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해비타트Ⅱ' 이후 20년, 주거권 현주소

주거급여, 빈곤 해결엔 역부족 … 부양의무제 폐지해야

2016-10-19 10:45:50 게재

OECD국가 중 부양의무제 한국뿐

7만9천가구 급여 사각지대 놓여

보건복지부는 7월 초 '발로 뛰며 일군 맞춤형 개별급여 1년'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지난해 7월 통합급여를 개별급여로 전환한 지 1년이 된 시점에서 정책성과를 홍보한 것이다.

복지부는 보도자료에서 "2016년 5월 전체 수급자는 167만명으로, 개편 전 132만명에 비해 27% 증가했다"고 강조했다. 또 "수급가구의 월평균 현금급여(생계+주거)도 40만7000원에서 51만4000원으로 10만7000원 가량 늘었다"고 밝혔다.

반면, 한달 뒤인 8월 말 국회의원회관 회의실에서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이 주관한 '개별급여 1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평가와 개선과제 토론회'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토론자들은 "법이 개정됐음에도 이전에 안고 있던 고질적인 문제들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참석자들은 한결같이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라"고 목청을 높였다.

"부양의무제 폐지하라"│2015년 7월 장애인 시민단체들이 서울 광화문 지하철역에서 장애인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과 농성을 펼치고 있는 모습. 내일신문 자료 사진


월평균 급여 2만원 증가 = 원래 주거급여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7가지 급여(생계 의료 주거 교육 해산 장제 자활) 중 하나로 2000년 도입됐다. 대략 전체 현금급여 중 22%를 주거급여로 간주했다. 그러나 2015년 7월 '맞춤형' 개별급여로 전환했다. 임차가구에게는 임차료를 현금으로 지원하고, 자가가구에게는 집수리를 지원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주무부서도 국토교통부로 이관됐다.

개별급여 전환과 함께 급여대상과 급여수준도 늘었다. 국토부에 따르면, 급여를 지급받은 가구는 80만가구로 기존 68만6000가구보다 11만4000가구 증가했다. 월평균 급여액도 8만8000원에서 10만8000원으로 2만원 많아졌다.

현재 주거급여는 '중위소득 43%(4인 가구 188만8317원) 이하'면서 '부양의무자 기준'을 충족하는 가구에게 지급한다. 부양의무자 가구소득이 '중위소득'(4인 가구 439만1434원) 이하이면 부양능력이 없는 것으로 판단해 주거급여를 지급한다. 부양의무자는 1촌 직계혈족과 그 배우자다.

2015년 12월 현재, 주거급여 요건을 총족하는 가구는 95만9000가구다. 이중 15만9000가구(16.6%)는 수급에서 제외됐다. 제외 가구 중 정부·지자체에서 제공하는 시설거주 8만가구를 빼면 7만9000가구(8%)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유는 소재불명, 장기입원, 조사거부 등이다.

그러나 정확한 주거급여 수급현황은 파악할 수 없다. 전체 수급신청자가 몇명인지, 급지·가구원수별 평균 급여수준은 얼마인지 등은 모른다. 이와 관련, 시민단체에서 국토부에 자료공개를 요청했으나 "관련 통계를 갖고 있지 않다"는 답변만 받았다. "성과에 대한 통계는 갖고 있지만, 기본적인 통계는 갖고 있지 않다는 말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국토부 "전체 수급 신청자 몇명인지 몰라" = 주거급여는 많은 한계를 지니고 있다. 소득기준이 까다롭고, 보장수준도 부족하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주거급여 독소조항으로 '부양의무자 기준'을 꼽고 있다.


사례를 보자.

서울 중계동에 사는 이아무개(57)씨는 2000년부터 심한 당뇨와 고혈압, 알코올 중독으로 기초생활수급을 받았다. 2013년엔 교통사고까지 당해 아직도 불편하다. 2014년 큰 딸이 결혼하면서 수급에서 탈락했다. 사위와 딸의 소득 때문이었다. 부양의무 능력이 있는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수급이 끊겨 힘들게 지내는 와중에 명의도용 사기까지 당했다. 경제상황이 더 악화됐고, 2015년 별거 중이던 아내와 정식으로 이혼한 뒤 다시 수급신청을 해 의료급여와 약간의 주거급여를 받고 있다. 그러나 생계급여는 받지 못하고 있다. 큰 딸은 결혼식 이후 얼굴 한번 본 적 없고, 전화도 받지 않는다. 동사무소에 이런 현실을 말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대답만 들었다. 이씨는 "하루하루가 힘들어 죽음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처럼 최저생계비 이하 소득으로 살면서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수급을 못받는 사람이 2010년 기준으로 117만명이었다. 당시 155만명이던 수급자가 2015년 132만명으로 23만명 줄어든 것을 고려하면 현재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인한 사각지대는 더 커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보건사회연구원 조사(2015년)에 따르면 수급신청을 한 가장 큰 이유는 '어려운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라는 답변이 80.2%로 가장 많았다. 하지만 신청자 중 67.6%가 부양의무자 기준에 걸려 탈락했다. 그러나 이들 중 부양의무자를 포함한 친지, 이웃에게 도움을 받는 가구는 24.4%에 불과했다.

부양의무자 기준은 기초생활보장제도 도입 초기부터 지적된 문제다. 본인이 아닌 부양의무자 소득·재산 때문에 수급대상에서 탈락하거나, 부양의무자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신청 자체를 거절당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정부도 이런 문제를 인식해 부양의무자 범위와 소득·재산 기준을 완화해 왔다. 2015년 개별급여로 전환하면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2001년 인구대비 3.2% 수준이었던 수급자 수는 2006년 3.2%, 2012년 2.7%, 2015년 2.6%까지 떨어졌다.부양의무자 기준 완화가 아니라, 폐지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보건사회연구원과 보건복지부가 공동 발간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부양의무자기준 개선방안'(2003년)은 "부양의무자 기준의 폐지가 아닌, 완화로는 사각지대 축소효과 크지 않을 것"이라고 결론낸 바 있다.

전문가 "도덕적 해이 걱정 없어"= 부양의무자 기준은 법적으로도 합리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배진수 사회복지공익법센터 변호사는 앞의 토론회에서 "부양의무자가 수급자에게 최소한의 생계급여 이상을 부양하면서 수급자 주거안정과 주거수준 향상까지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볼 합리적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주거급여는 최소한의 국민 주거권 보장을 위해 사적부양보다는 국가의 주거권보장 의무가 우선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교육급여는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했다. 균등한 교육기회를 제공하고, 빈곤의 대물림을 방지를 위해 국가의무가 우선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일부에서는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에 대해 '도덕적 해이'와 '예산부담'을 우려한다. 그러나 찬성론자들은 기우라고 일축한다. 가족간 부양의식이나 유대관계가 느슨해진 현실에서 재산을 미리 부양의무자에게 모두 증여하고 수급자가 돼 월 50만원도 안 되는 급여로 살아갈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을 거란 설명이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현재 기초수급제도의 사각지대가 너무 지나쳐 빈곤가구가 400만~500만명에 이르는 반면, 수급자는 130만명 밖에 안 된다"며 "도덕적 해이 때문에 엄청난 사각지대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제도 취지에 상반된다"고 반박했다.

예산 문제도 감당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보건복지부(2014년)에 따르면 부양의무제 전면 폐지에 드는 비용은 약 6조8000억원이다. 우리나라 GDP의 0.5%, 정부 총예산 대비 2%, 총복지예산 대비 6%에 불과하다. 반면 94만명이 신규로 혜택을 받는다. 가난이 죽음보다 두렵다는 한국사회의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사회안전망에 이정도 예산도 못 쓴다면 한국사회 빈곤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강조하고 있다.

문진영 서강대(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부양의무자 기준이 너무 엄격하다. OECD 국가 중 우리같은 부양의무제를 시행하는 나라는 없다"며 "전면적인 폐지가 어렵다면 주거급여만이라도 폐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엔 해비타트Ⅱ' 이후 20년, 주거권 현주소' 연재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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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국 기자 bg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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