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 고지 찍은 촛불, 정유년도 밝힌다

2017-01-02 11:16:15 게재

새해 첫 촛불은 세월호 1천일 추모 집회

"박근혜 구속될 때까지 촛불 들 것"

2016년 마지막 날, 촛불시민들이 1000만 고지를 찍었다. 새 역사를 쓰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광장을 꽉 메운 시민들은 새로운 대한민국을 바라는 소망을 실어 촛불을 켰다. 세밑 어둠을 환하게 밝힌 촛불은 정유년에도 꺼지지 않고 타오를 전망이다.

지난해 12월 3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 세월진 희망촛불 조형물 위로 풍선이 날아 올라가는 모습이 보인다. 워남준기 기자

1000만 촛불의 기록 … 박근혜 퇴진에 만족 않고 새 세상 꿈꿔 =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지난해 31일 10차 주말 촛불집회에 서울에 100만명, 지방에서 10만4000명이 모였다고 밝혔다. 이로써 10번의 토요일에 촛불은 든 사람은 총 1003만1870명으로 집계됐다.

퇴진행동은 "단일 의제로 1000만명이 집결한 것은 역사상 첫 번째 사례"라면서 "탄핵 이후 촛불은 박근혜 퇴진을 넘어 적폐와 부역자 청산을 요구하는 것으로 넘어갔다. '헬조선'을 부수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열망으로 촛불이 진화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처음에는 촛불이 이렇게 커질 줄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국민들이 위임한 권력을 사인에게 줘 버렸던 권력자에 대한 분노는 엄청났다. 집회가 열릴 때마다 촛불의 규모는 쑥쑥 커졌다. 10월 29일 첫 주말집회 때 3만명으로 시작했던 촛불은 11월5일 2차 집회에서 20만명으로 늘더니 12일 3차 집회에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최다인 100만명까지 참가자가 늘었다. 이후 지난 24일 열린 9차 촛불집회까지 합쳐 전국 추산 연인원 892만여명의 대기록을 세웠고 10차 촛불집회에 100만명 이상의 인파가 모여 연인원 1000만명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촛불의 요구도 진화했다. 처음에는 '박근혜 즉각퇴진'이 가장 큰 구호였지만 대통령 탄핵 가결 이후에는 '조기탄핵' '공범자 처벌' 등이, 최근에는 '적폐청산' 등 새로운 대한민국을 바라는 목소리가 더 높아지고 있다.

31일 광장에 나온 시민들도 박근혜 퇴진을 넘어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었으면 하는 소망을 밝혔다.

장만수(55·서울 강남구) 씨는 "우리가 광장에 나온 것은 정의를 위한 것"이라면서 "새해에는 정의가 실현되고 모두가 함께 잘 사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정우(17·서울 성동구) 군은 "이대 사태를 보면서 학생과제를 교수가 해주다니 말이 되는 일이냐. 허탈했다"면서 "돈이나 부모의 권력으로 사는 사람들 때문에 열심히 일하고 노력한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 것은 문제다. 상식적인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새 역사 썼다는 자부심에 촛불시민 '감동' = 이날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오후 6시 45분께 시작된 본집회에서 시민들은 지난 두 달여간 진행된 촛불집회를 돌아보는 영상을 보며 '새 역사를 썼다'는 실감을 받으며 감동스러워했다.

박 진 퇴진행동 공동대변인은 "탄핵안이 가결됐고, 강제철거당한 평화소녀상이 부산 일본대사관 앞에 다시 앉았고,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사업이 부결됐다. 삼성의 노조와해전략 문건이 사실로 밝혀져 해고된 노동자가 대법원에서 이겼다. 가습기살균제·세월호참사 관련 특별법안이 신속처리안건이 됐다"면서 촛불이 바꿔온 역사를 정리했다.

본집회에 앞서 진행된 시민자유발언대에서는 시민들이 다양한 의견을 밝혔다.

부산 영사관 앞 소녀상을 설치하려다 경찰에 연행됐던 대학생 양인우 씨는 "부산시민들이 모금해 만든 소녀상을 부산 영사관 앞에 설치하려 했더니 부산 동구청과 경찰이 통행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소녀상을 뺏어갔다"면서 "대통령은 탄핵됐지만 친일흔적은 청산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양 씨는 그러나 "우리가 어떤 국민이냐. 대통령도 탄핵시켰는데 동구청이 뺏어간 소녀상을 못 가져오겠느냐. 소녀상을 영사관 앞에 설치했다"면서 "이는 한일합의의 전면 무효의 시작이자 적폐청산 싸움의 도화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남 장흥에서 올라왔다는 이상권 씨는 자유발언대에서 "어버이연합이니 박사모, 엄마부대와는 다른 노인이 있다는 걸 알려드리려고 나왔다"면서 "대통령이면서 대통령이기를 포기한 박근혜 조기 퇴진을 위해 촛불에 참여했다"고 말해 시민들의 박수를 받았다.

저녁 9시50분쯤 본집회를 마친 시민들은 청와대, 황교안 총리 공관, 헌법재판소 방향으로 행진했다. 총리 공관으로 이동한 시민들은 '황교안도 공범'이라고 외쳤다. 청와대 방향으로 간 시민들은 '단 하루도 참을 수없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즉각퇴진과 조기탄핵을 주장했다. 11시쯤 행진을 마친 시민들은 종로 보신각으로 집결해 타종행사를 지켜보며 정유년을 맞이했다.

11차 촛불은 세월호 1000일 맞아 추모집회 = 새해에도 촛불은 계속 타오를 전망이다. 퇴진행동은 2일부터 평일 촛불집회를 재개한다고 밝혔다. 2일 저녁 7시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 퇴진 촛불문화제'가 열릴 예정이다. 오는 7일에는 세월호 참사 1000일(1월 9일)을 맞아 희생자를 추모하고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촛불문화제가 열릴 예정이다.

세월호 참사 미수습자인 허다윤 양의 엄마 박은미 씨는 "천일이 다 되도록 팽목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가족들을 기다리고 있다"면서 "세월호 배가 올라와야 가족을 찾을 수 있다. 배가 올라왔을 때 여러분들이 거기 있는 사람 먼저 찾으라고 목소리 내 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광장 시민들은 새해에도 멈추지 않겠다는 결의도 다졌다. 이혜경(54·여·서울 강서구) 씨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뜨거운 흐름 속에 함께 해서 영광스럽다"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구속되는 그 날까지 토요일은 무조건 광장에 나오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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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선 김영숙 김종필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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