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덕규 변리사의 특허 이야기 ⑨

상표 몽니 부리기

2018-04-09 10:55:15 게재
최덕규 명지특허법률 대표 변리사

#1 올해 데뷔 20주년을 맞은 그룹 신화는 3년여 동안 이름 없이 살았다. 2012년에 전 소속사를 상대로 팀명인 신화의 상표권 양도 소송을 낸 뒤 법원의 조정으로 2015년 5월 이름을 돌려받기까지 신화라는 이름을 쓸 수 없었다. 그룹 티아라의 멤버 은정과 지연 효민 큐리는 전 소속사와 팀명에 대한 권리를 두고 갈등을 빚고 있다. 전 소속사가 특허청에 '티아라 T-ARA'의 상표권을 출원하자, 네 멤버는 '전 소속사의 상표 등록이 거절돼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정보제출서를 냈다. 전 소속사의 상표권 취득을 막아 전 소속사와 향후 팀명 사용에 대한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움직임이다. 8년 동안 그룹 비스트로 활동하던 윤두준과 용준형 양요섭 이기광 손동운은 전 소속사와의 갈등으로 팀명을 하이라이트로 바꿔 활동하고 있다.

이처럼 전 소속사를 떠난 멤버들이 전 소속사에서 사용하던 그룹 이름을 계속해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전 소속사에서 이미 상표권을 취득했기 때문이다. 상표권을 취득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미 소속사를 떠난 멤버들에게 그룹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과연 정당한 일일까. 이미 멤버들이 떠났는데 상표권을 쥐고 있다고 해서 기획사에게 어떤 이득이 있을까. 죽은 자식 뭐 만지고 있는 격은 아닐까. 그룹이 성장하기까지 기획사가 한 노력과 투자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계약이 만료된 상황에서 기획사가 아무런 이익이 되지 않는 상표를 쥐고 있는 것은 기획사의 몽니로 밖에 볼 수 없을 것 같다.

#2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많은 나라에서 상표를 취득하고자 할 때, 서로 유사한 상표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다. 어떤 상표를 출원했는데 이와 유사한 상표가 이미 등록되어 있어서 등록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 경우 출원인은 선등록권자로부터 사용동의서를 받아 해당 특허청에 제출하여 등록을 받기도 한다. 특허청은 두 상표가 유사하다고 보았지만, 선등록권자가 보기에 상품이나 업종이 서로 다르다고 판단되면 흔쾌히 사용동의를 허락하여 등록받을 수 있도록 하는 공존상생의 아주 좋은 관습이자 제도라 할 수 있다. 다양한 상품으로 인해 많은 상표를 필요로 하는 글로벌 기업간에는 사용동의서가 필요한 경우가 흔히 발생하는데, 이 경우 대개는 큰 문제없이 동의서를 받아 잘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국내기업들로부터는 이 동의서를 받기가 무척 어렵다. 필자의 30년 경력동안 국내기업으로부터 흔쾌히 동의서를 받은 경우는 단 한 건에 불과하다. 반면 외국기업으로부터 동의서를 받은 경우는 여러번 있었다. 자기의 상품이나 업종과 관련이 없으면 사용동의를 해주어도 전혀 문제가 없는데, 남이 잘되는 꼴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몽니를 부리는 것이다. 심지어는 금품과 같은 대가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3 그런데 이러한 사용동의서에 관한 얘기는 우리나라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용동의서가 통용되지 않는다. 등록받아 사용해도 좋다는 동의서를 선등록권자로부터 받아 특허청에 제출했는데도, 우리나라 특허청은 등록을 인정해주지 않는다. 그 이유는 혹시 일반 공중이 두 상표를 혼동하여 불이익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공중의 이익을 보호해야한다는 특허청의 사려깊은(?) 판단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가장 큰 이해당사자는 바로 그 선등록권자다. 그러한 자가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는데 특허청은 안된다는 것이다. 특허청의 큰 몽니가 제거될 때 작은 몽니들도 자연스레 제거될 것이다.

최덕규 명지특허법률 대표 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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