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번의 개헌, 권력구조 바꾸기

2017-08-01 10:48:55 게재

합의개헌은 87년 뿐

10번의 헌법 제·개정의 역사는 권력형태의 변천사다. 내각책임제가 적용되기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대통령중심제를 중심에 두고 '장기집권' 하려는 권력자와 이를 막으려는 국민적 저항의 역사였다. 이 과정에서 무소불위 권력을 가진 대통령제가 탄생했다. 87년 개헌으로 4년 단임제와 대통령직선제를 쟁취했지만 제왕적 대통령제의 골격은 굳건하게 이어졌다. 30년 만의 개헌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통령제를 일종의 전제군주 시대의 왕권처럼 활용하려는 시도는 헌법제정부터 시작됐다. 제헌헌법이 원래 의원내각제로 설계됐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대통령제로 통치하길 원한 이승만 세력에 의해 대통령중심제로 갑자기 변경된 아픈 역사가 있다.

간선제로 정권을 차지한 이승만 대통령은 6.25전쟁 난리통을 이용해 장기집권의 야욕을 스스히 드러내기 시작한다. 1952년 1차개헌은 국회의원 감금과 국회의사당 포위 등 강압적 표결로 이뤄졌다. 양원제를 내세웠지만 실제로 단원제로 운영됐고, 이승만의 재선을 위한 개헌으로 불린다.

1954년의 2차개헌은 그 유명한 사사오입 개헌이다. 헌법 조문에는 중임제로 해 놓고 부칙으로 이승만 자신에 대해서는 중임제한을 적용받지 않는 것으로 개헌했다. 사실상 자신의 종신집권을 가능케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재적 국회의원 3분의 2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도 억지 수학적 논리를 이용해 개헌을 통과시켜 사사오입 개헌으로 불린다.

3차개헌은 4.19혁명의 성과물이다. 1960년 3월 15일 실시된 정·부통령 선거부정이 도화선이다. 이승만이 4월 26일 하야했고 12년간 이어져온 대통령제의 폐단을 막고자 내각책임제가 만들어졌다.

4차개헌은 3차개헌 5개월만에 다시 이뤄졌다. 1960년 10월 8일 3.15 부정선거 관련자들이 대부분 무죄나 가벼운 형량을 선고받자 4월혁명의 합법성과 정당성을 위한 개헌의 불가피성이 대두됐다. 부칙만을 개정해 이들을 처벌하기 위한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 반면 소급입법이라는 논란을 낳기도 했다.

1962년 5차개헌은 5.16군사쿠데타에 의한 결과물이다. 박정희 군사정권이 들어서며 다시 대통령제가 부활했다. 국회 해산상태에서 국회 의결도 없이 탄생한데다 헌법재판소도 사라졌다.

1969년 6차개헌은 박정희 대통령이 장기집권 의도를 드러낸 개헌이다. 대통령 중임제를 3선연임으로 변경하기 위해 새벽2시 야당의원 없이 날치기 표결로 처리했다.

1972년 7차개헌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근간이 돼 유신헌법으로 불린다. 박정희는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대의원제를 이용한 간선제를 택해 스스로 체육관 대통령이 됐다. 국회표결도 없이 비상국무회의를 통해 개헌안이 의결됐다. 대통령 임기는 4년에서 6년을 늘렸고 연임제한을 없애 종신집권이 가능토록 했다. 국회해산권, 긴급조치권, 계엄권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고 정당활동 금지, 언론 검열, 국회권한 비상국무회의 귀속 등 조치를 통해 무소불위 대통령이 탄생하게 됐다.

1980년 8차개헌은 전두환 정권 탄생을 위한 개헌이다. 12.12쿠데타와 5.18민주화 운동 진압을 통해 장악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개헌으로 7년 단임제로 했지만 간선제를 유지했다. 국회해산권과 더불어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가 내각 역할을 하도록 했다.

1987년 개헌은 6월민주항쟁의 산물이다. 전두환의 4.13 호헌에 반발한 시민혁명으로 대통령직선제가 만들어졌다. 유일한 여야 합의 개헌으로 불린다. 하지만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혜는 여전히 미제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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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우 기자 dolboc@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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