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덕규 변리사의 '재미있는 특허 이야기' ③

특허 받아야 말짱 도루묵

2018-01-15 12:40:00 게재
최덕규 명지특허법률 대표 변리사

지난 여름 한 포럼에서 연사로 나온 특허청 모 국장은 우리나라 특허가 부실하여 좋은 발명을 해놓고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는 예를 들어, 구글이나 페이스북 또는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지식재산으로 창립한지 10년 이내에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반면, 우리가 개발한 SNS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아일 러브 스쿨'이나 세계 최초의 MP3 플레이어를 개발한 '디지털캐스트'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하였다.

특허가 부실하다는 것은 발명을 설명한 특허명세서('명세서')가 부실하다는 것이고, 명세서가 부실하다는 것은 변리사가 명세서를 부실하게 작성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명세서가 부실하다는 것은 상당부분 인정한다. 변리사가 하는 가장 중요한 업무가 명세서 작성인데, 명세서가 부실하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변리사 책임이다. 그러나 30여년간 명세서를 작성해온 사람으로서, 부실 특허에 대한 책임을 변리사에게만 돌리기에는 석연치 않은 면이 있다.

우리나라 특허가 외국의 다른 나라에 비해 부실하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특허청의 잘못된 제도가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는 그 포럼에서 그 잘못된 제도를 아느냐고 연사에게 물었다. 하지만 연사는 대답을 하지 않고 나에게 되묻기에 내가 설명해주었다.

특허청으로부터 특허를 받게 되면, 특허권자는 해마다 특허료를 특허청에 납부해야 한다. 내가 어린 시절 특허를 받으면 국가로부터 상금도 받고 엄청난 혜택을 받는 줄 알았는데, 그 시절 내 생각은 어리석고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외국의 다른 나라들은 특허를 받으면 하나의 특허마다 동일한 특허료를 납부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하나의 특허마다 특허료를 내지 않고 청구항 수에 따라 돈을 낸다. 참으로 희한한 나라다.

특허에는 청구항이라는 것이 있는데, 하나의 특허라 하더라도 여러개의 청구항이 있을 수 있다. 하나의 발명이라 하더라도 특허침해에 대비하기 위하여 발명을 다각도로 기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하나의 특허에 하나의 청구항도 가능하지만, 보통 10개 내지 20개 정도이고 때로는 수백 개가 넘는 경우도 있다. 발명에 따라 다르지만, 다수개의 청구항으로 작성하는 것은 발명의 올바른 보호를 위해 아주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특허마다 돈을 내는 것이 아니라 청구항마다 돈을 내야 한다. 그래서 청구항 수가 많아지면 더 많은 돈을 내야 한다. 더구나 해를 거듭할수록 특허료는 더욱더 증가한다. 그래서 변리사는 많은 수의 청구항을 작성할 수 없게 되고, 그것은 부실 특허로 이어진다. 특허 받아 봐야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도루묵이 되는 것이다.

특허청은 청구항 수에 따라 특허료를 부과하는 데에서 비롯되는 폐단을 오늘날까지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특허료를 이렇게 부과하는 나라가 지구상에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일본이다. 우리 특허청은 일본 제도를 모방한 것이다.

최덕규 명지특허법률 대표 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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