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스' 때처럼 바닥에서 사야할까

2020-01-31 11:39:43 게재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 당시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경제적 파장 분석

수많은 마케팅 교본엔 '과거 사례가 미래 결과를 담보하지 못한다'는 경고가 등장한다. 하지만 투자 가치에 중대한 위협이 발생하면 월가 등 전 세계 시장 전문가들은 과거 유사 사례를 찾는 데 분주하다.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 최신호는 "최근 중국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우한 폐렴'에 대해 세계보건기구(WHO)가 30일(현지시간)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를 선포하는 등 상황이 날로 심각해지면서 미 월가의 타임머신이 2003년으로 향하고 있다"고 전했다. 당시 중국에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이 발생해 전 세계로 확산됐다. 8100명이 감염됐고 774명이 사망했다.

중국 후베이성 톈허국제공항에서 30일 공항 관계자들이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과 관련한 물자를 하역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렇다면 월가가 투자와 관련해 사스에서 얻은 교훈은 뭘까. 사스가 발생한 2003년은 미 증시가 역대급으로 상승한 해였다. S&P500은 26%, MSCI 중국 지수는 81% 올랐다. 2003년 사스를 기준으로 하면 이번 사태도 투자자에겐 '바닥에서 사야 하는' 시기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블룸버그는 "두 개의 바이러스를 비교하는 건 그렇다 쳐도, 현재 금융시장과 경제의 조건이 2003년과 비교할 때 크게 달라졌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며 "과거의 결과에 기반해 미래의 상황을 예측하는 건 더 위험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스는 정확히 2002년 11월 발생했다. 당시는 닷컴버블 붕괴와 9/11 사태 불확실성으로 S&P500이 49% 급락했던 때였다. 반면 코로나 바이러스가 언론의 1면을 장식하기 시작한 이달 초 S&P500은 2018년 12월 24일 이래 42% 상승했다. 또 미국 비영리 민간 연구기구 '콘퍼런스 보드'에 따르면 닷컴 버블 절정인 2000년 초 미국 소비자심리지수는 145였지만, 사스 뉴스가 각종 언론을 도배할 때인 2003년 3월엔 61로 하락해 바닥을 다지는 상황이었다. 반면 이달 콘퍼런스 보드의 소비자심리지수는 약 132로 높은 수준이다.

올 연초의 사기충천 자신감은 투자자들이 주식에 매기는 밸류에이션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S&P500의 주가수익비율(PER)은 2018년 12월 약 16으로 낮았다가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터지기 직전인 이달 중순 22로 상승했다. PER가 높으면 주식가치가 고평가됐다는 의미다.

블룸버그는 "사스가 터졌을 때 시장은 '역사상 최악의 약세장 중 하나를 지났다. 더 이상 나빠질 수 있겠는가'라는 생각이 지배했다. 따라서 이후 주가지수 상승은 당연했다"고 전했다.

최근 시장엔 희망이 넘치고 있었다. 일단 미국 소비자 심리가 강하다. 미국 경제의 주축인 서비스 산업이 지속적으로 실물과 금융시장을 끌고 나갈 것이라는 강세론자의 의견이 비등한 상황이다. 또 미중 무역전쟁 휴전에 따라 중소 제조업 부문이 회복하면서 성장률을 밀어올릴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문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상황 전개가 시장의 심리에 어떤 위협을 가할지다. 바이러스는 소비자 행동을 직접 위협한다. 중국 소비자뿐 아니라 바이러스가 돌아다닐 수 있는 잠재적인 모든 곳의 소비자를 포함한다.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많은 나라에서 감염 사례가 속속 보고되면서 시장이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이유다.

S&P500은 지난주 금요일과 이번주 월요일 2.5% 하락했다. 그 이틀 동안 약 90% 종목이 무더기 하락했다. 급락한 일부 종목들은 글로벌 경제의 상호통합성에 균열이 깊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미 미중 무역전쟁으로 연계성이 약화된 데다 이번 우한 폐렴으로 더욱 심각해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아메리칸에어라인 등 항공사들과 로열캐리비안크루즈, 카니발코프 등 유람선회사, 핼리버튼 등 에너지 기업들이다. 국제유가는 계속 하락하고, 투자자들은 안전자산인 채권으로 몰리고 있다. 증시를 넘어 실물경제에 대한 우려로 확산되고 있다.

중국 당국은 바이러스를 통제하려 전방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감염 진원지인 우한은 물론 주요 도시 내 공장들이 문을 닫고 있다. 중국 소비자경제의 규모는 사스 때보다 훨씬 커졌다. 이 부문이 위축되면 경제적 타격은 커진다. 상하이 디즈니랜드를 비롯해 중국 전역 수천 곳의 영화관이 문을 닫았다.

미국 내 상황도 악화될 수 있다. 미국 상거래는 21세기 들어 신속하게 인터넷 플랫폼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지난 10년 간 고용을 이끈 거대한 동력은 대면 접촉이 필요한 소매직 일자리였다. 소매직 일자리는 지난 10년 동안 150만개가 늘었다. 미 전역 마트와 상점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약 1600만명이다. 같은 기간 식당과 술집의 경우 300만개의 일자리가 보태졌다. 모두 1200만명이 넘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우려에 근거가 있든 없든 식당과 마트, 극장, 운동장, 기타 공중장소에 모이는 사람들의 숫자는 줄어들 것이 분명하다. 이는 실직 수당과 고용 통계에 곧 반영된다. 미중 무역전쟁과 기타 우려에도 그동안 굳건했던 부문이 미국 소매시장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라질 수 있다.

미국 온라인증권사 '찰스 슈왑'의 최고투자전략가인 리즈 안 손더스는 "채권 수익률과 국제유가 하락에 반영된 현실은 최소한 단기 충격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라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단기 경제성장률이 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하락조정 폭이 얼마나 클지는 아직 알기 힘들다.

시장리서치 기업 '로버트 W. 베어드앤코'의 시장전략가인 마이클 안토넬리는 투자자들을 타이타닉호의 승무원에 비교했다. 과거 타이타닉호 승무원들은 앞에 놓인 빙산을 찾아 피하기 위해 지대한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단 하나 거대한 빙산을 보지 못하면서 침몰했다. 안토넬리는 자신의 블로그에 "2020년을 시작하면서 미국 대선과 제조업 약화 전망, 연방정부 부채, 연준 금리, 기업 실적 등 수많은 빙산을 검토했다. 이는 알려진 빙산이었다. 하지만 중국 6번째 큰 대도시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할 것임을 내다본 전략가는 아무도 없었다. 보이지 않는 빙산이었다. 그게 진짜 리스크"라고 썼다.

블룸버그는 "미국과 유럽에서 확정된 감염 사례는 아직 소수에 그친다. 주식 투자자들은 이틀 간의 매도 이후 시장에 다시 복귀했다. 다행히 하락 폭의 절반 정도는 회복됐다"며 "그렇다면 지금이 바닥에서 사야 하는 또 다른 기회인가, 상대적으로 염가인 주식을 사들여야 하나?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실수는 하지 말라. 그 어떤 전문가도 이번 빙산의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국제통화기금(IMF)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경제파장을 판단하기엔 아직 이르다"며 "불확실성이 크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30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IMF 게리 라이스 대변인은 이날 워싱턴 기자회견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주시하고 있다"며 "지금 단계에서는 경제적 파장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확산 범위가 더 넓어질 수 있다는 리스크가 있다. 많은 불확실성이 있어 정량화하기는 매우 어려운 단계"라며 "중국 경제에 대한 전반적인 충격은 이번 사태가 얼마나 장기화하는지에 달렸다"고 덧붙였다.

IMF 측의 이같은 언급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전 세계적인 경제 심리가 과도하게 위축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취지로도 해석된다.

라이스 대변인은 "해외로 나가는 중국인들의 규모가 줄어드는지, 중국 수출과 대내적인 경제활동이 둔화하는지 등을 지켜보고 있다"며 "중국과 지역적으로 가까운 아시아권이 주로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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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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