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5주년 특별기획-국책연구기관장에게 듣는다│이재영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

"미·중 통상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삼아야"

2019-05-14 10:54:29 게재

수출타격 불가피하지만 중국시장 확대 계기될 수 있어

신남방·신북방 외연확대 성과, '신기술협력체계' 구축해야

8월말 'DMZ 평화경제 국제포럼' … 대미공공외교도 강화

"한국은 항상 위기를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온 국가입니다. 현재의 글로벌 상황변화, 그리고 미·중 통상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사진 이의종

이재영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은 내일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급변하는 대외여건 변화와 미·중 통상갈등에 대한 한국의 대응전략을 설명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미국과 중국은 9~10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고위급 무역협상을 벌였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고, 서로 상대방 제품에 대한 관세를 높이기로 하는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이 원장은 미·중 협상이 최종 결렬돼도, 반대로 타결돼도 우리나라 수출에는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우리에겐 기회요인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협상이 결렬되면 시장 불안정성이 커지고 수출이 악화되겠지만 중국을 대신해 대미수출을 확대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 또 협상이 타결되면 미국산 수입이 늘면서 우리나라의 대중국 수출 타격이 불가피하지만 중국 시장개방 확대와 투명성 제고로 중국의 새로운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릴 것이란 설명이다.

이 원장은 한양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모스크바국립대학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았다. 한양대 아태지역연구센터 교수, 미국 하버드대학과 영국 옥스퍼드대학 등 세계 유수 대학에서 방문학자를 역임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유럽팀장, 연구조정실장, 구미유라시아본부장 등을 거쳐 지난해 4월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으로 임명됐다. 인터뷰는 10일 내일신문사에서 진행됐다.

■ 문재인정부 출범 2년이 지났는데 대외경제정책 분야의 성과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한반도 신경제 구상, 동북아책임공동체, 통상 분야 확대 등의 차원에서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 특히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강화, 미·중 패권 경쟁 등 어려운 대외여건 속에서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북방 및 남방지역 국가들과의 교류를 넓혀왔다. 지난달에도 문재인 대통령이 중앙아시아 3개국을 다녀오지 않았나. 정부가 추진하는 신북방정책의 대상국으로 주로 러시아만 생각하는데 이번에 중앙아시아를 방문해 외연을 넓히고 기존의 관계를 심화하는데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1990년대 초 구 소련이 붕괴한 이후 독립한 나라들로 1세대 지도자들이 물러나고 새로운 리더십이 등장하고 있다. 이런 시기에 문 대통령이 직접 방문해 외교관계를 정비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경제적으로 보면 이번에 문 대통령이 방문한 투르크메니스탄이나 카자흐스탄은 가스와 원유 자원이 많은 지역으로 석유화학단지나 가스화학단지 등 인프라 개발 수요가 많은 곳이다. 문 대통령이 방문함으로써 현지 진출한 우리 기업들이 인프라 개발사업을 수주하는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

■ 신남방정책도 추진해왔는데

가시적 성과는 신남방정책에서 더 많았다. 신남방정책 대상 국가가 아세안 10개국에 인도까지 합쳐 11개국인데 문 대통령이 이중 8개 국가를 순방했다. 가장 큰 성과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개최하기로 한 것이다. 우리나라 주재로 올해 11월 부산에서 열린다. 그동안 장관급으로 진행되어온 한-메콩강 5개국 회의도 정상회의로 격상시켜 한국에서 개최된다.

경제적으로도 한-아세안, 한-인도간 협력이 많이 확대됐다. 신남방정책을 시작한 것이 2017년인데 그 이후 이들 국가들과 교역 및 투자가 크게 늘어 우리나라의 2대 교역 및 투자대상지역으로 부상했다.

앞으로 신남방과 신북방을 연계하는 플랫폼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신남방의 경우 인구가 많고 시장이 크지만 기술 수준이 낮은 편이다. 반면 신북방 지역의 러시아나 벨라루시 등은 기초과학기술이 발달했지만 상용화 기술이 부족하다. 우리는 상용화 기술도 있고 상대적으로 자본력도 갖추고 있다. 우리가 주도해서 신남방과 신북방을 연계한 미래기술동맹, 신기술 협력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공동으로 R&D를 진행해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신남방 국가에 활용하고 일정 부분 기술 이전을 한다면 상생관계가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다.

■ 경제예측기관들이 세계경제 전망치를 낮추고 있는데 어떻게 예상하나.

연구원이 작년 11월에 전망한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은 3.5%다. 15일 수정치를 발표할 예정인데 3.2%로 0.3%p 정도 당초보다 낮추려고 한다.

미국의 1분기 경제가 좋았지만 지속가능성에는 의문이 있고, 유럽도 브렉시트 등 불확실성이 증대하는 상황에서 독일 경제가 둔화되고 있어 좋아지기 어렵다. 신흥국도 미·중 무역분쟁의 영향, 선진국의 저성장에 따른 대외수요 부진 등으로 어려움이 예상된다. 특히 터키의 리라화가 폭락하고 있어 경제위기의 촉발제가 되는 것은 아닌지 면밀히 볼 필요가 있다.

종합해보면 세계경제의 확장세는 끝났고 하강국면으로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긴축정책을 펴왔던 주요국 정부와 중앙은행들이 확장기조로 돌아서는 등 정책적 대응에 나서면 급격한 경기침체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 미·중 무역협상은 어떻게 예상하나. 우리 경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미·중 고위급 무역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는데 최종적으로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는 어렵다.

아직까지 미중 통상갈등이 우리 경제에 미친 영향은 크지 않았는데 만약 미·중 협상이 끝내 결렬되면 금융시장 불안정성이 커지고 우리 수출에도 본격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또 타결이 된다 하더라도 당장 글로벌 보호무역주의가 해소되고 글로벌 경기침체가 회복되길 기대하기 어렵다. 중국이 합의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 중국이 미국으로부터 수입을 확대하면 한국의 대중수출이 줄어들 수 있다. 특히 중국이 우리의 주력제품인 반도체나 전자전기, 석유화학 제품 등을 미국에서 더 많이 수입한다면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국은 항상 위기를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온 국가다. 현재의 글로벌 상황변화, 미·중 통상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이번에 미·중 협상이 잘 안되면서 미국이 2000억 달러어치의 중국산 제품에 관세율을 높이기로 했는데 한국의 대미수출을 늘릴 수 있는 반사이익을 거둘 수 있다. 또 협상이 타결되면 중국이 관세인하, 비관세장벽철폐, 금융시장 개방 확대 등을 추진할텐데 그만큼 시장개방이 확대되고 투명성이 높아진다. 우리에게는 대중국 진출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다만 과거처럼 휴대폰과 자동차를 대규모로 판매하기는 어렵다. 중국의 새로운 내수시장, 서비스시장 등을 개척해야 한다. 지적재산권이 강화되면 중국이 필요로 하는 기술, 4차 산업혁명 등 첨단 분야 등에 상호 투자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성과를 공유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중국이 추진해왔던 '중국제조 2025' 전략의 재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우리로서는 한숨을 돌릴 수 있다.

이처럼 중국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이에 맞춰 업그레이드된 새로운 대중국 종합전략을 구사해 한국의 대중국 경제 협력을 한 차원 높이고, 나아가 한중관계가 '윈윈'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 남북 경제협력에 대해선 어떻게 전망하나.

북핵문제가 '숨고르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이는데 이 문제가 잘 풀려 남북간 경제협력이 이뤄지면 우리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대통령도 말씀했듯 평화가 경제를 만들고, 또 경제가 평화를 유지하는 선순환이 되도록 해야 한다.

금강산관광은 남한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평화경제를 체감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한데 매년 50만명의 관광수요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개성공단이 재가동되면 남한에 최소 2만개에서 최대 10만개의 일자리 창출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외에도 북한의 저렴한 인건비와 높은 생산성을 활용해 노동집약적인 산업의 분업체계를 구축한다든지, 북한이 강점을 가진 소프트웨어 인력을 활용한다든지 남북이 협력할 수 있는 분야가 많다. 또 인도적으로 지원되는 농업, 산림, 보건, 의료, 교육 분야에서도 남북협력기금 지원을 통해 경협활동을 추진하면 이와 관련한 남한의 일자리가 많이 창출될 것으로 기대된다. 중기적으로는 북한의 인프라 투자가 필요한데 이는 침체된 남측의 건설 분야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글로벌 저성장 시대에 우리에게 북한은 다른 나라에게는 없는 카드다. 북한과의 경협을 잘 활용하면 기존 산업을 안정화하고 일자리를 창출해 이를 기반으로 4차 산업혁명과 신성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세계 7대 경제대국으로도 도약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연구원이 추진하는 중점사업이나 연구과제는.

상시적인 연구활동 외에 특히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대미공공외교다. 한미경제연구소(KEI)와 함께 대북관련 연구 확대 방안, 한미 고위급 네트워킹 활성화 방안 등 공동협력을 위한 새로운 청사진을 마련해 놓았다. 연구소장이 캐슬린 스티븐슨 전 주한대사인데 호흡이 잘 맞는다. 문제는 예산이다. 지난 10여년간 KEI 예산이 동결돼 사업비가 없다. 올해 예산을 좀 늘려 대북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다양한 컨퍼런스도 개최하고자 한다.

연구원은 또 올 8월말 경제인문사회연구회와 함께 'DMZ 평화경제 국제포럼'을 개최할 예정이다. 한반도 평화의 중요성, 한반도 평화가 궁극적으로는 세계 각국의 안보와 경제에 이익이 된다는 것을 전세계에 알리기 위한 행사다. 첫날은 판문점과 DMZ 둘레길 걷기를 통해 평화의 중요성을 체험하고 둘째 날에는 경사연 소관 26개 국책연구기관들이 생태평화, 관광, 문화, 대북지원, 인프라구축, 신남방·신북방 등 분야별로 포럼을 진행해 의견을 교환하고 새로운 정책아이디어를 모색할 계획이다. 세계 주요 싱크탱크와 국제기구, 외국의 고위 지도자 등이 대거 참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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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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