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원 기자의 외교 포커스 | 북한과 러시아의 밀월

나진(나진-하산 철도 재개통) 이어 남포(재동-남포역 구간 개보수) 물류시설 현대화 … 북러경협 가속도

2014-11-05 13:37:07 게재

러, 인프라 구축으로 동북아 영향력 확대 노려 … 북, 대중의존도 줄이고 국제사회 '고립 탈피' 의도

북한과 러시아는 지난해 9월 북한 나진과 러시아 하산을 잇는 철도를 개통한 데 이어 지난달에는 재동역-강동역-남포역 구간의 철도 개보수 공사를 시작했다.

나진-하산 구간 철도가 동해쪽인 나진항으로 오는 물류를 염두에 둔 것이라면 남포역 구간 공사에서는 서해 지역의 남포항을 물류 거점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전략이 엿보인다.

지난 3월 크림사태로 인해 서구 경제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와 세 차례의 핵실험으로 궁지에 몰린 북한이 손을 잡고 경제협력을 가속화하고 있다. 러시아는 미국과 유럽의 압박 정책에 대응해 북한과의 관계 강화로 동북아 지역의 영향력을 확대하려 하고 있다. 북한 역시 남북관계가 풀리지 않는 상황에서 일본을 비롯해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에 힘을 쏟으면서 북러간의 밀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북한 나진항에 도착한 러시아 특별열차 북한의 함경북도 항구도시 나진과 러시아 극동지역 도시 하산을 연결하는 철도 선로가 5년간의 개보수를 거쳐 지난해 9월 22일 개통했다. 사진은 북한 나진항에 도착한 러시아 철도의 특별 열차. 평양 교도=연합뉴스


◆협력 전환점 된 '부채 탕감' = 북한과 러시아의 경제협력이 활성화된 데는 크림 사태도 있지만 부채 문제 해결이 더 컸다. 러시아 국내법에 따르면 채무관계가 종결되지 않은 국가에 대해서는 협력 사업에 제약을 가하도록 돼 있다. 북한과 러시아 간에는 소련 시절부터 쌓아온 110억 달러에 달하는 채무가 있었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북러간에 걸림돌이 해결됐던 부채 문제는 지난 2012년 9월 부채 탕감 재조정 협정을 통해 채무 문제에 대한 원칙이 세워졌고 지난 5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최종 탕감 결정을 내리면서 정리됐다.

러시아는 부채의 90%를 탕감해주기로 하고 나머지 10%는 러시아와 북한이 관련돼 있는 여러 가지 현안 사업의 자본금으로 쓰기로 북한과 합의했다. 이에 따라 북러간의 협력 사업이 본격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부채 탕감으로 대북 투자에 대한 법적 걸림돌을 제거한 러시아는 '포베다(승리)'라는 이름의 북한 내륙 철도 현대화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지난달 22일 러시아 극동개발부는 "20년에 걸쳐 3500km 길이의 북한 철로와 터널, 교량 등을 개보수할 것"이라며 "러시아 회사의 비용은 북한 내 지하자원 인수로 상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러, 극동개발 필요성과 맞물려 = 러시아가 북한과의 경제협력을 활성화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러시아가 '극동개발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라는 점도 한 요인이다. 러시아 정부는 극동지역의 인구 감소 등으로 경제발전 지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2020년까지 약 3000억 달러를 투자해 인프라 구축 등을 해나갈 예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 나진항 사업은 러시아에게 중요한 부분이다. 안병민 교통연구원 센터장은 "이미 러시아의 극동항구들이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새로운 항구가 필요한 상태"라며 "부동항인 나진항을 개발하면 부산항으로 오는 아시아태평양지역 물류들을 받아 시베리아횡단열차(TSR)를 국제물류 간선 역할로 제고하려는 목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는 추후 남북관계가 개선이 되면 철도망, 가스관 연결을 확장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남북러 삼각협력을 유인하려는 것이다. 이미 나진-하산 프로젝트에는 우리 기업들이 컨소시엄 형태로 참여하고 있다.

정치안보적 이유도 빼놓을 수 없다. 러시아는 현재 북한에 대한 컨트롤 장치가 없다. 러시아의 대북 교역 비중은 중국의 10분의 1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러시아는 북한과 경제적으로 연결돼야 동북아에서 입지가 생긴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동북아에서 정치 외교적으로 '지렛대'가 없는 러시아는 TSR과 TKR(한반도종단열차)을 연결해 북한은 물론 한반도 전체에 대한 정치 경제적 영향력 확대를 기대하고 있다.


◆북한도 인프라 깔아주는 러에 끌려 = 경제 분야에서 중국 의존도가 심각한 북한은 러시아의 러브콜을 즐기고 있다.

과거 중국 민간 기업은 북한 인프라 구축에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고 물류 비용이 덜 드는 두만강 압록강 지역의 광산에 주로 투자했다. 북한 입장에서는 북한에 부수적인 이익이 전혀 없는 중국과의 자원개발협력보다는 물류 인프라 구축에 투자를 해주는 러시아와의 협력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특히 중국 일변도 개발에서 벗어나 무역 다각화를 시도하려는 차원에서 북한은 러시아와의 경제협력을 확대하려는 구상을 가지고 있다. 또 이를 통해 한국, 중국 미국으로부터 고립된 상황에서 일종의 '탈출구'이자 '견제장치'로 러시아를 활용할 수 있는 요소도 있다.

◆북러 '밀월' 언제까지 = 최근 강화된 북러관계 지속에 대한 전망은 조금씩 엇갈린다. 현재 관계가 크림사태로 촉발된 데 원인이 있다고 보면 향후 국제정세 변화에 따라 친소 정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푸틴 대통령이 지금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사태 고립 탈피가 시급한 과제이기 때문에 북한을 활용을 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면서 "남북관계가 좋아지고 북중관계가 좋아지면 북한도 대외관계 우선순위가 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북러 경제협력이 추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제성훈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러시아·유라시아팀 팀장은 "김정일 위원장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게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 철도 등 경제협력 논의를 한 것"이라며 "대외관계를 다각화하려 했던 아버지의 노력을 이어가려는 흐름이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동안 북러 경협을 가로막고 있던 채무 문제가 해결된 만큼 북러 경협이 꾸준히 발전해나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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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원 기자 hope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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