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덕규 변리사의 특허 이야기 ⑧

잡음 많은 '대학 발명'

2018-03-26 10:38:06 게재
최덕규 명지특허법률 대표 변리사

최근 서울행정법원은 고려대 산학협력단('협력단')과 이 대학 A 교수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을 상대로 낸 연구비 환수 등에 관한 처분의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사건의 요지는 과기정통부로부터 국가연구개발 업무를 대행하도록 지정된 한국연구재단('재단')과 협력단이 A 교수를 연구책임자로 하는 연구과제협약을 맺었는데, 재단은 연구목표 달성이 미흡하다고 평가하여 연구비 일부를 환수하고 3년간 A 교수의 연구 참여를 제한한다는 처분을 내리자, 협력단측이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협력단측은 "논문 게재 횟수 등 정량적 기준만을 근거로 과제 결과를 판단한 것은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재단이 실질적인 정성적 평가는 도외시한 채 논문 게재와 특허출원 횟수 부족이라는 정량적 평가에만 근거해 이뤄졌다"며 "연구계획서에 쓰인 논문 게재, 특허출원 횟수 목표를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지원한 연구비를 환수하고 향후 사업 참여를 제한해서는 안된다"고 판단했다. 협력단은 연구기간 동안 국외논문 3건과 국내논문 3건 게재, 국외특허 2건 출원 등을 목표로 내건 연구계획서를 재단측에 제출했는데 이를 완성하지 못함으로써 모든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이 일련의 사건에서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국외특허 2건을 출원하겠다는 협력단측의 무모한 연구계획서이다. 물론 계획과 목표를 세우고 연구과제를 수행할 수는 있지만, 연구결과가 반드시 특허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연구과제의 결과물은 특허를 받을 수 있는 기술일 수도 있지만, 특허대상이 될 수 없는 과학적 또는 수학적 원리, 알고리즘, 오프라인 상에서의 영업방법, 자연법칙 같은 것들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또한 비밀로 유지해야 할 가치가 있는 영업비밀은 굳이 특허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연구 결과물에는 학문적 또는 이론적 가치를 갖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며, 특허는 그런 학문적 또는 이론적 가치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연구결과와 관련하여 고려해야 할 특허 요건은 그런 가치가 아니라 실용성(utility)이다. 아무리 학문적으로 뛰어난 아이디어라 하더라고 실용적 가치가 없으면 특허받을 수 없다. 그래서 특허받을 수 있는 것은 아이디어 자체가 아니라 아이디어가 구체적으로 구현된 창작물이라 한다.

연구과제의 결과물로부터 특허를 출원할 것인지의 여부는 결과물에 대한 실용성의 관점에서 판단하는 것이지 계획이나 목표를 세운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그 계획이나 목표도 무모한 짓이지만, 그것의 달성여부를 평가기준으로 삼는 것은 더 무모한 짓이다. 그것은 마치 갓 임신한 임신부에게 아들을 낳으라든가 아니면 쌍둥이를 낳으라든가 하는 주문과 같은 것이며,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아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 대학들은 공과대학 교수를 중심으로 연구진에 의하여 개발된 발명을 특허로 출원하고 특허받은 기술을 라이센스하는 산학협력단이라는 조직을 대부분 두고 있다. 소위 대학 발명을 관리하고 실시토록 하여 수입(로열티)를 창출하는 것이다. 선진 외국의 유명 공과대학들은 그들의 대학 발명에 대한 수입 순으로 대체로 우열 순위가 결정된다. 그런데 우리의 대학들은 특허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무모한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에 따라 무모한 특허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그러한 특허들은 로열티와는 거리가 먼 '특허를 위한 특허(paper patent)'가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최덕규 명지특허법률 대표 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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