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원 기자의 외교 포커스│지속되는 북러 밀월

북한과 관계강화, '동북아 지분' 키우는 러시아

2015-05-20 13:15:26 게재

올해 '북러 상호우호교류의 해' 지정 … 북, 경제이익 크지 않아

지난 9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2차대전 전승기념일 행사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등장하는 극적인 장면은 연출되지 않았다. 북한은 헌법상 국가 최고 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참석시켰고 러시아는 서방국의 불참 속에서 정상을 보낸 북한을 환대했다.

앞서 김 제1비서의 불참 통보 사실이 공개됐을 때 북러간 관계에 '이상 기류'가 생겼다는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현재 러시아가 처한 상황과 정책 추진방향을 살펴보면 북러관계는 쉽사리 깨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상호우호교류의 해' 지정한 북러 = 리룡남 북한 대외경제상과 알렉산드로 갈루시카 러시아 극동개발부 장관은 지난 2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북러 비즈니스 협의회 1차 회의에 참석했다. 이 회의에서 리 대외경제상은 북한이 러시아와의 교역량을 올해말까지 3억 달러, 5년내로 10억달러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양국은 올해를 '상호우호교류의 해'로 정해 협력분야를 경제 분야에서 다른 분야로확대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지난 3월 11일 러시아 외무성은 "정치, 경제, 인도주의 등 여러 분야에서 러시아연방과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간의 관계를 한층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올해를 상호우호교류의 해로 지정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협력을 위한 양국간 교류도 진행 중이다. 지난달 27일 평양에서 제7차 통상경제·과학기술협력 위원회에서 북러는 에너지, 자원개발, 인프라, 교육·과학기술 등 분야에서 협력방안을 논의하고 회의 결과를 담은 의정서에 서명했다.

북한 주재 러시아 대사 이례적 TV연설 | 북한 조선중앙TV는 9일 러시아의 제2차 세계대전 승전 70주년에 즈음해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북한 주재 러시아 대사의 TV연설을 방송했다. 마체고라 대사는 연설에서 "러시아는 북한과 전통적인 친선 관계를 적극화하며 많은 분야에서 호혜적인 협조 규모를 확대하려 한다"고 밝혔다. 북한에서 외국 대사의 TV 연설은 이례적이다. 사진은 연설중인 마체고라 대사. 연합뉴스


또 4월 초 모스크바에서 열린 '상호우호교류의 해' 개막식에서는 트루트녜프 러시아 부총리가 동평양발전소 현대화, 러시아 여객기 투볼례프(Tu)-204의 북한 수출, 러시아 가스의 북한 경유 한국 수출 등의 사업 실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경제·정치적 포석 두는 러시아 = 서방의 경제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가 북한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것은 당장의 경제적 실리를 찾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정치 군사적 영향력을 서서히 확대해 나가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러시아가 정치 군사적 확장을 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는 것에 공감하고 있다. 러시아에 아시아태평양으로 진출하기 위한 발판이 되는 곳이 바로 북한이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북한을 지렛대 삼아 한반도와 동북아에서의 존재감을 드러내려 하고 있다.

박병인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러시아는 미중이 양분하는 동북아 정치 외교 지형에 북한을 매개로 한 영향력 확대를 노리고 있다"면서 "우크라이나 사태로 촉발된 서방의 제재를 아시아의 전통적 동맹국과의 관계 복원으로 상쇄하려는 의도도 가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과의 관계 강화는 한편으로 동북아의 최대 군사·안보현안인 북핵문제에서 더 많은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도 하다.

러시아는 2003년 시작된 6자회담의 일원이기는 하지만 6자회담은 주로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과거의 방관자적 입장에서 적극적인 역할 모색으로 자신의 안보 군사적 입지를 극대화하겠다는 러시아의 속내가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제성훈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러시아유라시아팀장은 "러시아는 동북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중국을 견제하고 미국에 맞서는 역할을 하려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론 경제적 실리를 챙기기 위한 측면도 없지는 않다. 푸틴 정부는 현재 러시아 시베리아, 극동지구 개발을 위한 청사진을 가동중이다. 극동개발부를 신설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극동지역 개발을 위해서는 북한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남북러 가스관 사업이나 철도 연결 사업도 북한과의 관계강화 없이는 불가능하다. 장기적으로 러시아 석유 및 가스의 아시아 시장 확보를 위한 포석을 두도 있는 것이다.

◆북한엔 '계륵' 같은 러시아 = 러시아가 장기적 전략을 가지고 북한에 접근하는 반면 북한은 러시아가 얻는 만큼의 경제적 전략적 이익을 얻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2013년부터 경제협력이 시작됐지만 2014년 북러간 교역량은 오히려 감소했다. 코트라에 따르면 2014년 러시아와 북한의 총 무역량은 2013년 대비 11.4% 하락한 92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전체 교역규모가 작기 때문에 금액 감소가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 북러의 경제상황을 보면 양자가 서로 신뢰할 만한 경협 파트너가 되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상황이다.

정은숙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지난해 10월 동평양에서 리용남 대외경제상과 갈루슈카 러시아 극동개발부 장관이 20년 기한 250억달러 규모의 북한 내륙철도 3500km 현대화 사업 시공식이 있었지만 한달도 되지 않아 러시아측 사업자인 '모스토비크'가 임금체불, 횡령, 탈세 등으로 파산했다"면서 러시아의 경제협력이 북한이 기대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분석했다.

실제 60억달러 안팎의 북중교역에 비하면 1억 달러에 불과한 북러 교역량은 미미한 수준이다. 북한이 언젠가는 '러시아는 소련이 아니다'라는 인식을 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북한과 러시아는 서로가 정치적 필요성이 있는 만큼 작은 규모라도 경제 교류 협력을 지속적으로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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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원 기자 hope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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