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 반환점, 경제공약 점검│③ 일자리 정책

고용안정·해고요건 강화 약속 '나 몰라라'

2015-08-28 09:54:52 게재

'늘·지·오' 공약과 거꾸로 가는 노동개혁

일자리 내세운 밀어붙이기에 노동계 반발

'원칙과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은 박근혜 대통령에 따라붙는 수식어다. 하지만 대통령 당선 이후 그 이미지는 많이 퇴색했다. 대선에서 한 약속들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까닭이다. 경제민주화 공약은 흐지부지됐고, 복지공약은 후퇴했다. 노동개혁은 공약과 거꾸로 추진되고 있다. 25일로 임기 반환점을 지난 박 대통령의 주요 경제공약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 중간점검해본다. 편집자 주

"박근혜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노동분야에 대해 어떤 공약을 했는지 기억이나 하는지 모르겠다."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는 정부의 일방통행식 노동개혁에 대한 노동계 반응이다. 이를 억지라고만 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당시 후보와 새누리당은 노동분야 대선공약으로 '늘·지·오'를 전면에 내세웠다. 좋은 일자리를 많이 늘리고, 지금 있는 일자리를 지키고, 나쁜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끌어올리겠다는 것이 바로 '늘·지·오'다. 노동계가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다. 되레 쌍수 들어 환영할 만한 대목이다.

2월 13일 청와대에서 열린 노사정 대표와의 오찬회동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 제공


그런데도 반환점을 맞이한 박근혜정부는 최근 노동계와 사사건건 부딪치며 반목을 거듭하고 있다. 공공부문 정상화 방안, 비정규직 활성화 대책, 노동시장 구조개선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특히 최근에는 '청년일자리를 위해 노동계가 양보해야 한다'고 연일 강조하는 정부 주장에 노동계는 '지금보다 어떻게 더 희생하라는 말이냐'며 반박하고 있다. 왜 이렇게 꼬이기만 할까.

퇴로 없이 궁지로 내모는 정부 = 지난 6일 박근혜대통령은 대국민담화에서 4대 부문(공공 노동 금융 교육)개혁을 통해 경제재도약을 이룩하자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날 담화의 대부분은 노동개혁을 정조준했다. 나머지 3개 분야는 들러리에 불과했다. 담화의 핵심은 '노동개혁 = (청년)일자리'다. 일자리 문제로 고통 받는 청년들을 위해 기성세대가 임금피크제 도입 등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런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노동계는 노사정 대화에 복귀해야 하고,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합의에 동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담화는 정부여당 관계자들에게 공격을 알리는 신호탄 같은 역할을 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노동계를 압박했다. 내세우는 논리 역시 입을 맞춘 듯 천편일률적이다. 기획재정부, 고용노동부 등 경제부처 고위관료는 물론이고,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등 여당 고위 당직자들도 연일 노동계의 양보를 강조했다.

특히 지난 18일 한국노총의 노사정위 복귀를 위한 중앙집행위원회 회의가 무산되자 이런 분위기는 더욱 격렬해졌다. 회의를 무산시킨 일부 조합원들을 '극렬 과격분자'로 규정하고, 한국노총 지도부의 리더십까지 거론하며 비난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과 이인제 새누리당 노동시장선진화특위 위원장은 아예 노사정 복귀와 합의문 작성 시한까지 제시했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대화할 협상파트너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라고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청년 일자리라는 감성적 명분을 내세워 퇴로도 열어놓지 않은 채 궁지로 몰아넣는 식이다.

노사정위 복귀를 조심스럽게 검토하던 한국노총 지도부조차 '과연 이런 분위기에서 노사정 복귀를 하는 것이 옳은지 의문'이라는 회의론이 커졌던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노총은 다시 노사정위에 복귀했지만 정부의 일방적 밀어붙이기에 대한 노동계의 반감은 여전히 크다.
공약불이행 아니라 역주행 = 이처럼 노동계를 몰아붙이고 있는 정부여당 주장이 설득력을 갖기 위해선 지난 대선에서 어떤 공약을 했는지도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이제 막 반환점을 막 돌아선 박근혜정부이기에 더욱 그렇다. 특히 쟁점이 되고 있는 노동현안에 대해 선거 당시의 약속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 대선공약자료집에는 '행복한 일자리 분야'에서 일자리 '늘·지·오' 정책을 중요하게 소개했다. 세부적으로는 크게 네 가지로 나눠진다. 일자리 늘리기, 지키기, 올리기와 노사(문화)상생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주요내용이 노동계의 양보를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대기업과 공공부문 그리고 정부의 책임과 역할을 높이겠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일례로 근로시간의 경우 OECD 평균수준으로 단축해 일자리 창출과 근로자 삶의 질을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특히 근로시간 단축은 대기업과 공공부문을 주요 대상으로 삼았다.

청년창업 활성화 방안도 마찬가지다. 청년실업에 대한 진단 속에서 새누리당과 박근혜 당시 후보가 내놓은 공약은 정부와 대기업이 공동으로 기금을 조성하고, 청년창업펀드를 만들어 청년창업을 활성화하며, 공공부문에서 청년층 일자리를 확대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노동계를 향해서는 양보와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달콤한 약속'이 주를 이뤘다.

단적인 예로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구조조정 등 고용불안이 나타날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기업의 해고회피노력 의무를 강화하고, 경기변동에 대비한 고용안정을 도모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최근 박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고위관계자들은 이 같은 약속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노동시장의 경직성이 우리경제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면서 노동유연화를 위한 해고요건 완화를 노골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사실 노사정위 의제에서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요건 완화와 일반해고 요건 완화 의제를 빼자는 노동계의 주장은 지난 대선 당시 새누리당과 박 대통령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정부여당은 이 같은 노동계 주장을 기득권만 지키려는 이기주의로 매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박 대통령은 또 상시 지속적 업무를 담당하는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하는 관행을 정착시키고, 대기업과 공공부문부터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지난해 연말 정부가 내놓은 비정규직 종합대책은 더 많은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대책이라는 비판과 함께 노동계의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박 대통령은 대화와 상생의 노사관계를 정착시키기 위해 공정한 조정중재자 역할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최근 일련의 흐름은 경영계나 기업의 편에서 노동계의 일방적 희생을 강조하고 있는 양상이다.

특히 대통령이 직접 노사 대표와 정기적으로 만나 노동현안에 대해 의견을 듣고 대책을 논의하겠다는 약속은 새까맣게 잊은 듯한 분위기다.

결국 지난 2년 반 동안 박근혜정부의 노동분야 공약은 단순히 불이행을 넘어서 완전히 거꾸로 달려가는 역주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한국노총은 박근혜정부 임기 절반에 즈음한 논평을 통해 "지금 시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노동공약은 공약 불이행을 넘어 반노동 정책으로 흐르고 있다"면서 "박 대통령이 남은 임기동안 자신을 당선시킨 시대정신이며 국민적 요구이기도 한 경제민주화공약을 반드시 실천해줄 것을 기대한다"고 주장했다.

총선용 공세로는 공감대 못 얻어 = 대선 공약에 대한 실천은 뒷전이면서 연일 노동개혁을 내세우는 현 정부의 이중적 태도를 두고 결국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심심찮게 제기된다. 내년 총선 등 정치적 목적으로 노동개혁 카드를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노동개혁을 하려면 법제화와 (노동계와 야당을 설득하는) 정부역할이 필요한데 지금은 야당까지 반대하는 상황"이라면서 "그런데도 단기간에 끝내려고 하는 것은 성공하면 좋고, 안되면 노동계와 야당의 반대 때문이었다는 정치적 알리바이를 만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또 "경제적 어려움이 임금피크제 때문이 아닌데도 노동개혁 문제를 이렇게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총선까지 보면서 노동 쪽을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것 같다"면서 "결국 노동개혁이 되든 안 되든 이데올로기 공세가 집중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치평론가인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도 최근 언론기고를 통해 비슷한 견해를 피력했다. 이 소장은 "외부환경도 좋지 않은데다 정부무능이 겹쳐 민생경제는 그야말로 최악이다"면서 "이런 펀더멘털로는 선거에서 승리하기 어렵기 때문에 다른 프레임으로 바꿔야 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경제가 안 되는 핑계거리를 찾아야 한다"면서 "이런 필요성에 안성맞춤이 노동개혁"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노동개혁을 통한 경제활성화는 대외적 명분일 뿐이라는 의미다. 진정성이 부족한 노동개혁은 반발만 부르고 그만큼 실패할 가능성도 클 수밖에 없다.

선거용 프레임전략이 아니라 진정 국가를 개조하기 위한 노동개혁이라면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정식 한국노총 사무처장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600만표 날아갈 각오' 운운한 것은 노동개혁을 선거용 표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면서 "박근혜 대통령 얘기처럼 진짜로 국가명운을 위한 개혁이라면 지금과는 다른 진정성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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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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