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원 기자의 외교·통일 포커스 │ 북한 '장마당' 세대, 변화 동력될까

"시장촉진 전략으로 대북정책 바꿔나가야"

2015-06-24 11:25:55 게재

"해외 미디어 접근으로 장마당 세대 생각에 큰 변화" … "선거 등 정치적 자유는 원치 않지만 경제 활동 자유는 갈망

북한에서 배급제가 사실상 중단된 뒤 물자를 조달하려는 주민들이 거래를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장마당'(비공식 시장)이 형성됐다. 시장이 형성되면서 북한 주민들은 '자본주의의 맛'을 보게 됐고 이를 우려한 북한 당국은 장마당 생성 초기 이를 철저히 감시했다.

왼쪽부터 김성경 북한대학원대 교수, 박인호 데일리NK 대표, 박석길 LiNK 정책연구국장, 강동완 동아대 교수, 에릭 피시 아시아 소사이어티 컨텐츠 제작자 겸 작가


하지만 지금 북한 당국은 장마당을 인정하고 세금까지 걷을 정도로 공식화했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최근 북한 내 장마당이 2010년 200여개에서 5년 사이 약 400개로 2배 가까이 늘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시장경제를 경험한 북한 주민들이 늘어나면 북한 내부에 어떤 변화가 생길까. 24일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주최로 열린 '북한 장마당 새 세대: 그들은 누구이며 변화의 동력이 될 것인가?' 국제학술회의에서는 장마당 세대가 자본주의적 사고를 강하게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도 변화돼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경제는 자유화, 정치는 권위주의 유지할 것" = 박석길 LiNK 정책연구국장은 "1980년대 이후 태어난 '장마당 세대'는 90년대 극심한 경제 고난기 동안 국가가 제공하는 교육을 받지 못했고 이 때문에 북한의 전통적인 선전과 문화가 완전히 스며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 주민들은 중국이나 한국 등 해외 미디어를 시청하면서 외부의 정보를 많이 얻게 됐다"면서 "젊은이들은 불법인 외국 미디어를 보면서 외부의 다른 관점과 다른 현실에 눈 뜨게 됐고 정부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박 국장은 "인터뷰를 한 30대 탈북민은 어린 나이부터 밀수를 하면서 자본주의 시스템을 습득했다"면서 "형식적으로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살았지만 실제로는 자본주의에서 태어나 큰 것"이라고 해석했다.

박 국장이 소개한 탈북민 인터뷰에서 한 탈북민은 "배가 고파서 나온 것도, 배가 불러서 나온 것도 아니고, 자유세상 바람을 좀 맞아보자는 생각에 탈북했다"고 말했다. 이 탈북민은 "젊은 세대들은 자유를 찾고 싶어한다"면서 "자유라는 것은 일하고 싶은 곳에서 일하고, 일하기 싫으면 안 하고, 장사하고 싶으면 장사하고, 다니고 싶으면 다니는 걸 말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박 국장은 "북한 주민들은 대통령을 직접 선출한다거나 하는 정치적인 자유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경제적인 자유를 얘기하는 것, 이런 것이 장마당 세대에서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장마당 세대는 북한에서 사회 변화의 아주 의미 있는 현상이며 선구자이고, 북한의 경제자유화와 개방은 북한 정부가 장마당세대의 사회변화를 따라잡아 이를 흡수해 장기적으로는 이들의 지지를 공고히 하는 데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시장경제를 수용하려는 압력이 커지고 있어서 북한 경제는 자유화로 나갈 것"이라면서도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권위적, 민족주의적 시스템을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에서 시장경제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가고 있는 만큼 이에 맞는 대북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박인호 데일리NK 대표는 "김정은 집권 이후 시장 통제가 사실상 없다"면서 "자유화가 됐다는 게 아니라 2004년 시장이 처음 들어섰을 때 북한 정부가 만든 기준에 따라 돌아가고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어 "시장으로 인해 절대빈곤 상황이 개선됐기 때문에 북한을 만성적인 기아를 겪는 나라라고 보기도 어렵다"면서 "북한 주민 민생은 크게 안정화됐고 김정은 체제에 대한 불만도 거의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시장화 현상, 경제발전 현상이 후퇴할 가능성이 매우 적을 것"이라면서 "당국이 이런 추세를 뒤집을 동기가 없다"고 분석했다.

박 대표는 "시장화가 촉진될수록 김정은의 개방화 전략에도 속도가 붙을 수밖에 없다"면서 "핵무기를 앞세우는 군사 대결주의는 개방화 전략과 함께 갈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북한의 시장화가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잡게 될 경우 우리의 대북정책도 시장화를 고려해야 한다"면서 "우리 대북정책을 북한시장촉진 전략으로 전환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의 MP5와 휴대폰. 북한 주민들은 중국에서 만들어진 MP5를 통해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접할 수 있다.

개인과 조직에 낀 '사이세대' = 김성경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장마당 세대로 불리는 북한 청년을 '사이 세대'라고 규정할 수 있다"면서 "이 세대의 마음은 양가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북한 청년들은 시장과 국가의 사이에 끼어 있다"면서 "모든 것은 시장에서 조달하고 생각하는 방식도 시장의 방식이지만 국가를 벗어나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이 세대는 돈이 없으면 부자가 되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연줄이 없으면 성공이 어렵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 세대들의 패션트렌드를 보면 개인적인 욕망에서인지 국가의 개입 때문인지 정확히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리더의 스타일을 닮고 싶어 하는 게 나타난다"면서 "김일성 김정일 얼굴이 들어간 뱃지를 정치적인 이유가 아니라 예쁘기 때문에 달고 다닌다는 탈북민의 인터뷰도 있었다"고 전했다.

또 "돋보이려 성형수술하는 사람도 있지만, 반대로 모난 돌이 되고 싶지 않은 집단주의적 정서도 남아 있다"고 분석했다.

장마당 세대가 접하는 문화의 변화가 북한 시장경제를 더 활성화시키고 계층까지 허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강동완 동아대 교수는 "북한 주민들이 장비들을 중국에서 들여와 다양한 해외 컨텐츠를 보고 있다"면서 "영상물 확산은 단지 한류가 북한 내에 퍼진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영상물 접촉이 시장을 추동한다"면서 "물건을 통용하게 되고, 불법행위를 눈감아줄 뇌물을 주게 되고, 부의 축적을 위해 당국자들의 생각도 바뀌게 된다"고 말했다. 영상물 보급이 시장 추동에서 계층을 허무는 것까지 확산될 수 있다는 얘기다.

중국 청년의 경험, 북한에 교훈 = 에릭 피시 아시아 소사이어티 컨텐츠 제작자 겸 작가는 중국의 경제변혁기에 나타난 청년들의 행동이나 사고방식이 북한 청년들에게도 나타날 수 있다고 봤다.

피시 작가는 "군사훈련에서 젊은 중국인들의 생각이 바뀌는 것이 드러난다"면서 중국 대학생들의 군사훈련 사례를 소개했다. 신입생들이 2~3주간 군사훈련을 받는 것에 대해 그는 "학생들에게 왜 이렇게 엄격한 훈련을 하나 싶었는데 훈련은 학생들에게 복종심을 심어주는 방편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훈련기간 중 여성은 화장하면 안되고, 남자는 수염을 기를 수 없다"면서 "복종, 획일주의를 강조하고 개인보다는 조직의 일원이라는 심리를 심어주는 체제"라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학생들은 이런 것을 비웃는다"며 "정부는 획일성을 키우려 하지만 학생들은 교묘한 방법으로 반항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남방주말 사태(언론 탄압 반대 시위)에서 보듯 생각보다 빨리 풀뿌리 민주주의가 일어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중국의 경제변혁기에 중국 청년들의 경험은 시장개혁이 사회주의 질서에 도전하려는 북한에 가치 있는 교훈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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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원 기자 hope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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