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지물 전락한 증권집단소송제 | ③ 해외에서는

미국은 매년 평균 201건 증권집단소송

2015-10-27 11:02:52 게재

1996년 증권소송개혁법 이후 4034건 … 엔론 분식 8조2천억원대 배상 최고액

폭스바겐 사태로 국내 소비자들이 미국에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국내에서 허용하는 집단소송은 증권분야에만 국한돼 있어 일반 소비자 피해에는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집단소송은 '이해 관계가 같은 여러 명이 함께하는 공동소송'과 흔히 혼동돼 사용된다. 하지만 피해자 집단 중 1명이 대표로 소송을 제기해 승소하면 피해자 모두가 구제받는 집단소송은 미국의 대표당사자소송(class action, 집단소송)과 같은 의미다.


미국은 소비자 피해, 환경분쟁 등과 관련해 광범위하게 집단소송을 허용하고 있으며 증권집단소송은 지난 1996년 증권소송개혁법이 만들어져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27일 미국 스탠포드 로스쿨 증권집단소송센터에 따르면 미국에서 증권집단소송은 96년 110건을 시작으로 매년 평균 201건이 제기됐다. 올해는 1~10월까지 136건이, 제도 도입 이후 모두 4034건이 제기됐다. 국내에서 10년간 7건의 소송만 진행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천문학적 배상, 분식회계 대부분 = 미국에서 인정된 증권집단소송의 배상 규모는 천문학적이다. 엔론의 분식회계혐의가 드러나자 투자자들은 2001년 집단소송을 제기했고 2010년 72억2700만달러, 한화 약 8조2000억원에 달하는 배상액이 결정됐다. 역대 최고액이다.

엔론은 다수의 자회사를 설립해 이들과 반복적인 거래를 통해 부실 자산을 이전했는데 이를 가공이익으로 계상해 주가를 올렸다.

투자자들은 엔론이 주식투자자들을 속이기 위해 허위공표를 했다며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엔론 내부자들은 투자자들이 회사의 영업실적이 떨어지는 것을 모르는 동안 자신들이 보유한 7300만달러의 주식을 매각했다.

배상액 규모가 큰 상위 10개 소송 대부분은 엔론사태 처럼 분식회계가 드러나 주가가 폭락하고 피해를 입은 투자자들이 소송을 제기한 사건들이다.

미국 장거리 전화회사인 월드컴은 경쟁업체인 MCI를 인수하면서 부실화됐고 38억5000만달러에 달하는 비용을 이익으로 분식회계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사건으로 월드컴은 투자자들에게 61억3300만달러(약 7조원)를 배상했다.

함영주 중앙대 로스쿨 교수는 "미국 증권집단소송의 평균 화해 금액은 2005~2011년 동안 평균 4600만달러(약 520억원)였고 2012년 상반기 7110만달러로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며 "96년 이후 평균 화해금액은 점차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98년 증권소송통일기준법을 마련해 증권집단소송의 관할을 연방법원으로 일원화했다. 우리나라의 증권관련집단소송법이 피고의 관할지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도록 돼 있어 피고가 여럿일 경우 각각의 관할지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 것과는 다르다.

미국은 일정한 증권의 매매에 관해 '부실표시나 중요한 사실의 누락, 시세조종, 사기적 방법을 사용했다'는 것을 근거로 집단소송을 하는 경우 증권이 전국적으로 거래되거나 등록투자회사가 발행하는 증권이면 연방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도록 했다. 주법원에서 진행 중인 사건은 연방지방법원으로 이송해야 한다.

독일은 표본소송법 도입 = 독일은 지난 2005년 투자자 표본소송법을 제정하면서 증권관련집단소송을 도입했다.

이법은 도이치 텔레콤 사건이 계기가 됐다. 2001년 도이치 텔레콤의 주주 1만7000명은 투자정보 오류를 이유로 2700건의 소송을 제기했다. 약 900명의 변호사가 소송대리인으로 활동했고 법원은 업무부담을 이유로 상당기간 동안 변론을 열지 않아 헌법소원까지 제기됐다.

독일 정부는 결국 다수의 피해자를 위해 간단하고 효율적인 권리실현방안의 하나로 표본소송제도를 도입하게 됐다. 독일은 표본소송법을 한시적으로 운용하고 있다. 2005년에 도입해 2012년 10월말까지 연장하고 종료했다가 다시 기한을 8년 연장해 2020년 종료된다.

독일에서는 개인들이 허위정보와 투자사이의 인과관계를 입증하지 않아도 되고 모든 당사자가 동의해야만 화해가 이뤄지도록 했던 조항도 수정했다. 원고변호사는 일반 법령상의 변호사 보수 외에 청구 금액에 따라 추가보수를 받을 수 있지만 그 액수가 2만7000유로(약 3400만원)를 넘지 못한다.

호주, 소송기금제공회사 설립 = 호주는 집단소송제도를 지난 92년 도입했고 증권집단소송은 2004년 이후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증권집단소송 초기에는 대표당사자들이 소송비용을 부담하는 방식이어서 제도가 활성화되지 못했다.

하지만 대표당사자나 변호사들이 비용과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에 소송 기금을 제공하는 '상사소송기금제공회사'가 나타나면서 제도가 활성화되기 시작됐다. 기금제도방식에서 변호사는 승소하지 못할 경우 보수를 받지 못한다.

1996년 이후 6년간 7건에 불과했던 소송은 2006년 3건, 2007년 5건, 2008년 8건 등 상승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밖에도 캐나다와 네덜란드, 스웨덴에서 집단소송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네덜란드는 94년 소비자단체의 집단소송을 허용했으며 개인이 대표당사자가 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대신 그 역할을 대표기관이 수행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함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증권관련집단소송제도가 제 기능을 한다면 국내 증권시장에서 투자자들의 신뢰확보는 물론이고 우리 증권시장의 대외적인 신뢰도를 높여 해외투자자 유치와 국가신용도에도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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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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