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해비타트Ⅱ' 이후 20년, 주거권 현주소

쪽방·옥탑방에 강제철거까지 … 갈길 먼 '주거권리' 실현

2016-10-17 10:35:57 게재

아직도 600만명은 최저 기준 이하의 주거 빈곤층

17~20일까지 에콰도르 수도 키토에서 '유엔 해비타트 Ⅲ' 회의가 열린다. 정식명칭은 '주거와 지속가능한 도시개발에 관한 유엔 회의'. 1996년 터키 이스탄불에서 해비타트Ⅱ가 개최된 지 20년 만에 열리는 국제 행사다. 세계 각국이 대표단을 파견했다. 우리도 국토교통부 차관을 수석대표로 하는 정부대표단이 참석했다. 이와 별도로 시민단체도 50명의 대표단을 파견했다. 1976년 캐나다에서 열린 해비타트Ⅰ이후 지난 40년간 회의의 핵심 의제는 '주거권을 중심으로 한 도시의 정주 환경'이었다. 이번 회의에서도 '모두를 위한 지속가능한 도시와 인간 정주에 관한 키토 선언'을 채택할 예정이다. 유엔 해비타트Ⅲ 회의를 맞아 우리나라 주거권의 현주소를 살펴본다.

2014년 2월 26일 저녁, 대한민국은 충격에 빠졌다. 서울 송파에서 세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된 것이다. 60대 엄마와 30대 두딸이 생활고를 비관해 자살했다. 이들은 70만원이 담긴 흰봉투를 남겼다. 방세(50만원)와 공과금이었다. 봉투 겉면엔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들이 살던 곳은 단독주택에 딸린, 33㎡ 남짓한 반지하집이었다. 발견 당시 좁은 방엔 가구와 세간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송파 세 모녀의 죽음은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드러낸 것"이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42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해비타트Ⅲ 한국 민간위원회가 지난 11일 서울 참여연대에서 입장문서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 UN-해비타트 III 한국 민간위원회 제공


이후 기초생활보장제도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탄력을 받았다. 그해 말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이 1년반 만에 국회를 통과했다. 정부는 당당히 '송파 세 모녀법'이라 불렀다. 사건이 있은 지 2년 반, 송파 세 모녀는 이제 우리 사회에서 사라졌나.

주거권은 국민 기본권 = 우리 헌법(35조)은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갖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국가는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국민 주거권과, 이에 대한 국가의 책임과 의무를 분명히 한 것이다.

정부가 1990년 비준한 'UN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도 주거권을 '적절한 삶을 영유할 권리의 일부'로 인정하고 있다. 여기서 주거권의 핵심은 '적절한 주거'(adequate housing)다. 적절하다는 것은 '부담 가능성'(affordability)과 '살만한 집'(habitability)을 의미한다. 현실에서 두 개념은 서로 충돌한다. 부담 가능하면 살만하지 않거나, 살만하면 부담 가능하지 않거나다.

이처럼 주거권은 국민이 '적절한' 주택에 살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그간 역대 정부는 주거권 보장을 위해 많이 노력했고, 상당한 성과도 올렸다. 주택보급률은 100%를 넘어 절대적인 주택부족 문제를 해결했다. 최저주거기준도 법제화돼 국민 주거여건이 상당히 개선됐다.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최저주거기준 미달가구가 1995년 589만 가구(46.3%)에서 2010년엔 203만 가구(11.8%, 국토부 주택실태조사는 184만명 )로 줄었다.

장기공공임대주택 재고가 늘고, 새 주거급여도 시행 중이다. 특히 매입임대주택과 영구임대주택은 의미있는 정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시세 대비 30% 미만의 저렴한 임대료로 공급돼 여타 공공임대주택보다 입주자 부담이 낮기 때문이다. 지난해엔 '주거권'이 명시된 '주거기본법'이 제정돼 주거권 향상을 위한 법·제도적 틀도 갖췄다.

남철관 사람과나눔 주거사업국장은 "인간은 집을 통해 풍요로운 생활을 영유하고, 안정적인 주거환경에서 주변사회와 교류할 때 더 나은 삶을 보장받을 수 있다"며 "주거권과 주거복지는 이런 차원에서 이해되고 구체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거정책이 개발정책이 아닌, 복지정책으로 시행돼야 더 높은 수준의 복지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최저주거기준 실효성 떨어져 = 그러나 현실은 아직 주거권의 온전한 보장과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여전히 곳곳에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었다지만 수요가 많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여전히 주택이 부족하다. 서울의 경우, 다가구 구분거처를 주택수에 반영하고, 1인 가구를 가구수에 포함시킨 '신주택보급률'로 보면 97.9%에 머물고 있다. 경기도 역시 98.7%로 비슷한 상황이다.

국민주거 여건도 여전히 열악하다. 최저주거기준 이하의 주거빈곤 상태로 사는 국민이 지하·옥탑방 거주자와 주택 이외에서 살고 있는 가구를 포함할 경우 최대 600만(13.1%)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중 129만명이 아동이다. 이들은 가구원수에 비해 침실이 부족하거나 비좁고, 욕실·화장실·부엌을 다른 가구와 공동으로 사용한다. 주거환경이 열악한 지하·옥탑방, 주택이라 부를 수도 없는 고시원, 비닐하우스 등 비주택에 거주한다. 2004년 최저주거기준이 법제화됐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시설·방수·면적 등의 기준만 있을 뿐, 강제력과 지원수단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공공임대주택 정책 역시 문제가 많다. 국민임대주택, 5·10년공공임대 등은 주변시세에 비하면 주거비용이 낮지만 최저소득계층이 부담하기에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임대기간이 30년 이상인 장기공공임대주택 재고량도 88만6127가구(2015년 기준)에 그치고 있다. 현재, 한국의 공공임대주택 재고량은 OECD 평균(11.5%)의 절반 수준(5.5%)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이 규모로는 임대료 상승억제, 주거안정과 같은 공공임대주택의 정책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공공임대주택 신규공급이 줄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내부자료에 따르면, 2013, 2014년 2년 연속 예년 대비 공공임대주택 승인실적이 줄었다. 2013년의 경우, 2004년에 비해 1/3에 수준에 그치고 있다. 특히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에 중요한 역할을 해 온 국민임대주택 승인물량이 2008년을 기점으로 급격히 감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청년·노동자도 주거취약층으로 등장 = 박근혜정부의 맞춤형 복지에 따라 지난해부터 새롭게 시행되는 '주거급여'도 허점이 많다는 지적이다. 기초생활수급 가구에 임대료와 주택수선비를 보조하는 제도로, 그동안 여타 급여와 함께 공급하는 통합급여 방식으로 운영되다 지난해 개별급여로 개편했다. 그러나 '부양의무자' 규정에 의해 실제 경제적으로 궁핍함에도 불구하고 급여대상에서 제외되거나, 지원금이 낮아 실효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새 주거급여와 함께 도입된 저소득층 집수리도 주로 자가가구를 대상으로 하고 있어 임차가구가 혜택을 못받고 있다.

주거권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강제철거' 문제다. 열악한 지역의 주거환경을 개선한다는 명목으로 시행하는 '재개발' 현장에서는 외려 주거권이 침해되기 일쑤다. 국제적으로 명시된 철거절차는 무시된 채, 반인도적 행위가 법을 앞세워 자행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철거민들은 용역업체의 횡포에 신체적 물질적 정신적 피해를 입고도 제대로 항의조차 못한 채 내?기고 있다. 재개발 후에도 추가부담금 등을 감당할 수 없어 입주권을 넘긴 채 정든 터전를 떠나는 실정이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위원은 "아직도 주거취약계층의 주거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저성장 사회로의 진입과 사회·경제적 양극화 심화로 청년과 노동자들까지 새롭게 주거취약계층으로 등장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우려했다.

[''유엔 해비타트Ⅱ' 이후 20년, 주거권 현주소' 연재기사]
- ① 쪽방·옥탑방에 강제철거까지 … 갈길 먼 '주거권리' 실현 2016-10-17
- ②"꿈 향해 도전하고 싶어요. 그런데 '집' 생각만 하면…" 2016-10-18
- ③주거급여, 빈곤 해결엔 역부족 … 부양의무제 폐지해야 2016-10-19

김병국 기자 bg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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