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 해소, 지금이 골든타임이다 ①

"노·사·정 등 당사자들 참여해 논의 시작해야"

2020-03-27 11:38:49 게재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격차 커져

청년실업에 영향, 지속가능한 발전 발목 잡아

노동계를 중심으로 양극화가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된지 오래지만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오히려 격차만 확대된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는 불공정거래 등의 영향에 따른 대-중소기업간 수익률 격차가 확대돼 기업규모와 고용형태별 임금격차가 커진데 따른 것이다. 우선 노동시장 이중구조부터 해소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대목이다.

한국은행이 발간한 '2018 기업경영분석보고서'에 따르면 대기업 영업이익률은 7.2%인데 반해 중소기업은 3.5%에 불과했다. 중소기업 이익률은 대기업의 48% 수준이다. 또 고용노동부의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2018년 6월 기준)'에 따르면 300인 이상 사업장 정규직 노동자 임금수준을 100%로 했을 때 300인 이상 사업장 비정규직은 63.2%에 불과하다. 또 300인 미만 사업장 정규직은 56.8%, 300인 미만 사업장 비정규직은 41.8% 수준으로 격차가 크다.

 

학교비정규직노조 "생계·안전대책 마련하라"│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대전지부는 지난 9일 대전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코로나19로 인한 학교 비정규직 생계와 안전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연합뉴스 조성민 기자


이런 격차는 자산·지역·세대격차 등과 맞물려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다.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이세종 전문위원은 "합리적인 차이는 인정하지만 불공정 등 이유있는 차이는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해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면서 "당장 올해부터 양극화 해소를 위한 전 국민적인 노력을 시작해야 하고, 경제사회 주체들이 주도적으로 힘을 모아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 마련과 실천을 시작하는 원년으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1980년대 초까지 격차 작아 = 전문가들은 양극화의 가장 큰 원인으로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지목한다. 이중구조란 노동시장이 임금, 일자리 안정성 등 근로조건에서 질적 차이가 있는 두 개의 시장으로 나뉘어 있다는 것을 말한다. 1차 노동시장은 대기업 정규직, 공무원 등을 포함한다. 대부분 사람들이 선망하는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한다. 반면 2차 노동시장에는 이를 제외한 중소 및 영세기업, 비정규직 일자리가 포함된다. 2018년 8월 기준 국내 전체 임금노동자 10% 정도만 1차 노동시장에 종사한다. 한국경제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상대적으로 해고 보호가 잘 되는 1차 노동시장의 근속연수는 13.7년이다. 이는 2차 노동시장의 근속연수 2.3년에 비해 약 6배나 길다. 또 월평균 임금은 1차 노동시장이 2차 노동시장보다 약 2.8배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전문가들은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1980년대 후반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1980년대 초 중소기업 임금수준은 대기업의 90% 정도였다. 하지만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임금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임금격차 확대는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법이 등장한 1997년 외환위기(IMF 구제금융) 이후다. 대기업은 노동집약적 공정을 상대적으로 임금이 낮은 중소기업으로 외주화했다. 또 단기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하청기업에 단가인하 등 불공정거래를 강요하기도 했다. 생산량 증가에도 수익성은 오히려 악화된 중소기업은 더 낮은 임금으로 노동자를 고용해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반면 대기업은 대량해고 후 살아남은 소수 정규직의 임금을 올려주며 충성도를 확보했다. 특히 2000년초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대기업들은 이에 대응한다는 논리를 앞세워 불공정 거래를 강화해 임금격차는 더 커졌다.

◆계층·세대 갈등으로 이어져 =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청년실업의 원인을 제공하며 세대갈등으로 이어진다. 우리사회가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로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지목되는 이유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청년층 확장실업률은 22.9%로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15년 이후 최고치로 치솟았다. 일할 능력은 있지만 특별한 이유 없이 일을 하지 않고 쉬는 사람 중 20대 비율(5.2%)이 처음으로 5%를 넘겼다. 30대(2.9%)역시 2003년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높았다. 확장실업률은 실업률보다 넓은 범위의 실업 인구를 포함하는 지표로 실업자, 시간관련 추가취업가능자(부분실업자), 잠재경제활동인구(잠재실업자)를 합산해 나타낸다.

전문가들은 확장실업률 증가 원인으로 2차 노동시장에서 1차 노동시장으로 이동이 어렵다는 점을 꼽는다. 청년들이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으로 취업하면 이직이 어렵다고 판단해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대기업에 취업하기 위해 구직기간을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청년은 구직에 어려움을 호소하는데도 중소기업은 구인난에 시달리는 역설적인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은행의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정책대응: 해외사례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중소규모 사업체 임금노동자가 1년 후 대규모 사업체로 이동하는 비율은 2004∼2005년 3.6%에서 2015∼2016년 2.0%로 하락했다. 임금노동자가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이동하는 비율은 같은 기간 15.6%에서 4.9%로 급감했다.

대기업으로의 노동자 이동이 어려워졌음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은 기존 인력의 잦은 이직과 짧은 재직기간 등 인력 유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소기업 이직률은 5.2%(2018년)로 대기업(2.9%)의 2배에 달한다. 특히 핵심인력 이직으로 인한 숙련·전문인력 부족 현상으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이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한국고용정보원이 발간한 '청년취업자의 기업규모별 첫 일자리 특성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첫 직장을 4년 이상 다니는 청년 취업자 비율은 33%에 불과했다. 10명 중 4명의 청년 취업자는 2년 이내에 첫 퇴사를 경험했다. 전체 청년 취업자의 23.4%는 첫 직장에서의 근속 기간이 '1년 미만'이었고, 19.8%는 '1~2년 미만'에 불과했다.

하지만 청년 취업자의 학력이 높고, 기업규모가 클수록 첫 일자리 지속기간은 늘어났다. 학력이 고졸 이하인 청년의 첫 직장 평균 근속기간은 3년2개월인 반면, 대졸 이상 청년의 평균 근속기간은 3년7개월로 차이가 났다. 기업규모별로는 소기업(50인 미만)의 평균 근속기간이 3년, 중기업(50~299인)은 3년4개월, 대기업(300인 이상)은 4년으로 나타났다. 특히 소기업에 취업한 청년의 경우 2년 내에 그만둔 비율이 약 50%에 달했다. 임시·일용직의 경우 1년 이내에 첫 일자리에서 이탈하는 비율이 40%에 달했다. 보고서는 "고임금인 대기업 상용직으로 노동시장에 진입한 청년층은 첫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려는 경향이 크다"며 "하지만 이러한 일자리 규모가 제한돼 있어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을 통한 고용의 질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핵심 = 전문가들은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기업 간 거래관계를 공정하게 만들려는 정부의 진정성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국내 대기업은 상품시장에서 독과점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 반면 중소기업은 이들 대기업에 납품을 하는 하청기업 형태가 많다. 이런 특수한 구조로 인해 중소기업이 기술개발, 원가절감 노력으로 수익성을 높여도 대기업이 '납품단가 후려치기'와 같은 불공정거래 행위를 하면 고용여건을 축소할 수밖에 없다.

또한 전문가들은 기업별 교섭체계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도 해결해야 할 문제로 지목했다. 1987년 이후 노동시장 구조가 변화하는 주요한 상황에서 노동조합이 기업별 교섭을 넘어서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황선자 한국노총중앙연구원 부원장은 관련 보고서에서 "원청 대기업과 하청 중소기업 사이의 격차축소가 기업규모 간 임금격차 축소의 핵심과제"라며 "공정한 하도급거래질서 확립을 통한 지불능력 격차 축소와 더불어 기업의 경계를 넘어서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구현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공공 근로복지기금, 상생 연대기금 조성 및 확대 등 양극화 해소를 위한 노사의 자율적 노력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터 혁신을 통한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와 근로여건 개선 등도 지적했다. 황 부원장은 "유럽 나라들은 일터혁신을 국가혁신시스템의 중심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다"면서 "노조들 역시 노동자의 자율적 참여와 노동의 인간화가 실현되는 일터를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해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사정 당사자 참여가 중요 = 전문가들은 갈수록 심화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소하기 위해 스웨덴, 네덜란드 등의 사례에 주목할 것을 제안한다. 스웨덴은 1950∼1980년대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따라 중앙단체교섭 중심 노사협상을 통해 임금 불균형 문제를 해소했다. 네덜란드는 임시직과 시간제 노동자 비율이 21.8%, 37.4%로 OECD 회원국 평균(11.2%, 16.5%)이나 한국(20.6%, 11.4%)보다 높다. 하지만 보수와 복지에서 차별을 금지하는 방향으로 네덜란드식 모델을 만들어 문제를 해결했다. 박광용 한국은행 거시경제연구실 부연구위원은 '노동시장의 이중구 조와 정책대응"이란 보고서에서 "정부 주도보다는 노사 등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해 오랜 기간 논의해 대안을 마련한 것"이라며 "한국도 당사자들이 참여해 이중구조개선을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경사노위도 지난해 11월 '양극화 해소와 고용+위원회'를 발족하고 활동에 들어갔다. 경사노위 관계자는 "양극화의 원인과 실태를 진단하고 노사정 주체별로 역할을 검토할 것"이라며 "이를 바탕으로 양극화 문제에 대한 공감대 형성 등 기본 합의를 도출하고 각론별로 세부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극화 해소, 지금이 골든타임이다" 연재기사]

한남진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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