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 100년전 그날, 현장을 가다-앨버트 테일러 가옥 '딜쿠샤'

독립선언문 발견해 3.1운동 세계에 알리다

2019-01-16 11:24:16 게재

AP통신 기자 테일러 가족 20년간 거주

5.18에 위르겐 힌츠페터가 있다면 3.1운동엔 앨버트 테일러가 있다.

위르겐 힌츠페터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현장취재를 통해 광주의 참상을 해외에 알린 외신 기자다. 2017년 개봉한 영화 택시운전사를 통해 많은 한국인들에게 알려졌다.

미국인 앨버트 테일러는 3.1독립운동을 세계에 알린 사람이다. 광산업자인 아버지를 따라 1897년 한국에 이주한 테일러는 금광사업이 본업이었지만 1904년 러일전쟁을 계기로 AP통신이 특파원으로 위촉하면서 기자 활동을 겸했다.

◆ 3.1운동 알린 댓가, 투옥·가택연금 = 앨버트 테일러가 3.1운동을 세계에 알린 것은 극적인 계기를 통해서였다. 1919년 그의 아내 메리 테일러는 출산을 위해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고종 황제 장례식 준비를 취재한 뒤 출산한 아내를 만나기 위해 병원에 달려온 앨버트 테일러는 갓 태어난 아이를 안아 올렸다. 그 순간 침대보 밑에서 종이 한장이 발견됐다. 간호사가 숨겨둔 독립선언문이었다. 독립선언문은 세브란스병원 인쇄기로 인쇄됐다. 일제 경찰이 독립선언문을 압수하기 위해 병원을 수색하자 외국인 병실은 안전할 것이라 판단한 간호사가 기지를 발휘, 메리 테일러 침대 밑에 숨겨둔 것이다.

선언문을 입수한 테일러는 3.1독립운동이라는 특종을 동생인 빌 테일러를 통해 AP통신 일본 도쿄 지국으로 보냈고 전 세계로 소식이 타전됐다.

테일러의 활동은 3.1운동 소개에 그치지 않았다. 3.1운동 당시 제암리 학살사건을 접한 테일러는 이 소식을 해외에 알린 것은 물론 일제의 만행에 크게 분노했다. 언더우드 목사, 커티스 부총영사 등과 함께 하세가와 요시미치 당시 총감을 찾아가 강력 항의한 뒤 양민학살 중단을 요구했다.

테일러의 한국 사랑은 각별했다. 한국에서의 취재 활동 때문에 가택연금과 투옥까지 됐던 테일러는 2차대전 발발 후 불편해진 미-일 관계에 따라 1942년 미국으로 강제 추방됐다.

캘리포니아 이주 후에도 한국을 그리워하던 테일러는 미군정 통역사를 자원하는 등 한국행에 애썼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48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테일러의 한국과 인연은 이것이 끝이 아니다. 테일러는 한국에 있는 아버지 묘소 곁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의 아내 메리는 남편의 유골을 들고 그해 10월 한국을 방문했고 테일러를 그의 아버지 조지 테일러가 묻혀 있는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원에 안장했다.

1929년 딜쿠샤 모습 사진 서울시 제공


◆"유골, 한국 땅 묻어달라" = 딜쿠샤는 앨버트 테일러가 1923년 건축한 건물이다. 테일러 부부가 신혼여행을 다녀왔던 인도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것으로 알려졌다. 딜쿠샤란 이름은 힌두어로 '희망의 궁전' 혹은 '이상향' 이란 뜻을 갖고 있다. 종로구 행촌동 1-88에 위치해 있으며 영국-미국 양식이 결합된 전형적 서양근대가옥 형태를 띠고 있다.

2006년 정부와 서울시는 독립운동 유적지이자 근대문화 유산인 딜쿠샤 보존 작업에 착수했다. 당시 딜쿠샤는 동네 흉물이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귀신이 사는 집이라 불리웠고 12가구가 무단으로 점유해 살고 있었다.

현재의 딜쿠샤 (복원공사 이전) 사진 서울시 제공


지지부진했던 딜쿠샤 복원 사업이 본격화된 것은 그로부터 9년이 지난 2015년이다. 서울시와 기재부, 문화재청, 종로구, 서울주택도시공사가 모두 달려들었다. 무단점유자들을 설득하고 이주 대책을 함께 세워주는 등 평화적 해결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딜쿠샤에 짐만 옮겨 놓고 행방이 묘연한 입주자도 있었다. 당시 딜쿠샤 거주자들 이주를 위해 동분서주했던 시 관계자는 "거주자가 살 집을 구하기 위해 서울 곳곳을 함께 돌아다니고 주택자금 마련을 위해 여러 기관과 머리를 맞댔다"고 회고했다.

2018년 7월 28일 마침내 마지막 거주자가 이주하면서 딜쿠샤 복원 공사가 시작될 수 있었다. 2016년 7월 첫 이주를 시작한 뒤 2년, 2006년 복원 논의가 시작된 지 10년 만이었다.

딜쿠샤 복원은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서울시가 진행 중인 역사유적 복원 사업이다. 1923년 지어진 낡은 건물인데다 무단점유 상태가 오래되면서 원형 복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와 문화재청은 딜쿠샤를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복원할 계획이다. 테일러 부부의 유품은 딜쿠샤의 옛 모습 복원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유족은 1026점의 자료를 기증했다.

시는 3.1절 100주년을 맞아 공사 중인 딜쿠샤를 시민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딜쿠샤와 호박 목걸이' 전시가 진행 중이다.

[신년기획] 100년 전 그날, 현장을 가다 연재기사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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