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대표정책│생명 존중

벼랑끝 이웃, 주민이 돌봤더니

2018-02-02 11:18:48 게재

1년새 자살자 25명 줄어

'마음건강 실천학교' 준비

"여기도 아프다, 저기도 아프다, 암 수술을 몇번이나 했다, 처음부터 신세한탄을 많이 하시던 분이었어요. '약을 모으고 있다'고 하시더라구요. '마음은 아예 접었는데 마누라 앞가림은 해놔야겠다'고. 지금은 '딴 생각 않을 테니 염려 마라, 자주 찾지 않아도 된다'고 하세요."

서울 노원구에 사는 윤선화(53)씨. 오늘도 어김없이 상계9동 주민센터로 출근한다. 매주 한차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한달에 네번 주민센터 한켠을 지키지만 공무원은 아니다. 자살 위험군으로 꼽히는 이웃에 전화를 걸거나 집으로 찾아가 안부를 확인하는 '이웃사랑봉사단 심리상담요원'이다. 상계9동을 비롯해 노원구 전체 19개 동에는 윤선화씨같은 주민 일꾼이 적게는 2명, 많게는 4명까지 근무하면서 이웃을 돌본다.

노원구가 중앙정부도 범접하지 못하던 '생명존중' '자살예방'을 핵심 정책으로 끌어들인 건 지난 2010년. 직전 해 자살한 주민이 180명으로 서울시 25개 자치구 가운데 가장 많았다. 기초생활수급자나 장애인 노인 등 생활환경이 취약한 주민이 많은 탓인지 인구 10만명 기준 자살률은 29.3명으로 서울 평균 26.1명을 크게 웃돌았다.

'한 생명을 살리는 일은 우주를 살리는 일'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생명존중조례 제정, 생명존중팀 자살예방팀 구성 등 기반을 마련하고 지역 내 종합병원과 경찰서 복지관 등과 협력체계를 구축했다. 무엇보다 소외감이나 우울감이 생계곤란 질환과 엮여 자살로 이어진다는 조사결과를 토대로 주민이 생명존중 분위기를 확산시키고 자살예방에 앞장서도록 '이웃사랑봉사단'을 꾸렸다.

심화교육까지 받은 주민은 윤선화씨처럼 동주민센터마다 배치돼 전문가 못지 않은 상담을 진행한다. 이선경 생명존중팀장은 "구청장이 앞장서 공무원 조직과 지역사회를 이끌었던 부분이 가장 주효했다"며 "주민이 스스로 돌보도록 조직화한 점에서 다른 지자체와 차별성이 있다"고 말했다.

공동체 회복에 중점을 두고 자살시도자나 자살자 가족 등 고위험군에 대한 지원, 청소년 자살 예방을 위한 '생명사랑 치유학교', 임대아파트 경비원과 직원을 '생명지킴이'로 만드는 교육 등을 더했다. 그 덕분인지 2016년 자살자 수는 121명으로 한해 전과 비교해 25명 줄었다. 자살률은 21.4명으로 전국 평균(25.6명)은 물론 서울시 평균(23명)까지 제쳤다. 전국 지자체가 노원구처럼 주민들 마음을 보듬기 시작했는가 하면 최근에는 중앙정부가 '자살예방 국가 행동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국가 계획에는 '정신건강을 몸건강과 동일하게 챙기겠다'거나 자살시도자를 우선 접하는 응급실 중심 사후관리책 등 구에서 고민하던 내용이 대부분 포함됐다.

구는 "위기상황에 처한 주민뿐 아니라 마음건강 실천학교를 통해 우울증 등 전 단계까지 챙기겠다"며 "병원쪽과 협조해 발굴체계를 보다 강화하고 자살예방체계를 안정화시키겠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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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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