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원 기자의 외교 포커스 | 북한·일본 '오월동주' 종착지는 어디

개헌 원하는 아베, 지지율 반등 카드로 납북자 활용

2014-07-23 11:44:24 게재

아베 총리, 연내 평양방문 가능성 높아 … 북한, 외교적 고립 탈피 및 경제개발 자금 확보 기회

지난해 5월 이지마 이사오 일본 내각관방 참여(총리 자문역)의 방북으로 납치 문제 논의의 물꼬를 튼 북일은 1년 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납치자 재조사와 대북 제재 해제에 합의했다. 앞으로 북한이 내놓을 재조사 결과와 일본의 경제적 지원 수준 등을 놓고 양측이 줄다리기를 하겠지만 일단 양측 모두 궁지에 몰린 현 상황을 모면할 기회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

북한으로서는 외교적 고립과 경제난을 피할 수 있는 통로를 찾았고 일본은 지지율 반등과 동북아 지역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도모할 발판을 만들었다.

◆조사 결과와 경제 지원, 이미 합의됐나 = 지난 5월 26~28일 스톡홀름에서 열린 당국간 협상에서 북일은 납치 문제 재조사와 재제 해제에 합의했다.

'5·29 스톡홀름 합의'에 따르면 북한은 특별조사위원회를 설치하고 납치 피해자 및 행방불명자, 1945년 전후 사망한 일본인 유골 및 묘지, 잔류 일본인, 일본인 배우자 등에 대한 포괄적인 조사를 진행키로 했다. 또 북한은 특별조사위가 조사 및 확인 결과를 일본 측에 통보하고 일본인 유골처리와 생존자가 발견되면 귀국시키기로 했다. 일본은 특별조사위원회가 조사를 시작하는 시점에 대북 독자제재를 해제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지난 4일 북한은 안전보위부 및 인민보안부 간부가 포함된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조사를 시작했고 일본은 각의(국무회의)를 열어 인도적 목적의 북한 선박 일본 입항 금지, 인적 왕래 제한, 송금 보고 의무 등을 해제했다. 북한국적 보유기가 일본에 입국할 수 있게 됐고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간부도 북한에 갈 수 있게 됐다.

또 북한 여행을 자제시켰던 '도항 자제 요청'도 해제됐다. 다만 대북 수출입 전면금지, 전세기 입항금지, 만경봉호 입항금지 등 다른 제재들은 유지된다.

행동 대 행동 원칙으로 포장돼 있긴 하지만 단지 조사위원회 설치만으로 제재를 해제한 것을 두고 양측이 조사 결과와 반대 급부에 대한 합의를 이미 마친 것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조사위원회 설치에 따라 대북제재를 일부 해제하는 방안은 지난 2008년에도 제시된 바 있다. 당시 이러한 방식에 강한 불만을 제기했던 야치 쇼타로 당시 외무성 사무차관은 현재 일본 국가안전보장국 국장으로 있다. 과거와 동일한 접근방식이 내부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이를 무마하기 위한 장치가 마련돼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것이다.


이번 북일간 합의에서는 지난 조사 때 대상자를 '납치피해자 및 행방불명자'로 한정한 것과 달리 1945년 전후 사망한 일본인, 잔류 일본인, 일본인 배우자도 포함시켰다.

이는 지난 2002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납치 사실을 인정하면서 피해자 5명을 귀환시켰다가 역풍을 맞았던 실수를 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재조사에서 납치피해자가 잔류해 있다고 인정할 경우 북한은 또다시 거짓말쟁이로 전락하고 일본 국민들 사이에서 반북 감정이 고조될 가능성이 있다. 아베 신조 총리도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납치자 문제에서 성과를 내야하는 부담이 있기 때문에 양측이 수치를 '조율'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조민 통일연구원 연구본부장은 "이번에 재조사 대상 범위가 넓어졌는데 이는 '물타기'로 현안에 대한 초점이 약간 흐려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북일간 스톡홀름 합의에는 북한의 핵포기 문제가 포함되지 않았다. 협상 과정에서 일본은 북한에 새로운 형태의 핵실험을 하지 않을 것을 요구했지만 북한은 핵개발과 경제개발을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은 6자회담이 몇 년째 재개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핵·미사일 문제를 연계할 경우 아베 총리 임기 내에 납치 문제 해결 시도조차 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2002년 고이즈미 수행해 북한 간 아베 2002년 9월 17일 고이즈미 준이치로(오른쪽) 당시 일본 총리가 평양 방문을 마치고 전용기에 올라타면서 손을 흔들고 있고 옆에 동행한 아베 신조(왼쪽) 당시 관방부(副)장관의 모습이 보인다. 최근 북일 협상에 따라 아베 총리가 북한에 방문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대두하고 있다. 평양 교도=연합뉴스


◆개헌 원하는 아베, 경제자금 필요한 김정은 = 지난 2012년 아베 자민당은 '강한 일본'을 내세우며 재집권에 성공했다. 아베 총리가 주장하는 강한 일본은 '전후 체제의 탈피'를 의미하며 이를 위해서는 전후 체제를 유지하는 핵심축인 평화헌법을 개정해야 한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헌법 해석 변경 강행으로 아베 내각의 지지율은 40%대로 떨어졌다.

최종 목표인 헌법 개정을 위해 아베 총리는 지지율을 끌어올려야 한다. 지지율 반등을 위해 '납치자 카드'를 꺼낸 것이다. 과거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경우 북일정상회담 발표로 43%에서 51%로 지지율이 오른 바 있다.

국내 정치적 문제 외에 국제 정치적 상황도 북일간의 거리를 가깝게 만들고 있다.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고 동북아에서의 주도권을 잃지 않기 위해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현재 일본은 한국과 일본군위안부 및 독도 문제로 갈등하고 있고 중국과도 과거사 문제를 포함해 센카쿠 열도 문제로 대립하고 있다. 한·중이 '역사공조'를 통해 대일 전선을 형성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은 납치 문제를 매개로 북한의 손을 잡은 것이다. 이를 통해 일본은 한국과 중국 등의 대일 압박을 상쇄시키는 한편 북한의 핵실험 유혹을 적절히 관리하면서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3차 핵실험 이후 중국으로부터도 외면당하고 있는 북한 역시 일본과의 교류가 반가울 수밖에 없다. 남북관계는 인천아시안게임에 선수·응원단을 파견하는 문제조차 순조롭게 합의하지 못할 정도로 경색돼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제안한 '드레스덴 구상'에 대해 북한은 흡수통일에 기반한 발상이라며 반발하며 인도적 지원을 거부하기까지 했다. 중국과의 관계도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시진핑 국가 주석은 남한을 먼저 방문했고 북중간 고위급 교류도 거의 중단된 상태다. 세차례 핵실험과 연이은 미사일 발사로 미국은 한미일 공조 체제를 공고화하며 북한을 지속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일본과의 관계 개선은 한미일 공조에 균열을 낼 수 있다는 정치공학적 의미가 있다. 한미 양국도 이에 대해 이미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이다.

일본으로부터 경제발전에 필요한 자금을 수혈받을 수 있다는 기대도 관계개선의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 일본의 독자제재가 해제되면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와의 교류가 가능한 만큼 꽉 막힌 북한 경제에 숨통을 틔워줄 기능을 할 수 있다.

◆불안한 동거, 언제까지 갈 수 있을까 = 북일의 '밀월'은 한미일 공조체제의 균열을 우려하는 미국의 압박과 북한의 돌발행동이 장애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최근 제기되고 있는 아베 총리의 평양 방문 가능성에 우려를 표하며 자제시키는 분위기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지난 7일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과의 전화 통화에서 "아베 신조 총리가 북한을 방문하면 한미일 연대가 흔들릴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케리 장관은 "일본만 앞으로 나서는 것은 좋지 않다" "아베 총리가 방북하는 경우 '간다'고 통보하는 것이 아니라 그전에 우리와 충분히 의논하면 좋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사일 발사나 핵실험 같은 북한의 도발이 계속 될 경우 일본은 북일관계를 개선해나가기 부담스러울 것으로 관측된다. 최근 잦은 미사일 발사에 대해 아베 총리는 지난 13일 "미사일 발사가 (북일협상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없다"고 말했지만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 행위를 계속 묵인하면서 관계개선을 강행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납치피해자 재조사 자체에도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우선 요코다 메구미의 생사 문제가 걸린다. 사망했다는 결과가 나오면 일본 정부가 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 반대로 생존하고 있다면 일본 국민들이 수용할 수 있을지 예상하기 어렵다.

납치피해자 조사범위 문제는 오랜 갈등요인이다. 북한은 생존자 5명과 사망자 8명을 합해 총 13명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일본은 생존자 5명과 생사여부가 확인되지 않는 12명을 합해 총 17명을 납치피해자로 규정하고 있다.

또 재조사 기간과 검증 문제도 있다. 북한은 조속한 완료를 원하지만 일본은 1년 정도의 기간을 두고 철저하게 검증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납치와 지원문제도 관건이다. 북한이 재조사에서 납치피해자가 더 있다고 했을 경우 일본 국민이 납치국가인 북한에 식량도 비료 등의 인도적 지원을 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이와 관련해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김정은 시대 대외정책 특징은 변화의 폭이 크고 주기가 짧은 것이고 일본도 정권의 주기가 짧은 편"이라며 "정책의 일관성과 연속성 유지 여부가 북일관계 개선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아베, 수개월 내 방북 가능성" = 과거 북일관계 변화의 패턴을 보면 몇 가지 요인에 의해 좌우됐다. 북한은 북미관계가 좋지 않을 때 대체재로서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를 원했고 북미관계가 원만할 때는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현재 북미관계가 오랫동안 풀리지 않고 있는 상황인 만큼 북한의 대일관계 개선 의지는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일본은 내부 리더십이 강할수록 국제정세의 영향을 덜 받고 북한과 관계개선을 추진하는 경향을 띠었다. 현재 아베 총리가 내부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대북 유화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만큼 이 기조는 한동안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또 일본은 남북관계가 좋지 않을 때 북일관계를 개선해 한반도 문제에 개입하려는 면모를 보였다.

이들 요인을 따져보면 현재 북일은 관계개선의 필요성과 의지가 상당히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아베 총리가 평양에 가서 데려올 납치피해자가 존재하거나 지금 논의되고 있는 특정실종자 몇 명이라도 데려올 수만 있다면 아베 총리는 북한을 방문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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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원 기자 hope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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