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원 기자의 외교 포커스│한일수교 50주년, 새로운 관계 원년으로 만들려면

"안보·경제·통일 협력으로 '한일관계 2.0' 만들어가야"

2014-10-22 12:28:45 게재

위안부 문제, 단기간에 진전 이루기 어려워 … 한국, 한중일정상회담 복원에 주도적 역할 필요

과거사 문제로 항상 굴곡을 겪어왔던 한일관계가 박근혜 정부 들어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 꽉 막혀 있다. 일본 정부는 군 위안부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에 대한 검증 보고서를 발표하고, 아사히신문의 관련 기사 취소 이후 군 위안부 문제는 근거 없는 비방이라는 기조 하에 이에 대한 대외홍보도 강화해 나가고 있다.

일본은 과거사 문제에 대해 전혀 진정성을 보이지 않으면서 한편으로는 한일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의지를 지속적으로 표명하면서 우리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여기에 산케이신문 한국지국장의 검찰 수사도 양국간 외교 마찰로 비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일 양국이 갈등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운데 '한일관계 50년, 갈등과 협력의 발자취'라는 책이 발간된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한일 50년의 역사를 되짚어본 조세영 동서대 특임교수(전 외교통상부 동북아국장)로부터 경색된 한일관계를 풀 방법과 한일관계의 바람직한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조세영 동서대 특임교수는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1984년 외교부에 입부했다. 2013년 외교통상부 동북아국장을 끝으로 30년간 외교관 생활을 마무리했다. 사진 이의종

■ 최근 위안부 문제로 한일관계가 많이 경색돼 있다.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

분리대응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 분리대응이라는 게 골치 아픈 건 뒤로 미루고 나중에 하자는 게 아니라 섣불리 타협할 수 없는 문제는 정면으로, 단호하게 다룬다는 것이다. 마찰이 고조될 수 있다는 것도 감수하면서. 따질 건 따지고 협력할 건 협력하자는 얘기다. 따질 것을 못 따지고 협력만 해서도 안 되고, 따지기만 하느라 협력을 못하는 것도 분리대응에 실패하는 것이다.

위안부 문제에서 우리가 만족할 만한 수준의 해결을 단기간 안에 도출하기는 힘들다. 일본의 우파들은 위안부 문제를 일본의 명예회복 문제로 보고 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부당한 선전에 의해 일본의 명예가 실추됐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억울하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과 협상이 잘 될 리 없다. 길게 보고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일본과 전면적 협력관계를 이루지 못할 수도 있다. 당분간은 '쿨한' 한일관계로 나가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미국을 보면 위안부 소녀상 건립에 찬성하고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자세를 비판하면서도 안보 문제인 집단적 자위권 행사 문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리대응을 하고 있다.

■ 변화한 동북아 환경 속에서 대일외교는 어떤 점을 고려해야 하나.

1965년 한일협정 체결 당시 중심축이었던 경제와 안보 상황에 구조적인 변화가 생겼다. 1965년 체제를 '한일관계 1.0'이라고 한다면 이제는 '한일관계 2.0'으로 넘어가야 한다. 지금은 새로운 틀을 만드는 과도기다.

65년 체제의 '안보 기둥'은 냉전체제 틀 속에서 작동됐다. 이제 그런 진영 논리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론 일본과의 초보적인 안보협력은 필요하다.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은 구조적으로 연결돼 있다. 한미동맹이 안보의 축이라는 것도 부인할 수는 없다. 그 바탕에서 중국의 부상으로 인한 동아시아 세력 전이 속에서 일본과 어떻게 안보 협력을 해나갈지 고민해야 한다.

'경제 기둥'도 마찬가지다. 70년대 일본 경제규모는 한국의 30배였지만 지금은 5배 정도로 격차가 줄었다. 분야에 따라서는 우리가 더 앞선 기술을 가진 것도 있다. 과거 개발도상국 대 선진국이라는 수직적 협력 체제였다면 이제는 수평적 협력체제로 변화해야 한다. 경제부분은 민간시장에서 진화하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것은 한일 FTA 체결 문제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한일관계 2.0'이 되려면 안보와 경제 두 개의 기둥만으로는 어려울 것이다. '통일'이라는 새로운 기둥을 세우고 이를 위한 협력을 모색하는 것으로 확대해 나가야 한다. 우리가 통일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주변국과의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경제·안보 기둥의 접착력이 과거에 비해 약해졌고 동북아의 세력 구조 변화가 생겼다는 인식 하에 한일관계 모색을 입체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 한일정상회담은 필요한가.

정상회담이 그렇게 급한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국장급 협의에서 차관급까지 왔고 이제 외교장관회담을 서울과 도쿄에서 하는 것을 고민할 단계라고 본다. 외상회담이 열리면 한국이 대화를 거부하는 폐쇄적인 이미지를 불식시킬 수 있다.

당장은 한일정상회담보다는 오히려 한중일 정상회담을 복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양자관계가 잘 풀리지 않더라도 다자협력으로 묶어나가야 한다. 동북아 협력은 유지시켜 나가야 한다. 특히 중국과 일본이 서로 상대방이 균형을 깨고 있다고 으르렁대고 있는 상황에서 동북아 협력의 불씨를 살릴 수 있는 것은 한국밖에 없다.

이를 방치하는 것은 우리 정부가 주창하는 동북아평화협력구상과도 배치되는 것 아닌가. 이런 때일수록 한중일 정상회담 개최에 한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해서 한국의 존재감을 높일 필요가 있다. 설사 정상회담이 중국과 일본의 반대로 성사되지 않더라도 이를 중재하려 노력한 한국의 움직임은 평가받을 수 있다.

■ 대통령 순으로 한일관계를 정리했는데 어떤 특징이 있었나.

매 정부마다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 특히 김영삼 대통령 이후에 그게 굳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정권 초반에 일본과 좋은 방향으로 가려는 생각에 관계개선을 시도하다가 지지율이 떨어지고 역사·영토 문제 등 한일간 기본 모순이 표출되면서 후반부에 껄끄럽게 되는 패턴이 반복됐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예외적인 상황을 보이고 있다. 정권 초기 일본과 관계개선을 하려는 시도를 했던 기존 정부와는 다른 모습이다. 5년 내내 이런 상황으로 갈지 아니면 온탕으로 변화할지 궁금하다.

시대 흐름에 따라 국민여론이 작용이 커졌다는 점도 눈에 띄었다. 민주화가 되고 경제가 성장하면서 나타난 변화다. 국민의 목소리, 여론이 대일외교정책에 점점 더 많이 반영됐다. 정부는 어떤 때는 국민 여론을 등에 업고 외교를 하기도 하고 여론에 떠밀려 외교 정책을 펴기도 했다.

■ 과거 50년을 돌아봤는데 앞으로의 50년은 어떻게 내다보나.

향후 50년 역사의 주인은 우리다. 통일도 이뤄야 하고. 청년실업이니 주택문제니, 노후문제 등 경제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가려면 주변국과의 관계를 소홀히 할 수 없다. 무엇을 협력하고 무엇을 따져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한일관계도 이제 한일이라는 양국관계만 봐서는 안 되는 시대이다. 한일관계를 포함해 한미관계, 한중관계는 한반도 문제라는 맥락에서 중요한 것이다. 한일관계 못지 않게 중일관계 속에서의 한국, 미일관계 속에서의 한국, 미중관계 속에서의 한국 이런 식으로 입체적으로 다각적으로 봐가면서 조타를 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50년은 한일관계도 입체적인 시각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한국이 민주화 되고 경제 규모도 커진 지금은 과거 50년보다 미래 50년에 더 큰 도전이 있을 것이다. 또 성숙한 경제발전, 한반도 모순 해소도 이뤄가야 하는 중요한 시기다. 지난 50년 발자취 더듬어 보면서 미래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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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원 기자 hope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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