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대입 사라지는 독서

대입공정성 강화 방안에 '독서활동' 미반영

2022-10-05 11:06:45 게재

2024 대입 평가부터 반영 안해 … 교사들 "정규 수업에서 독서 활동 늘려야 "

교육부의 '대입 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에 따라 2024학년 대입부터는 정규 교육과정 이외의 모든 비교과 활동이 대입에 반영되지 않는다. 비교과 활동으로는 수상 경력과 개인 봉사활동 실적, 자율동아리, 독서활동 등이 있다. 그러나 독서는 학생들의 학습 역량을 높여주며 진로 탐색의 중요한 수단 중 하나이다.
일선 교사들 역시 정규 수업에서 독서활동을 늘려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교육전문지 내일교육의 '쌤과 함께! 깊이 읽는 전공 적합서'에 수록된 선배들의 사례를 통해 독서 활용법을 정리했다.

사진 이미지투데이

 


독서활동은 개인의 관심 분야는 물론 희망 전공을 이수하는 데 필요한 역량을 드러내는 수단 중 하나다.

'2022학년 학생부 기재 요령'에 따르면 개인·교과별 독서활동 상황은 독서활동에 특기할 만한 사항이 있는 학생을 대상으로 학기 단위로 입력한다.

'독서활동 상황'란에는 학생이 읽은 책의 제목과 저자만 입력할 수 있다. 그러나 '대입 제도 공정성 강화방안'에 따라 2024학년 대입부터는 '독서활동 상황'이 대학의 평가 자료로 제공되지 않는다. '부모의 배경 등 외부 요인 차단'을 위한 조치라는 게 교육부의 설명이다. 뿐만 아니라 책 제목과 저자만 입력하는 기재 방안은 독서의 경향성을 검토하는 데 그쳤다는 평가도 나온다.

◆고교 독서활동 무용론? = 학생부 '독서활동 상황'이 대입에 반영되지 않으면서 '독서 자체의 미반영'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단순 독후활동 외 교육활동을 전개했다면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세특)' '창의적 체험활동(창체 활동)'에 입력할 수 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심화·연계해 학습한 독서내용은 세특과 창체 활동에 기재가 가능하다.

일선 교사들은 교과 학습의 깊이를 더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독서라고 말한다.

손지유 경기 안산강서고 교사는 5일 "각 과목에서 관련 서적과 연계한 활동을 하거나 학교에서 독서 프로그램을 운영하면 학생들의 참여도가 높다"면서 "최근 진행한 학생 미니특강도 학생이 사용할 강의 자료에 참고 도서를 한 권 이상 포함하도록 했는데, 이런 활동도 고민해보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입 준비를 위한 독서만이 의미 있는 것은 아니다. 내일교육의 '전공 적합서(書)' 인터뷰 기사를 보면 대학생이 된 후 더 많은 독서를 하는 사례도 있다.

송승훈 경기 의정부 광동고 교사도 "독서는 공부 시간을 뺏는 게 아닌 학습 역량을 높여주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며 "간혹 언어와 사회 과목 성적이 안 나와 상담을 요청하는 학생들이 있는데, 쉬운 내용부터 시작해 관련 서적을 많이 읽어보라고 한다"고 말했다.

이미 대학에 입학한 선배들도 여러 이유로 독서를 활용해왔다. 대표적 유형으로는 전공 심화 학습과 진로 탐색 학습, 탐구활동 학습이 있다. 자연계열 학생이 전공 관련 책을 찾아보다가 인문 서적까지 탐독하는 과정도 눈에 띈다. 전공과 진로를 결정하지 못한 학생이 책 한권으로 고민을 해결하기도 한다. 독서가 여전히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선배들의 유형별 독서 활용법 = 정현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학생은 "목표 학과가 생긴 후에 '외교외전' '자원전쟁' 등 국제정치 관련 책을 주로 보되 탐구 활동과 관련한 인문학 철학 서적도 읽었다"며 "지리보이라고 불릴 정도로 지리나 지정학 관련 책을 탐독했다. 지리·역사·문화·기술 등 여러 분야 지식과 정치·외교적 문제를 엮어보면서 독서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현서 학생이 선택한 책은 '지리의 힘(팀 마샬·사이)'이다. 그는 "러시아가 왜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는지, 남미와 아프리카 국가 대부분이 어째서 빈곤한지, 한반도에 강대국들이 많이 드나든 이유 등 국제정치적 현상을 지리적 이유로 파헤친다"며 "정치외교학과를 희망한다면 지리적 관점을 통해 국제 정세를 바라보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서연 고려대 바이오공학부 학생은 "교내 '과학과 공학' 특강을 듣고 희귀 난치성 질환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기술을 개발하려면 생명공학을 전공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막연한 관심으로 다양한 책을 읽다가 의공학에 눈을 떴다. 윤리적으로 논란이 되는데 올바른 기술을 개발하는 의공학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서연 학생이 선택한 책은 '희망이 삶이 될 때(데이비드 파젠바움·더난)'이다. 그는 "고3이라는 불안감과 두려움에 전복된 나날을 보내던 저는 희귀질환 치료법을 포기하지 않고 찾아내는 지은이를 보며 희망이 있다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해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지은이와 같이 희귀·난치병의 조기 진단 기술 개발을 넘어 희귀·난치병 의료 데이터 네트워크 구축을 소망하게 됐다"고 밝혔다.

배해리 가톨릭대 특수교육과 학생은 "평소 읽고 싶은 책이나 읽어야 할 책을 적어두고 주제 발표가 있을 때 활용할 책이 있는지 찾아봤다. 교과활동과 연계해서 독서를 하면 세특 기록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며 "희망 전공 이외의 분야도 독서로 접하려고 노력했다.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과 연계해서 찾아보면 도움이 될 책이 많다"고 말했다.

배해리 학생이 선택한 책은 '세븐 블라인드(김선희, 나윤아 외 3명·소원나무)'이다. 그는 "성매매 도박중독 몰카 따돌림 사생팬 자살 폭력 등 7가지 청소년 문제를 소설처럼 다룬 책"이라며 "우리 사회가 청소년 문제의 가려진 원인은 보려 하지 않고 격리시키기에만 급급하다고 지적한다. '정치와 법' 수업에서 소년법에 대해 토론한 적이 있었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독서 활동 진로 탐색, 입시에 도움" = 이주민 서울대 심리학과 학생은 "심리학 수업이 없어 관련 책을 찾는 것으로 시작한 고교 독서활동은 학교 공부나 진로 탐색, 입시까지 도움이 됐다"며 "'생명과학Ⅱ'의 유전 관련 내용을 '이상심리학'과 연계해 정신 질환에 영향을 미친 유전자 성질과 구조를 조사했다. 그 과정이 세특에 반영됐고 자기소개서 소재도 됐다"고 소개했다.

이주민 학생이 선택한 책은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로렌슬레이터·에코의서재)'이다. 그는 "현대 심리학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책이다. 심리학은 고전 철학에서 현대에 들어와 과학 분야로 넘어왔다. 그 과정을 쉽게 따라갈 수 있도록 안내하는 기본서와 같다"며 "20세기 심리학자와 정신 의학자들이 진행한 인상적인 심리 실험 10가지도 정리했다. 실제 심리학도들의 '원 픽' 도서이기도 하다"고 전했다.

서진배 숭실대 AI융합학부 학생은 "고등학교 1학년 때 독서를 거의 하지 않았는데 2학년 올라갈 무렵 학교에서 운영하는 '도란도란'이라는 활동을 알게 됐다"며 "팀별로 한권의 책을 정해 각자 읽을 분량을 나누고 내용을 공유했다. 나눠 읽기를 한 것인데 한권을 다 읽지 않아도 토론을 하고 나면 전체를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서진배 학생이 선택한 책은 '블루 스크린(조재성·이알북스)'이다. 그는 "과거에는 성공을 거뒀으나 현재는 자취를 감춘 기업이나 제품들을 정리한 책"이라며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면 결국 실패하는 모습을 보니 느낌이 달랐다. 이 책은 조별 활동에서 아이디어를 선별하거나 걸러내는 기준을 갖게 해줬다"고 말했다.

김기수 기자 · 조나리 내일교육 기자 jonr@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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