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위기 '서든스톱(신흥국서 대규모 자금 유출)' 촉발 우려

2018-05-10 10:58:17 게재

아르헨티나가 페소화 가치 급락 등 외환위기 조짐이 보이자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 협상을 벌이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상황이 악화되면 전 세계 신흥국에 유동성 고갈 악재가 터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터키 리라화 조짐도 예사롭지 않다.

현재 아르헨티나의 상황은 약 1년 전과 정반대다. 지난해 6월 아르헨티나는 10년 만기 국채를 발행했다. 사려는 사람이 넘쳐났다. 수익에 목마른 선진국 투자기관들이 7%대 이자쿠폰을 지급한다는 아르헨티나 100년 만기 국채에 돈을 쏟아부었다.

미국 CNBC방송의 2017년 6월 20일 보도에 따르면 당시 아르헨티나 정부는 달러화 표시 100년 만기 국채 27억5000만달러어치를 팔았다. 2016년 디폴트 위기에서 벗어난 지 1년 만의 일이다.

해당 국채에 대한 주문은 97억5000만달러나 됐다. 연기금 등이 안정적인 장기 수익을 보고 들어가는 낮은 이율의 국채시장에서 아르헨티나가 7.9%에 이르는 높은 금리를 제공하자 투자자들은 반색하며 관심을 보였기 때문이다.

지난해 페소화 가치가 예상보다 강했다. 이 덕분에 아르헨티나 정부는 2017년 채권 발행액 목표를 당초 100억달러에서 127억5000만달러로 상향했다.

당시 루이스 카푸토 재무장관은 "올해말(2017년말)까지 약 26억달러에 이르는 국채를 추가 발행할 것"이라며 "유로화나 엔화, 스위스프랑화로 발행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면서"국채 발행이 성공적으로 이뤄진 건 우리나라 경제상황에 대한 투자자의 신뢰와 자신감을 반영한 것"이라고 자평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유럽의 투자자와 중남미 국가들 사이에서 그같은 거래는 늘 일어났고, 거의 매번 결과가 좋지 않았다. 투자자나 신흥국 모두 그런 교훈을 깊이 새기지 않았다.

이제 의문점은 누가 100년 만기 국채에 발이 묶여 있느냐는 것이다. 국채 값은 하락하고 있으며, 조만간 디폴트 상황을 맞게 될 가능성이 높다. CNBC 기사에 언급된 것처럼 미국과 유럽의 연기금들이 아르헨티나 국채를 대거 사들인 상황이다. 선진국 연기금들에 불똥이 튈 수 있다. 또 차입금으로 아르헨티나 국채를 대거 사들인 헤지펀드들도 좌불안석이다.

주변부 위기가 핵심으로 전파되는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경제학자이자 펀드매니저로 지난해 '연준의 덫으로부터 탈주하라' 등의 저서를 쓴 대니얼 라칼은 자신의 블로그에 "최근 아르헨티나 페소화나 기타 신흥국 통화의 가치급락은 경고음 이상의 위기를 부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른바 '서든스톱'(sudden stop, 급정거)의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것. 서든스톱은 선진국의 통화긴축 등으로 신흥국에 유입되는 자본이 급감하거나 신흥국에서 대규모로 자본이 유출돼 경제위기로 이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10여년 간 연준의 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으로 촉발된 '캐리트레이드'로 신흥국 시장의 성장세에 몰빵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인플레이션과 연계된 자산거품도 대규모로 거래됐다. 글로벌 경제 둔화세에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연준 자산축소 등이 더해지면서 신흥국은 자금 유입이 줄어들고 대규모 자금이탈 상황을 겪고 있다.

게다가 자금이 풍부했던 시기 신흥국들은 기초체력을 기르는 데 자금을 이용하기보다 거품을 키우는 데 몰두했다. 이는 재정상황의 악화를 가져왔다. 아르헨티나 페소화는 연 기준으로 20% 가까이 가치를 잃었다. 올해 전 세계에서 가장 가치를 잃은 통화 중 하나다. 터키 리라화나 러시아 루블화도 상황이 안 좋긴 마찬가지다.

이런 가치 급락상황은 어떻게 설명하나.

그동안 연준발 서든스톱에 대한 수많은 경고가 있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는 이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라칼은 "아르헨티나 정부는 GDP의 20%에 가까운 재정상 구멍이 났다. 인플레이션도 치솟았다"며 "이는 구조적 재정불균형을 가리기 위해 매년 30~35%씩 통화량 공급을 늘린 탓"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막대한 양의 국채를 발행하고 중앙은행 통화량 공급을 늘려 공공지출을 지원했지만 긴급한 개혁과제는 방치됐다"며 "많은 중남미 국가들, 전 세계 신흥국들은 또 다시 연준의 덫에 걸렸다. 이제 연준이 방향전환을 가속화하는 상황에서 달러의 강세는 이어질 전망이다. 이는 치명적 위기를 낳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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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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