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미래를 여는 사람들│⑦ 김현수 서울시자살예방센터장

"아동청소년 성장발달, 공동체 돌봄으로 해결"

2020-02-25 11:21:33 게재

학교·가정 밖 수십만 아이들 사실상 방치 … "입시위주 현행교육 버리는 결단 필요"

5년 후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둔 가운데, 한국사회는 '전환의 시대'를 요구받고 있다. 그간의 관주도, 돈 중심, 공급자 위주의 보건복지제도 환경에서 벗어나 이용자의 인권과 편의성을 높이며 자주적 참여와 민관협력으로 지역민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기를 갈구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전국 곳곳에서 혁신적 실천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는 사람과 단체들의 경험을 소개하고 나눠 사회발전의 자양분으로 삼고자 한다. <편집자주>

수십만명의 아동청소년들이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면, 가정을 벗어나 길거리를 헤매고 있다면 한국의 교육·양육제도는 온전한 제구실을 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정부 통계(추정치)에 따르면, 2017년 학교 밖 아동청소년이 47만명, 가정 밖 아이들이 21만명이라고 한다. 해마다 대한민국은 겨울철이면 수시다 정시다 하며 대학입시를 떠들썩하게 조명하지만 이들에게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생명사랑 지역주민 조직화를 위한 주민운동정보교육원과의 토론회. 사진 김현수 서울시자살예방센터장 제공


김현수 서울시자살예방센터장은 "국민이 입시 중심의 교육제도를 과감히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지 않으면, 재능이 넘치고 우수한 아동청소년들이 자신의 재주와 꿈을 다양한 방식으로 찾아 낼 수 없고, 학교 안에서나 밖에서 시간 낭비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김 센터장은 "학교와 가정이 문제가 있는데 기성세대는 아동청소년들에게 무작정 학교로 집으로 돌아가라고만 몰아 부친다"고 말했다.

2019년 9월 서울시 생명사랑페스티발에서 인사말을 하는 김현수 서울시자살예방센터장.

◆어른들 말로만 하지, 아무것도 하지 않아 = 김 센터장은 어릴 적 부친의 사업이 망하면서 피신한 부모와 떨어져 살았던 적이 있다. 동생들을 데리고 친지 집에 얹혀 지내거나 혹은 007 작전처럼 몰래 만나 전전하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동생의 가출과 사고가 있었고, 자신도 길거리서 떠돌기도 하고 우울함에 빠지거나 자살 유혹에 시달리는 등 심신이 어려운 때를 보낸 경험이 있다.

이런 아픔은 김 센터장이 정신과 의사로서 아동청소년, 홈리스, 정신장애인 등 취약계층의 인간다운 삶을 지원하는 활동에 힘을 쏟는 배경이 됐다.

김 센터장은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 아동 청소년들의 고통은 어른들 자신의 아노미 결과물이라고 말한다.

스웨덴의 그레타 텐버리가 말한 것처럼 '어른은 말로만 하지,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관계의 심리학을 연구하는 교사단(관심단)과의 워크샵.


세월호 사건을 보면 어른들이 아동 청소년을 어떻게 대하는지 알 수 있는데, 아동청소년들이 각자도생해야 하는 대한민국이라는 것.

김 센터장은 "미래를 보여주는 어른은 현재 많지 않다"며 "모두 자신들의 이익과 이권에 혈안이 돼 눈앞의 일만 챙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성세대가 아이들의 삶을 소유하지 말고 미래의 주인공으로 인정하고 현재를 공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이들이 자식 때문에 산다는 말을 듣고 자라는 것이 가장 잘못된 일 중 하나라고 김 센터장은 말한다. 이 말 속에는 어른들이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되레 아이들에게 의존된 인생을 살게 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지역 독립서점에서 '요즘 아이들 마음 고생의 비밀' 독서토론회 장면. 사진 김현수 서울시자살예방센터장 제공


김 센터장은 아동 청소년들이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생활하고 미래를 꿈꿀 수 있는 파격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국립대학 평준화, 기본소득 지급, 기본주택 보급, 사회적 경제 참여 활성화 등등 청소년과 청년들이 사회적 희생물이 아니라 미래의 주인임을 보장하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이에 대해 도덕적 해이를 유발시킬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올수 있지만, 도덕적 해이보다는 불평등과 정의롭지 못한 환경이 더 문제라고 김 센터장은 답했다.

이런 변화가 없으면 아동청소년들에게 일어나는 고통스런 문제; 고립, 단절, 포기, 퇴행 등을 방치하겠다는 것과 다를바 없다는 것.

김 센터장은 홈리스들을 10년 넘게 진료하기도 했다. 그 세월동안 홈리스들을 많이 이해하게 됐다. 홈리스의 대부분은 가족에서 방출되거나 혹은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지, 거리에서 살기 위해 거리로 나선 사람들이 아니라는 자명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좋은 공동체이지 단지 돈과 집이 아니었다.

김 센터장은 "노숙이라는 단어를 바꿔야한다"면서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 대한 서비스로 목표를 조정하고 그들이 일하면서 함께 생활할 가족같은 공동체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불평등 독점구조, 아동청소년에 가해 = 우리나라는 빠른 속도로 경제성장을 했지만 인권수준은 높지 않은 편이다.

이에 우리 사회가 상생의 공동체로 나아가기 위한 문화운동이 활성화되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분열 차별 획일 독점 등으로 당장 이익을 보는 층이 있겠지만 후대에 결국 파열을 내게 된다는 것이다.

김 센터장은 "대기업과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동네상권을 말살했다. 동네 가게는 사라지고 분점만 가득하며, 단골가게, 단골문방구도 없고 잠시 일하는 사람들만 있다"며 "불평등 시장환경을 해소하는 파격적인 정책과 법제도가 필요하고 동네상권을 보호하는 조치에 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왜냐하면 이런 불평등 독점구조는 아동청소년들이 속한 가정에 피해를 주기 때문이고, 소수 엘리트 위주의 교육을 통과하지 못한(?) 아동청소년들의 경제생활 활로를 제한하기 때문이다. 상생하지 못하는 사회환경에서 극단적 선택이 조장될 수 있다.

김 센터장은 "극단적 선택의 심리 배경에는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고, 이제는 더 이상 짐이 되고 싶지 않으며, 어디에도 받아줄 곳이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있다"며 "각자도생의 시대에서 공동체 돌봄의 시대로 가야한다"고 말했다.

특히 가족을 살해하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는 사회적 충격이 크다. 아이들의 노래 가사에 '머리가 나쁘면 죽어야 된다'는 노래가 있고, '살아봤자 똥보다 못하게 된다'는 부정적인 인식도 있다.

김 센터장은 "내가 실수해도 실패해도 다시 기회가 있으며, 혹 내가 잘못되더라도 사회가 나와 내 가족을 사회적 돌봄으로 도울 것이라는 인식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시대상황에 맞춰 공동체 돌봄과 인프라를 만들고자하는 정부와 서울시의 노력에 기초해 더 많은 교육, 토론, 문화 활동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으로 김 센터장은 일상적인 정신과 상담과 치유활동을 넘어 자신이 힘써온 시민교육조직활동을 교사, 청소년, 정신보건, 생명사랑 분야에 꾸준히 넓혀 나갈 생각이다.

김 센터장은 "1인 가구가 전체의 1/3이 되는 사회에서 외톨이처럼 살아갈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라며 "높은 담장으로 나눠진 빈부 고착사회를 아동 청소년들에게 물려주는 일은 기성세대로서 큰 부끄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그는 아이들이 태교로부터 시작한 사교육체제 하에서 부모의 욕망받이로 살아가지 않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신의 저서 '요즘 아이들 마음 고생의 비밀'에서 "우리사회가 조지오웰의 1984에 가장 가까운 편"이라고 밝혔다. 획일성에 기초한 아이들의 개성말살. 이것은 중단해야 할 아동청소년 학대라고 덧붙였다.

["가까운 미래를 여는 사람들" 연재기사]

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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