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원 기자의 외교 포커스 | 개혁개방의 길로 나온 미얀마와 고립된 북한

제재만 하면 고립 심해져 … 대화·교류로 닫힌 문 열어야

2015-03-04 13:33:33 게재

미, 미얀마 '정권교체' 정책 실패 … 아세안의 신뢰가 미얀마 변화 촉진

20여년간 군사독재체제를 유지하며 국제사회와 동떨어져 있던 미얀마는 지난 2011년 민선 대통령 출범 이후 본격적으로 개혁개방의 길을 걸었다. 민주화 시위에 대한 탄압으로 국제사회로부터 제재를 받았던 미얀마는 북한문제 해결에 영감을 줄 정도로 '환골탈태'했다.

지난달 4일 대니얼 러셀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북한의 변화가 꼭 정권교체여야 할 필요는 없다"면서 "미얀마처럼 평화로운 과정을 거쳐 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얀마 경제의 전환과 생활의 변화, 국제협력과 지원은 혁명의 대가로 따라온 게 아니라 평화적 과정을 거쳐 이뤄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권교체를 위한 '채찍' 실패 = 지금은 미얀마의 변화가 평화롭게 이뤄졌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몇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인식은 그렇지 않았다. 미국은 인권탄압국가인 미얀마가 변화하기 위해서는 정권교체나 정권붕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얀마 정권에 대한 붕괴(또는 교체)를 염두에 두고 미국은 미얀마에 대한 경제제재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갔다.

조지 부시 정부의 두번째 국무장관인 콘돌리사 라이스 전 장관이 2005년 미얀마를 '폭정의 전초기지'라고 말한 것은 이러한 미국의 입장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었다.

실제 미얀마는 1988년부터 2011년까지 20여년간 초헌법적인 군사정권 지배하에 있었다. 군사정권은 학생들의 민주화 시위를 무자비하게 진압했고 1990년 치러진 직접선거에서 패하고도 야당에 정권을 넘겨 주지 않았다.

또 미얀마의 국부로 존경받는 아웅산 장군의 외동딸이자 야당인 NLD(전국민주연맹) 지도자인 아웅산 수치 여사를 15년간 가택연금시키기도 했다. 2007년에는 승려들이 참여한 '샤프란 혁명'을 강제 진압하는 등 민주화 인사에 대한 인권 탄압을 계속했다.

1988년부터 2008년까지 미국은 '인권탄압국' 미얀마에 대해 의회법안 6개와 행정명령 5개를 통한 각종 제재를 가하고 있었다. 이와 관련해 김태현 중앙대 교수는 "미국은 1990년 '선거결과의 존중'을 내세우며 사실상 미얀마의 정권교체를 목표를 설정하고 있었다"면서 "제재를 가하고 있었던 미국은 대화나 관여의 노력은 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11월 13일 미얀마 국제회의센터(MICC)에서 열린 동아시아정상회의(EAS) 회의장 입구에 각국 국기를 든 미얀마 미녀들이 서있다. 1997년 아세안에 가입한 미얀마는 지난해 처음으로 아세안 의장국을 맡아 수행했다. 네피도<미얀마>=연합뉴스 도광환 기자


◆미얀마의 민주화와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정책 = 독재와 경제제재로 대립하고 있던 미얀마와 미국은 2010년을 전후해 각각 민주화와 중국 부상이라는 대내외적 변화를 맞았다.

2008년 국민투표를 통해 미얀마에 새로운 헌법이 채택됐고 2011년 3월 신헌법에 따라 실시된 선거에서 떼인 세인 정부가 출범했다. 떼인 세인 대통령은 아웅산 수지 여사 등 정치범을 석방하고 개혁개방 정책을 펼쳤다.

비슷한 시기 미국에서는 아시아 지역에서 중국의 부상을 견제해야 한다는 인식이 대두되고 있었다. '아시아 재균형(Pivot to Asia)' 정책이 제기된 시점이었다. 이에 따라 동남아시아에서 비교적 큰 영토를 가지고 있는 미얀마의 존재 가치도 높아졌다. 대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싶은 미얀마와 중국 견제의 필요성을 느끼는 미국의 요구가 일치했다.

오바마 정부는 그동안 미얀마에 대해 취해 온 제재 일변도 정책이 효과가 없었음을 인정하고 제재와 대화를 병행하는 방식으로 정책을 수정했다. 2011년 미얀마 민선 정부 출범 이후 대사급 외교 관계 복원 등 관계 개선 조치를 시행해 나갔다. 2012년에는 미국 대선에 재선에 성공한 오바마 대통령이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서 최초로 미얀마를 방문했고 2013년 5월 떼인 세인 대통령이 미국을 국빈 방문하며 미국-미얀마의 발전된 관계를 과시했다.

◆좋은 이웃을 만난 미얀마 = 미얀마가 고립상태에서 벗어나 개혁개방의 노선을 취하게 된 데는 주변국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1997년 동남아국가연합(ASEAN 아세안)은 '하나의 동남아시아'라는 기치 하에 미국 등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얀마를 회원국으로 받아들였다. 미국은 미얀마의 아세안 가입을 막기 위해 아세안과의 우호협력조약을 거부하는 등 압력을 가했다. 하지만 아세안은 미얀마에 대한 관여를 포기하지 않았고 1997년 미얀마를 가입시켰다.

중국은 유엔 안보리에서 미얀마에 대한 제재결의를 방어하면서 미얀마에 대한 투자를 늘렸고, 인도도 '8888 시민항쟁' 직후 미얀마의 민주화를 지지했다가 이후 미얀마와 군사물자 거래, 경제교류를 확대했다.

미얀마와 인접한 태국은 1988~1991년 미얀마 혼란기에 미얀마에 대한 정치적 지지를 보내는 대신 원목, 보석, 천연가스 등 분야에서 미얀마의 양보를 얻어 미얀마의 최대 수출국이 됐다. 미얀마와 무역거래를 하게 된 태국은 미얀마에 대한 아세안의 관여정책을 유도하고 미얀마의 아세안 가입에 일조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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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원 기자 hope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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