겨워하는 점과 근본적인 해결 방안에 대해 들어봤다.

김현수 교수는 중앙대 의대 졸업 후 아주대 의대에서 정신과 전문의 과정을 수료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안산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 센터장을 맡아 활동했다. 2002년 청소년 치유형 대안학교 '프레네스쿨(성장학교) 별'을 설립해 운영 중이다. 현재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교수로 재직 중에 있으며 서울시 자살예방센터 센터장, 서울시 코로나19 심리지원단 단장을 맡아 자살 예방과 심리 방역에도 힘쓰고 있다. 사진 배지은

■정상 등교 후 학교폭력이 코로나 사태 이전보다 늘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기성세대가 볼 땐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며 친구도 사귀면 되지 않나 싶지만 아이들 입장에선 그렇지 않다. 코로나19 전에도 학교폭력이 가장 빈번하고 아이들이 학교를 안 가겠다며 떼쓰는 때가 신학기였다. 가뜩이나 서로가 서먹하고 예민한 상태인데 교실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긴 시간 함께 지내다 보니 당연히 싸움과 갈등이 빈번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다.

3년 만의 전면 등교라는 특수한 상황이었던 만큼 교육 당국은 학교 교육을 학습 정상화가 아닌 학생과 학생, 학생과 교사 사이의 갈등 완화와 관계 맺기에 초점을 맞추고 대응했어야 했으나 이 부분을 예측하지 못하고 놓쳤다. 학교생활이 정서적으로 힘들고 감정 조절이 안되는 아이들이 너무 많다. 스트레스를 교실에서 해소하려는 행복지수가 낮은 10대가 갈수록 늘고 있다는 의미다. 이제 교사 한명이 아이들을 통제하는 해결사가 될 수 없다. 학급 학생 수를 줄이고, 담임교사나 학습 교사를 돕는 보조교사·협력교사를 한 학급당 한명씩 배치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학교폭력을 완화할 제도적 지원이 절실한 때다.

■청소년 우울증과 10대 자살률도 계속해서 증가 추세라고 했다.

코로나19 이후 우리나라의 전체 자살자 수는 줄었지만 10대와 20대 자살률이 각각 9.4%, 12.8% 로 압도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이건 경고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 기성세대는 상대적으로 가진 게 많다. 돈과 시간적 여유, 스트레스에 대처할 수 있는 다양한 기제도 경험을 통해 축적해뒀다. 또한 친인척이나 동창, 종교 등 힘들 때 나름 기댈 곳도 있다.

하지만 관계 범위가 부모와 학교뿐인 아이들은 그마저도 기대고 의지하지 못한 채 코로나 유행시기를 보냈다. 극단적인 외로움에 처했던 거다. 학원은 다니지 않았느냐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사교육 시설은 거쳐 가는 곳일 뿐 소속감을 주진 못한다.

혹자는 어느 때보다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청소년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지만 이는 착각일 뿐이다. 지금 아이들은 빈부격차가 극단적으로 벌어진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아이들이 외로움 다음으로 힘들어하는 게 불평등, 다시 말해 상대적 박탈감이다. 특히 코로나로 인한 원격수업은 사적 영역인 가정 형편을 극명하게 드러나게 했다. 화면에 비친 각자의 집안 환경을 보며 커다란 간극을 알게 된 거다. 여기에서 아이들이 받은 충격과 상처는 상상 불가다.

■부모와 함께 있어도 외로움을 느끼는 아이들,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나라 부모, 자녀 간 대화의 특징은 '기-승-전-공부'로 끝난다. 대화의 초점을 공부에 맞추면 집안 분위기 자체가 감시 체제가 된다. 코로나 시국에 부모와 함께해 좋았다는 아이들도 있지만 대다수는 괴로움을 토로했다. 부모가 자신의 과거를 기준 삼아 시대와 문화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라떼는 말이야~'라고 하는 '꼰대'가 될 수밖에 없다.

자녀 입장에서 공감하고 경청해야 한다. 아이의 관심사를 눈여겨보라. 학업 위주의 대화나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들을 나열하는 의무 중심 대화는 지양해야 한다. 대화는 초대다.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일방적인 지시는 소통이 아닌 명령이다. 아이들은 대화 상대가 자신을 존중하는지 존중하지 않는지 귀신같이 안다. 부모로서 내가 널 존중하고 마음 문을 열 때까지 기다릴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줘야 한다.

■자녀가 마음이 아픈 상태인지 알 수 있는 팁을 소개해준다면?

말수가 적어지거나 방문을 닫고 나오지 않는다거나 끼니를 거르거나 잠을 많이 잔다면 의심해 봐야 한다. 해야 할 일을 너무 많이 하거나 적게 하는 것, 짜증을 내는 것도 마찬가지다. 자녀의 작은 변화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사춘기 땐 원래 그렇다고 넘어가거나 힘으로 통제와 강요를 하려들면 아이는 마음의 문을 닫는다.

한가지 더 첨언하자면 "하루 종일 스마트폰만 손에 쥐고 있었는데 피곤하다는 게 말이 되냐?" "공부도 때가 있다. 정신 좀 차려라"라는 식으로 자녀의 의견을 무시해서도 안된다. 가정은 아이들의 쉼터이자 최후의 보루가 돼줘야 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청소년기를 더 이상 공부와 성적에 매달리게 하지 말자. 한마디로 '국·영·수 중심 시대'를 이제 접어야 한다. 아이들의 재능과 가능성, 희망을 보지 않고 구시대적 발상을 고집하면 우린 소멸될 수밖에 없다. 세상 모든 부모의 바람은 자녀에게 보다 나은 미래를 주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그렇게 가고 있나?

우리나라 청년들이 결혼과 자녀계획을 기피하는 이유는 스스로가 행복하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지금의 고통이 행복한 미래를 담보한다는 착오적 발상은 부모와 자녀의 삶을 모두 파괴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엔 학벌과 학력을 강조하는 학력 우선주의 문화가 너무나 뿌리깊게 박혀있다. 지난 선거에서 교육감 후보들은 중·고등학생의 학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시험을 많이 치르게 하겠다는 공약을 너도나도 내걸었다. 실상 이는 공부를 매개로 한 학대일 뿐이다.

교육청에 걸려 있는 문구가 '한명도 포기하지 않는 교육'이다. 보고 있노라면 정말 화가 난다. 모두를 포기하고 몇명만 살리는 교육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지 않나. 시험을 주구장창 보면서 꿈과 끼를 발산하라니. 아이들도 이 모든 게 거짓임을 다 안다.

이제 멈춰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의 다양한 재능이 꽃필 수 있다. 권력을 가진 기성세대가 교육 제도 개편에 과감히 앞장서야 한다. 욕 좀 먹으면 어떤가. 책임지는 게 어른이다.

김기수 기자 · 김한나 내일교육 리포터 ybbnni@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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