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다산에게 길을 묻다│전북 완주군 '교통복지·로컬푸드' 제8회 다산목민대상 수상

오지에 행복 실어나른 '500원 택시'

2018-02-07 10:06:16 게재

'농촌형 교통복지' 전국 확산

밥상혁명, 지역경제 30% 담당

지난달 29일 전북 완주군 삼례읍 터미널~농협 사이 택시 승강장. 인근 천일약국에서 쉬던 권영님(75) 박두례(82) 임길순(79) 할머니가 잰걸음으로 택시에 올랐다. "기사양반, 점심 다 되강게 후딱 갑시다잉." 행선지도 밝히지 않는 3인방의 재촉에 이길영(72)씨의 개인택시가 속도를 냈다. 할머니들은 이날 오전 9시에 읍내에 나와 병원, 마트를 들려 반나절 일과를 '콜택시'로 마무리 할 참이었다. 택시는 삼례~봉동을 잇는 삼봉로에 이어 전주방향 과학로로 방향을 틀었다. 15분이 채 안돼 장포마을 경로당에 도착했다. 2년 전만 해도 정류장까지 논길로 1시간을 걸어, 언제 올지도 모를 버스를 기다려야 했다. 택시요금으로 편도 1만원은 족히 넘을 거리지만 할머니 3인방이 이날 하루에 쓴 교통비는 3000원에 불과했다.

전북 완주군은 버스 등 대중교통이 연결되지 않은 마을을 선정해 택시를 운행하는 '500원 으뜸택시' 정책을 보편화 해 주목 받고 있다. 타 지자체의 선도적 사례를 꼼꼼히 점검해 시행착오를 줄이고 지역사정에 맞게 재접목해 눈길을 끈다. 사진은 으뜸택시를 이용하는 완주군 비봉면 문장마을 주민들. 사진 완주군 제공


맞춤형 교통복지 '부름부릉'= '500원 으뜸택시'는 버스가 다니지 않는 마을을 위한 완주군의 교통복지 정책이다. 2014년 11월부터 버스 승강장 거리가 500m 이상인 마을과 대중교통이 운행되지 않는 마을 중 신청을 받아 택시를 운행하고 있다. 9개 읍면, 42개 마을을 대상으로 지난해 3만4785명이 이용했다. 오전에 마을회관 등에서 함께 택시를 타고 나와 일을 마친 후 함께 귀가하는 방식이다. 주민들이 이용하는 택시는 월 1회 군에서 재정보조금을 받는다.

완주군은 또 '행복콜 버스'를 운행한다. '부르면 간다'는 뜻에서 수요응답형 교통체계로도 불린다. 지역 중심부와 멀리 떨어진 동상면 이서면 등 48개 마을에서 운행 중인데 하루 20여명이 이용한다. 여기에 장애인, 학생(통학택시) 여성 등 맞춤형 교통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부름부릉~'이라는 군 자체의 대중교통 브랜드를 출원하기도 했다.

완주군의 수요응답형 시스템은 기존 교통체계의 재편과 어울린 과정이란 점에서 더 눈길을 끈다. 군은 맞춤형 교통복지를 기존 시내버스운행 체계 수정과 동시에 진행했다. 운주면 대둔산과 고당리 피묵마을 주민들은 전주까지 왕복 시내버스 요금 1만4200원을 지불해야 했다. 지난 2015년 2월 노선을 재조정하고 개편해 1200원(현재 1300원)으로 단일화 했다. 이런 노력이 더해져 '정부 3.0 경진대회 우수사례'로 뽑혔다. 지난해엔 국토교통부의 대중교통 시책평가에서 최우수기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완주군에 앞서 '100원 택시' 등을 선보인 지자체는 여러 곳이다. 선도사례를 지역사정에 맞게 접목할 줄 아는 것도 '유능한 행정'의 한 요소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로컬푸드 1번지' 만든 퍼스트 펭귄 = 완주 비봉면 내월리 방곡마을에서 20년 넘게 버섯을 재배하고 있는 유한식(65)씨. 29일 오후 공공급식지원센터로 보낼 느타리버섯을 따느라 여념이 없다. 유씨는 로컬푸드 자체의 안전성 기준을 맞춘 버섯을 급식센터에 보낸다. 납품단가가 연중 일정하기 때문에 가격 폭락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요즘 같아선 도매가의 거의 두배에 가까운 단가를 받는다. '학생들 먹거리를 책임진다'는 자부심은 덤이다.

'로컬푸드 1번지'는 완주군의 별칭이나 다름없다. '신토불이'로 불리던 우리농산물 애용 캠페인을 농업·농촌의 재구조화 과정으로 끌어올린 변화의 다른 말로 통한다. 적어도 이 분야에서 완주는 기존 관성에 머물거나 주저하지 않고 얼음 물 속에 뛰어든 퍼스트 펭귄이다.

완주 로컬푸드 매장은 농산물 직판장 수준을 뛰어넘어 농촌과 도시를 연결하는 커뮤니티의 상징으로 성장했다. 복지의 단순수혜자에 머물렀던 농촌노인들은 두레농장의 일원으로 학교급식과 도시민 먹거리를 책임지는 생산자가 됐다. 장애인 일자리를 만드는 매개체가 되고, 도시민의 귀농귀촌을 돕는 매력요소다. '행정의 지원 없이도 가능할까'라는 의구심을 적어도 절반은 해소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2014년 4개였던 직매장은 12개로 늘어났다. 협동조합을 구성해 독립하고 지역농협이 운영하는 매장이 4개다. 매장이 늘면서 고객과 농민의 소득이 함께 증가했다. 2015년 457억원이던 관련 매출이 지난해 580억원으로 신장했고, 올해 600억원을 넘을 것으로 전망한다. 2500여 농가가 농산물을 납품하고 매달 월급을 받고, 10만여명이 고객으로 매장을 찾게 된다. 완주군내 89개 초중고의 학교급식은 물론 지난해 5월부터는 서울 강동구의 어린이집의 식재료를 책임지고 있다.

올해는 로컬푸드에 적용했던 전략을 각 부문으로 확대하는 '소셜굿즈' 플랜을 준비하고 있다. 주민들의 다양한 커뮤니티와 공동체를 사회적경제의 기반으로 확대하는 시도다. 2025년까지 300개의 자립형 사회적경제 조직을 육성해 5000개의 일자리를 만드는 플랜이다. 완주군 생산경제의 30%를 사회적 경제로 충당한다는 야심한 계획이다. 완주군은 로컬푸드 정책을 본격화 한 후 10년이 안돼 지역경제 먹거리시장의 30%를 충당하고 있다. '소셜 굿즈'가 계획서 안에서만 머물 정책이 아니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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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환 기자 m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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