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다산에게 길을 묻다│대구 중구 '근대문화골목사업' 제3회 다산목민대상 수상

도심 속 숨겨진 역사문화 소환한 '골목투어'

2018-02-21 10:07:26 게재

근대문화길·김광석길 연간 200만명 다녀가

대구를 관광도시로 … 도심재생 모범 창출

"도시 전체가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할 만큼 골목길 곳곳에 유서 깊은 역사문화 유산들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방치된 채 있었습니다. 우리는 시간의 켜를 간직한 오래된 것들이 품고 있는 특별하고도 의미 있는 이야기와 가능성을 세상 밖으로 드러낼 계획을 세웠습니다."

대구 중구의 근대골목 사업은 대구를 연간 200만명이 찾는 관광도시로 바꿔놓았다. 대구 최고의 명소가 된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사 진 대구중구 제공


대구 중구는 2006년 7월 윤순영 청장 취임과 함께 남들이 소홀히 여기던 골목길 근대문화유산을 바탕으로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도심 속 숨겨진 역사문화를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소환해보자는, 어쩌면 무모해 보이는 시도였다. 서울의 명동처럼 대구의 상징 거리이기도 한 동성로에 공공디자인 개념을 반영하는 사업을 시작으로 대구읍성 상징거리, 청라언덕과 3.1만세길,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남산 100년 향수길, 순종황제 어가길 등 12년을 흔들림 없이 한 길을 걸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중구가 시도한 도심재생사업은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들어냈다. 이제 대구 중구의 도심재생사업은 한해 방문객이 200만명을 넘어선, 한국 관광의 별이 됐다.

시선 닫는 곳마다 그림 같은 풍경 = 지금의 동성로는 보행자들의 천국이다. 서·남·북성로와 함께 옛 대구읍성 터 동쪽 성벽에 조성된 거리다. 역사가 있고, 상가가 있고, 축제와 문화·예술이 살아 있는, 그래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하지만 불과 10여년 전에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공공디자인 개선사업이 시행되기 전 동성로는 무질서한 간판, 색깔 없는 가로시설물, 한전 배전박스, 노점상 등이 뒤엉킨 엉망진창 거리였다. 자칫 불이라도 나면 속절없이 도시를 몽땅 태워버려야 했을, 생각만 해도 아찔한 곳이었다.

대구 중구의 근대골목 사업은 대구를 연간 200만명이 찾는 관광도시로 바꿔놓았다. 사진은 3.1만세운동길 90계단과 이상화고택이다. 사진 대구중구 제공


중구는 2007년 이곳에서 공공디자인 개선사업을 시작했다. 그해 5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3년 6개월에 걸친 고단한 사업이었다. 한전 배전반을 지중화하고 노점상을 철거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특히 노점 철거는 거센 저항에 부닥치면서 전국적 이슈가 됐다. 대부분 사람들이 실패할 거라 말할 정도로 앞이 캄캄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노점상들을 기업형과 생계형으로 분리해내고, 생계형 노점상들의 대체영업 장소를 확보해 구제하는 대안을 찾아낸 덕에 3년여에 걸친 긴 싸움이 마무리됐다. 간판과 전선이 말끔하게 정비되고 노점이 있던 자리에 벤치와 나무가 자리했다. 거리 곳곳에 대구읍성의 이미지를 재현하는 상징물들이 들어섰다. 골목은 서로 연속적인 공간으로 이어졌고, 군데군데 작은 공연장들이 생기면서 문화와 예술이 어우러졌다.

동성로 문제가 해결되면서 중구의 도심재생 사업에 속도가 붙었다. 이어 시작한 것이 근대문화공간 디자인 개선사업이다. 골목 하나하나마다 숨어 있는 이야기를 발굴하고, 담장을 없애고, 벽화와 시설물을 설치했다. 지금의 '근대문화골목'이 이렇게 만들어졌다.

골목마다 역사 품은 이야기가 술술 = 대구의 근대골목은 근대 100년을 오롯이 느껴볼 수 있는 각종 유적들이 즐비하다. 청라언덕은 우리나라 최초의 가곡인 '동무생각'(박태준 작곡)의 배경이 된 곳으로, 100년 전 개신교 유적인 선교사 주택들이 온전히 보존돼 있다. 대구 3.8만세운동을 지켜보았던 90계단, 대구 천주교 역사의 산실인 계산동성당,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쓴 민족저항시인 이상화 고택과 국채보상운동을 이끈 서상돈 고택도 있다. 그 곁에 있는 뽕나무 골목은 임진왜란까지 거슬러 올라가 명나라 장수 두사충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또 그 곁에는 한양으로 가던 길목인 영남대로길이 있고, 대구 최초의 양옥건물인 정소아과로 이어진다. 중구는 이 유적들에 이야기를 입혀 촘촘하게 엮었고, 주변도 근대골목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정비했다. 이러기를 다시 4년, 근대골목은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한국관광의 별', 즉 대한민국의 대표 관광명소가 됐다. 2013년에는 근대공원 상상정원, 도심순환용 청라버스 운영, 대구야행 등이 더해지면서 근대역사자산의 보존과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눈부신 성과를 냈다. 이후 봉산문화거리 디자인 개선사업과 종로·진골목 환경개선 사업이 잇따라 진행됐다. 중구 어디를 가든 걷고 싶은 골목, 이야기가 배어 있는 골목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김명주 도시재생과장은 "12년을 한눈팔지 않고 한 길을 달려온 성과가 낡고 병든 구도심의 새로운 활력소가 됐다"고 평가했다.

김광석이 살던 마을, 대구 최고 명소로 =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은 중구 디자인 개선사업의 백미다. 이 길이 조성된 계기는 2011년 세계육상대회였다. 대회를 앞두고 마라톤 코스에 포함된 방천시장의 어두컴컴한 외관을 개선하려던 차에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고 김광석을 생각해냈다. 시장 바깥쪽 350m 방천길 벽면에 2009년부터 2013년까지 3단계에 걸쳐 김광석의 음악과 삶을 소재로 한 벽화를 그렸다. 이후 야외 콘서트홀과 골목방송국이 들어섰고, 김광석스토리하우스도 문을 열었다. 때마침 김광석의 노래와 삶이 재조명되면서 이를 소재로 한 공연과 축제가 펼쳐졌다. 2013년 4만3000명이던 방문객이 2016년에는 100만명을 넘어섰다. 지금은 대구 중구를 찾는 방문객 200만명 중 대부분이 이곳을 거쳐 간다. 2015년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2015·2017년 한국관광 100선에 연속으로 선정됐다. 김인근 김광석스토리하우스 관장은 "김광석의 삶과 노래를 담은 스토리하우스가 생기면서 관광객들이 느꼈을 부족한 2%를 채우게 됐다"며 "김광석길은 그 자체로 완벽한 관광상품이 됐다"고 말했다.

이렇게 정점에 다다른 근대골목 사업은 대구읍성 상징거리 조성, 순종황제 어가길 조성, 남산 100년 향수길 조성으로 이어졌고, 기존 골목길에도 야간경관이 더해지는 등 하루하루 발전해가고 있다. 근대골목, 대구근대골목, 근대로의 여행, 김광석다시그리기길, 골목투어 등은 대구 중구 이름으로 특허로 등록돼 있다.

김광석길 운영위원장을 지낸 신범식 중구의회 부의장은 "부동산 가격이 오른다는 것은 그만큼 도시 가치가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중구가 모처럼 옛 명성을 되찾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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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김신일 최세호 기자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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