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다산에게 길을 묻다│충북 증평군 '증가포르 정책' 제9회 다산목민대상 수상

증가포르의 꿈, 도서관에서 답을 찾다

2018-02-14 09:32:29 게재

때론 천문대로, 때론 영화관·공연장·카페로

개관 4년 만에 100만명 찾은 복합 문화공간

"오늘은 아이들 손잡고 나들이 삼아 책을 보러 왔어요. 이왕 나온 김에 차도 마시고, 민속박물관 구경도 해야죠. 아이들 책 읽는 동안 엄마들은 카페에 모여 이런저런 세상 돌아가는 얘기 나누며 수다도 떨어요. 지난겨울 아이들과 함께 본 마술 공연은 특히 기억에 남아요."

증평군립도서관 1층 유아자료실은 부모 손을 잡고 온 아이들로 늘 붐빈다. 증평군립도서관은 농촌의 작은 도시 증평에서 부족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사진 증평군 제공


3년 전 군인인 남편을 따라 충북 증평으로 이사 온 김태진(34)씨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도서관 자랑을 늘어놓는다. 서울에서 이사 올 당시에만 해도 '시골 동네'에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앞이 막막했다. 초등학교 4학년과 2학년, 그리고 7살 세 자녀를 두고 있어 교육 문제가 제일 걱정이었다.

이런 김씨에게 증평군립도서관은 큰 위안이 됐다. 우선 아이들이 책을 읽기에 최적화된 환경이 마음에 들었다. 뿐만 아니라 도서관에서 연극이나 다양한 공연도 볼 수 있어 더 만족스러웠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김씨 자신도 도서관에서 하는 평생학습프로그램에 참가해 닥종이 공예와 자수, 캘리그래피를 배웠다.

실제 일요일인 11일 오후에는 엄마·아빠의 손을 잡은 어린 아이들이 도서관에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3시부터 상영하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기 위해서다. 책도 보고 영화도 볼 수 있으니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는 주말 나들이코스로 안성맞춤이다. 증평군립도서관이 아이들 영화만 상영하는 건 아니다. 한 달에 한 번씩 최신 성인 영화도 선보인다. 오는 24일에는 '신과 함께'를 상영한다. 지난해 9월에는 '택시운전사'도 상영했다. 도서관 3층에 마련한 다목적홀 덕분에 가능해진 일이다. 최신 영사기와 음향설비를 갖춰 시중 극장 부럽지 않은 조건을 갖췄다. 증평군립도서관은 영화 상영을 실내에서만 하는 게 아니다. 여름철에는 옥상에 마련된 야외극장에서 '별빛 영화관'도 운영한다.

도서관, 농촌형 복합문화공간이 되다 = 증평군립도서관은 다목적이다. 기본 콘셉트도 '시끄러운 도서관'이다. 형태도, 활용방식도 대도시의 여느 도서관과는 사뭇 다르다. 2014년 4월 1일, 증평이라는 지명이 생긴지 100년이 되는 해를 기념해 개관했다.

증평군립도서관은 설계에서부터 특별했다. 홍성열 군수와 공무원들이 함께 국내 유명 도서관은 물론 유럽의 이름 있는 도서관들을 찾아다니며 장점들을 끌어 모아 설계했다. 그래서 다른 도서관에서 좋다는 것들은 대부분 이곳에 모여 있다. 우선 친환경이다. 유리창은 바둑판 모양의 태양광 모듈이 붙어 있다. 옥상에도 태양광 발전시설이 설치돼 있다. 옥상은 야외 정원 못지않은 녹지로 꾸며졌다. 들어서는 입구도 여느 도서관과는 다르다. 자동차 모형의 책꽂이로 만들어진 '책책빵빵 자동차'가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 책꽂이는 필요 없는 책을 가져다 두고 또 보고 싶은 책을 가져갈 수 있는 '책 나누기'용으로 설치했다.

1층 어린이 자료실은 아이들의 꿈에 그리던 동화나라처럼 꾸몄다. 우주선 나무집 동굴이 있고, 반달형 무대와 노랑·연두·파당의 형형색색 책장들이 잘 어우러져 이다. 옆에 붙어 있는 유아 자료실은 세계 여러 나라를 표시한 지도와 국기는 물론 다문화 도서와 세계 각국 인형들이 전시돼 있다. 농촌에 결혼이민 가정이 늘어나고 있어 더 인기 있는 장소다.

도서관 3층에 마련된 5개의 평생학습실에서는 지난해에만 7630명이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해 취미생활을 즐겼다. 옥상에는 천문대도 마련해 놓았다. 증평 천문대에서 한 달에 한 번 도서관으로 천체망원경을 가져다 놓는다. 산꼭대기 천문대까지 가지 않아도 도심 한 가운데서 별을 구경할 수 있다. 1박 2일 도서관, 아고라 북페스티벌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개관 4년 만에 '따라 배우는' 도서관 = 개관 4년이 채 안된 이 도서관의 누적 이용객은 이미 100만명을 넘어섰다. 하루 평균 이용객은 725명이 넘는다. 증평군 인구가 3만7000여명이니 개관 이후 한 사람당 26회 이상 방문한 셈이다. 회원으로 가입한 사람은 군민의 22%에 해당하는 8300여명이다. 대출 도서는 1월말 현재 13만4000권으로 집계됐다.

이만하면 전국 어느 도시, 어떤 도서관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을 만큼 활력이 넘친다고 볼 수 있다. 다른 지자체와 주민들도 따라 배우고 있다. 최근 경북 봉화군수와 공무원들이 도서관을 공부하러 다녀갔다. 개관한지 4년이 채 안됐지만 다녀간 기관·단체만 60개, 500여명에 이른다.

'증가포르 꿈 실현'에 주파수 맞춰 = 증평군은 2003년 출범한 가장 나이 어린 지자체다. 규모도 작다. 전국 82개 군 중에서 울릉군 다음으로 면적이 작다. 행정체제도 단순하다. 1읍, 1면이 전부다. 농어촌 지자체마다 지역소멸이 화두다. 하지만 증평은 이런 걱정은 없다. 바로 도서관에서 답을 찾았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학습과 문화'에서 답을 찾은 것이다.

증평군은 증가포르를 꿈꾼다. 증가포르는 증평과 싱가포르를 붙여 만든 합성어다. 홍성열 증평군수는 "증평은 작은 도시국가이지만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싱가포르와 닮았다"며 "증평도 작지만 강한 도시로 성장해, 증가포르가 되겠다는 꿈을 실현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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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일 윤여운 기자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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