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 해소, 지금이 골든타임이다 ③

노동자 스스로 '좋은 일자리' 만든다

2020-04-10 10:50:09 게재

스웨덴·캐나다, 장기불황에 새로운 시도 … 기금출자 등 노동자 적극적 참여가 '열쇠'

코로나19 위기 속 한국형 제도 고민 필요 … 세제지원·매칭펀드, 정부·기업 참여 필요

코로나19가 아시아를 넘어 미국 유럽 등으로 확산되면서 대공황에 대한 경고음이 나온다. 기업 실적부진, 폐업 등에 따른 구조조정이 실업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9일 한국고용정보원의 고용행정통계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올해 2월 폐업·도산과 회사불황으로 인한 퇴사로 고용보험을 상실한 이른바 폐업·불황형 실직자는 9만1300명으로 전년 동월 7만1000명보다 2만명(28.4%) 늘었다. 이는 2월 전체 고용보험 상실자 56만1000명의 16.3%를 차지하는 규모다.

고용보험 상실분류 기준이 변경된 2014년 2월 이후 2월 기준 사상 최대다. 경영상 필요나 회사불황으로 인한 해고·권고사직·명예퇴직 등으로 고용보험을 상실한 노동자는 7만3000명으로 전년 동월 5만7000명보다 1만6000명(27.8%) 증가했다.

폐업·도산으로 인한 상실자는 1만8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만4000명보다 4300명(30.6%) 늘었다. 특히 1월 고용보험 상실자 12만7000명까지 더할 경우 1~2월에만 경기악화로 고용보험을 상실한 실직자는 21만9000명에 달한다. 이는 취업자가 줄고 실직자가 늘었던 지난해 1~2월 21만5000명보다 3200명(1.5%) 늘어나 역시 사상 최대다.

이런 상황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7일(현지시간) 코로나19로 전세계 12억5000만명의 노동자가 해고나 임금삭감에 직면했다고 밝혔다. 또 세계 노동인구의 81%인 27억명이 코로나19 감염확산 방지를 위한 봉쇄조치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고용불안은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에서 심각하다. 특히 국내에서는 여행 숙박 관광운송 공연업 등 정부가 지정한 특별고용업종에서 빠진 분야 비정규직과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피해가 더욱 클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사회적 문제가 된 양극화가 극에 달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코로나19 이후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고용안정과 임금격차 해소가 최대 이슈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이를 위해서는 동일한 산업·업종에서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을 맞춰나가거나 노동자 스스로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노력한 나라들에서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기반 = 스웨덴의 '연대임금'은 대표적 사례다. 연대임금은 기업의 규모와 수익, 산업 등에 상관없이 동일한 일을 하는 노동자들에게 동일한 임금을 보장하는 제도다.

스웨덴에서 노동자 간 임금격차를 줄이자는 논의는 1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시작됐다. 1920년 대 초 스웨덴은 실업률이 40%에 달하고 수출과 내수부문 간 임금격차가 1920년 5%에서 1922년 27.4%까지 증가했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노동조합총연맹(LO·엘오) 내부에서 이를 해결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1936년 LO와 스웨덴기업가연맹(SAF) 간 대화가 시작됐다. 양측은 1938년 노사합의주의의 원형인 살트셰바덴 협약을 맺는다. 이 협약은 △노동자들은 경영자들의 지배권을 보장 △경영자들은 일자리 제공과 기술투자에 노력 △기업 이익금의 85%를 사회보장 재원(법인세)으로 기여 등을 주요 내용으로 했다.

이후 1951년 LO 총회는 경제학자 렌과 마이드너가 제안한 '노조운동과 완전고용에 관한 보고서'를 채택한다. 보고서는 정부가 인플레 억제를 위해 긴축재정 정책을 해 물가안정을 이루고 개별기업 또는 개별산업의 수익성에 관계없이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지향하는 연대임금 정책 도입을 제안했다. 사회민주당 정부가 이를 수용하면서 1952년부터 LO와 SAF는 중앙 단체교섭을 통해 이를 현실화했다.

스웨덴은 이후 30년 동안 수익성이 높은 기업의 임금인상을 억제하고 저수익 기업에 고용된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행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스웨덴의 경우 20세기 초·중반에 걸쳐 산업별 노동조합이 형성돼 동일산업에 근무하는 노동자 전체에 대해 임금과 노동조건을 조정할 수 있는 중앙집중식 노동조합 체계가 갖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연대임금정책은 대체로 스웨덴의 임금 불균형을 줄이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임금 지급 여력이 낮은 중소기업의 경우 비용상승을 이겨내지 못하고 시장에서 '퇴출'됐다는 비판도 있다.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김양수 협력홍보팀장은 "스웨덴 정부는 기업 구조조정에 따른 실업자에게 평균임금의 70~80%에 달하는 실업급여를 지원하고 재훈련 프로그램을 통해 재취업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면서 "1990년대 이후 중앙차원의 교섭에 갈등이 생기면서 산업별 교섭으로 전환된 상태지만 여전히 연대임금 정책의 취지는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이어 "노동시장에서 연대를 위한 기본 조건인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일의 가치를 중심으로 임금이 결정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산별노조나 업종별협의체 운영경험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당장 도입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기업별로 단체교섭이 이뤄지는 현실을 고려할 때 먼저 같은 기업 내 노동자들의 고용조건을 동일하게 만드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지적이다. 비정규직 고용을 억제하고 저임금을 받는 사내하청 노동자의 고용조건을 개선에 원청, 즉 대기업 노동조합이 연대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자가 기업 주주로 참여 = 캐나다 퀘백주의 연대기금도 전문가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사례다. 1980년대 퀘벡주는 기업이 줄도산하고 실업률이 15%를 웃도는 상황에 직면했다. 문제해결을 위해 퀘벡주정부는 경제주체들이 참여하는 지역경제대표자회의를 열었다.

여기서 퀘벡노조총연맹(QFL)이 노동연대기금을 제안했다. 노동자들이 돈을 모아 기업에 투자하면 기업은 고용을 늘리고 주정부가 이를 지원한다는 청사진이었다. 퀘벡주정부는 노동연대기금 조성에 유리한 세제혜택 조항이 담긴 법률을 통과시키며 지원에 나섰다. 특히 연방정부와 주정부에서도 각각 1000만달러를 매칭펀딩하면서 1983년 노동연대기금이 탄생했다. 특히 퀘벡지역 제2노동단체인 전국신디케이트연맹도 1996년 협동조합과 사회기업 그리고 노동자의 참여와 환경보호를 중시하는 기업들에 투자하는 행동기금을 구성했다.

노동연대기금은 노조가 연대기금 이사회에 참여해 조건에 맞는 기업에 투자하고, 수익을 다시 노동자에게 돌려주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 기금 이사회는 '노동의 이익'과 '지역경제 발전'이라는 자산운용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연대기금 정관은 기금의 주요기능을 △일자리 창출·유지를 위한 사업에 투자할 것 △노동자들에게 퀘벡주 경제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경제교육을 할 것 △노동자에게 이익이 될 사업에 전략적으로 투자할 것 등이라고 밝힌다. 이런 원칙은 기금이 투자하는 기업과 맺는 투자협정에도 항상 반영된다. 기금의 모든 투자는 '사회책임투자'로 연결되는 구조를 갖춘 것이다. 특히 낙후·빈곤·경기침체 지역에 투자함으로써 연대적 금융을 지향하지만 동시에 수익성을 경시하지도 않는다. 노동연대기금이 2014~2015년에 창출한 총 수익은 992만달러에 달한다.

경사노위 관계자는 "노동운동이 각종 기금운동의 방향성을 투자기금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면서 "양대노총 조합원들이 노후를 위한 추가적인 연금확보라는 개인적 이해관계를 충족하면서도 사회경제적으로도 양극화 극복과 지역경제 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상생적 대안에 합의할 수 있다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어 "퀘벡의 경우 노동자들의 기여뿐만 아니라 주정부와 연방정부의 매칭펀드 및 세제혜택이 있었다"면서 "이는 한국의 도입과정에도 필수적인 요소"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연대기금의 경우도 연대임금 사례처럼 국내 도입에는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다고 지적한다. 이덕재 고용정보원 연구위원은 "퀘벡의 경우 노조조직률과 공동체 의식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면서 "이 때문에 이 모델을 그대로 접목했던 많은 국가와 지역사회가 실패를 경험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경기침체로 고용이 불안해지는 지금이 제도를 확산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하다"면서 "노동자가 주주로 참여해 스스로 질 좋은 일자리를 창출함으로써 양극화 해소에 적극 관여하고 노후도 대비하는 기본 골격을 유지하면서 우리만의 제도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주도하기도 = 스웨덴 연대임금정책은 정부의 지원 아래 사용자와 노동자간 합의에 따라 이뤄진 개혁이다. 반면 많은 나라들은 위원회 또는 정부 주도의 노동시장 개혁을 추진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건설산업의 '적정임금 제도'다. 적정임금제는 입찰과정에서의 가격덤핑, 원도급-하도급 등을 거치는 다단계 도급과정에서 발생하는 건설노동자의 임금삭감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발주자가 정한 금액 이상으로 임금을 보장하는 제도를 말한다.

미국 건설산업에서 노사의 적극적 개입 없이도 정부 주도로 '적정임금 제도'를 원용해 직종·직무별 평균시장 임금을 조사한 후에 이를 노동시장의 표준임금으로 보고 업종별로 임금격차의 조정방안을 마련하도록 업종별협의체를 운영한 경험이 있다.

우리나라 고용노동부도 지난 3월 발표한 '건설노동자 고용개선 5개년 계획(2020~2024년)'에서 2024년까지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다단계 하도급으로 임금수준이 낮고 안전사고 위험이 커 청년층 등 신규인력이 기피하는 건설업의 고용구조를 개선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이를 위해 고용부는 현재 공공기관과 지방자치단체가 시행 중인 적정임금제 시범사업을 평가해 올해 안으로 사업모델과 적용범위 등 제도화 방안을 마련하고 건설근로자법에 반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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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진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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